知好樂/ 앎과 좋아함과 즐김
우리가 아는 것에도 얕고 깊은 세 가지 층의 높이가 있다는 말이다. 1) 아는 것, 2) 좋아하는 것, 3) 즐거워하는 것의 세 가지 지식 단계는 공자(孔子)의 말에서 비롯되었다. 논어(論語 雍也篇)에,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학문이 깊었던 조선의 정조(正祖) 임금도 논어의 이 세 가지를 지호락지자 장(知好樂之者 章)이라 이름을 붙여서 그의 문집인 홍제전서(弘齋全書)에도 설명했다. 정조는 안다는 것은 즐거워하는 것의 시작이므로 마치 사람이 음식과 섹스[色]를 알았다고 하면 곧 그것을 즐거워하는 데에 이르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알면 좋아하게 되고, 좋아하면 즐기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앎은 즐김의 시작이며 즐김은 앎의 극치라고 말했다. 그래서 진실로 안다고 하면 실행하게 되어 지행(知行)을 아울러 갖게 된다는 설명이다.
그저 공부하는 사람보다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더 낫고, 좋아하는 사람보다 공부를 즐기는 사람이 가장 좋다는 뜻이다. 공자의 앎의 3층은 1층이 지(知)요, 2층이 호(好)요, 가장 높은 3층이 낙(樂)이니, 맨 밑에서는 ‘내가 공부를 해야 한다’는 요구로 들어온 것과 같고, 그 다음은 좋아서 한층 더 올라가는 것이 호(好)이며, 거기서 다시 그것을 즐기기 위하여 올라간 최고층이 낙(樂)에 이름이다. 마치 앎의 시작은 피동적일 수가 있으나 더 나아간 호(好)의 단계에서는 능동적이 되며 최고의 경지는 더욱 적극적으로 말릴 수 없을 정도의 즐거움의 누림이 되어가는 것이다. 우리의 학습 태도가 소극적이다가 능동적으로 흥미를 느끼게 되고 더 적극적으로 올라가서 그것을 즐거워한다면 앎의 극치에 이른다는 뜻이다. 2층에만 올라가도 공부가 좋아서 묻기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힘써서 배우게 되며, 3층의 단계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배우기를 요청하며 자기의 앎을 진실로 구가하고 누리는 향유의 행복에 이른다는 의미가 된다.
쾌락(快樂)의 클라이맥스(climax)처럼 공자가 말하는 군자(君子)는 그렇게 앎을 실천하는 즐거움을 누리는 사람이라고 의미한 것 같다. 논어 위정편(爲政篇)에 제자 자공(子貢)이 스승에게 군자에 대하여 물었을 때의 대답을 보자. “공자가 일렀다, 먼저 자신의 말을 스스로 실행하고 그 다음에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를 따르게 하는 것이다(子曰, 先行其言而後從之).” 자신을 수양하고 인격을 닦아서 가정을 다스리고서 나라와 세상을 평화롭게 한다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이치를 실행하는 것이 군자인 까닭이며, 그것이 남을 이롭게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행복을 극대화하는 실행이라는 말이 된다. 어떤 것에 대한 나의 앎은 어느 단계인가? 앎(知)과 좋아함(好)과 즐김(樂)의 극치로 올라감이 가장 행복한 군자의 극치라니 까.
우리가 아는 것에도 얕고 깊은 세 가지 층의 높이가 있다는 말이다. 1) 아는 것, 2) 좋아하는 것, 3) 즐거워하는 것의 세 가지 지식 단계는 공자(孔子)의 말에서 비롯되었다. 논어(論語 雍也篇)에,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학문이 깊었던 조선의 정조(正祖) 임금도 논어의 이 세 가지를 지호락지자 장(知好樂之者 章)이라 이름을 붙여서 그의 문집인 홍제전서(弘齋全書)에도 설명했다. 정조는 안다는 것은 즐거워하는 것의 시작이므로 마치 사람이 음식과 섹스[色]를 알았다고 하면 곧 그것을 즐거워하는 데에 이르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알면 좋아하게 되고, 좋아하면 즐기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앎은 즐김의 시작이며 즐김은 앎의 극치라고 말했다. 그래서 진실로 안다고 하면 실행하게 되어 지행(知行)을 아울러 갖게 된다는 설명이다.
그저 공부하는 사람보다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더 낫고, 좋아하는 사람보다 공부를 즐기는 사람이 가장 좋다는 뜻이다. 공자의 앎의 3층은 1층이 지(知)요, 2층이 호(好)요, 가장 높은 3층이 낙(樂)이니, 맨 밑에서는 ‘내가 공부를 해야 한다’는 요구로 들어온 것과 같고, 그 다음은 좋아서 한층 더 올라가는 것이 호(好)이며, 거기서 다시 그것을 즐기기 위하여 올라간 최고층이 낙(樂)에 이름이다. 마치 앎의 시작은 피동적일 수가 있으나 더 나아간 호(好)의 단계에서는 능동적이 되며 최고의 경지는 더욱 적극적으로 말릴 수 없을 정도의 즐거움의 누림이 되어가는 것이다. 우리의 학습 태도가 소극적이다가 능동적으로 흥미를 느끼게 되고 더 적극적으로 올라가서 그것을 즐거워한다면 앎의 극치에 이른다는 뜻이다. 2층에만 올라가도 공부가 좋아서 묻기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힘써서 배우게 되며, 3층의 단계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배우기를 요청하며 자기의 앎을 진실로 구가하고 누리는 향유의 행복에 이른다는 의미가 된다.
쾌락(快樂)의 클라이맥스(climax)처럼 공자가 말하는 군자(君子)는 그렇게 앎을 실천하는 즐거움을 누리는 사람이라고 의미한 것 같다. 논어 위정편(爲政篇)에 제자 자공(子貢)이 스승에게 군자에 대하여 물었을 때의 대답을 보자. “공자가 일렀다, 먼저 자신의 말을 스스로 실행하고 그 다음에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를 따르게 하는 것이다(子曰, 先行其言而後從之).” 자신을 수양하고 인격을 닦아서 가정을 다스리고서 나라와 세상을 평화롭게 한다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이치를 실행하는 것이 군자인 까닭이며, 그것이 남을 이롭게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행복을 극대화하는 실행이라는 말이 된다. 어떤 것에 대한 나의 앎은 어느 단계인가? 앎(知)과 좋아함(好)과 즐김(樂)의 극치로 올라감이 가장 행복한 군자의 극치라니 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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