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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글

하얀 이슬/ 鴻雁來 玄鳥歸

 

하얀 이슬/ 鴻雁來 玄鳥歸

 오늘이 백로(白露). 점점 서늘해져도 낮의 햇볕은 더없이 포근하고 따뜻하다. 해 지면 기온은 빨리 내려가니 밤 공기 속의 수증기가 냉기로 인하여 작은 물방울로 엉긴다. 그것들이 모여서 풀잎과 나뭇잎에 붙으면 하얀 이슬이 백 진주처럼 맺힌다. 아침 햇살에 영롱하게 빛나고 수정(水晶)처럼 티 없이 맑으니, ‘백로(白露)’라고 이름 하는 그 절후(節侯)다. 뜨겁던 양기는 식어가고 서늘한 음기(陰氣)가 날마다 무거워지니 기러기 떼 북에서 남으로 날아오기 시작한다. 북쪽 새들이라 겨울 나기 하려고 남쪽 멀리 날아갈지라도 남방(南方)은 그들의 고향이 아니다. 기러기를 홍안(鴻雁)이라 함은 고니처럼 큰 기러기를 홍(鴻)이라 하고, 작은 기러기는 안(雁)이라 하니 그 둘을 합쳐서 홍안이라 한다. 이른 봄 우수(雨水)에 북쪽으로 가서 살다가 백로(白露)에 돌아와[鴻雁來也] 월동 하려고 남쪽으로 더 내려간다. 한편 춘분(春分)에 나타났던 까만 제비들은 이제 남쪽으로 돌아가니[玄鳥歸矣], 그들의 고향이 남방(南方)인 까닭이라, 가을이면 돌아간다고 말한다.

 백로에 대추 고추 빨개지고, 들판은 온통 황금 색이 되며, 목화밭은 하얀 꽃으로 뒤덮였다. 백로에 대추 떨고 추분엔 배를 땄다. 백로에 곡식 베고, 상강엔 감을 딴다. 백로에 곡식 추수, 한로엔 콩 추수. 목화는 이때 쯤이면 아래론 흰 솜이 피어나고, 위로는 분홍색 하얀색이 곱던 꽃이 계속 피지 않았던 가. 하교(下校) 길에 길가에선 어린 목화 다래 아직 솜이 되기 전이라 따먹으면 말캉 하면서 달큼하였다 네. 목화가 하얗게 많이 필 때는 마치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룬 것 같은 모습이 아니던가. 논들은 황금 물결로 출렁이고, 목화밭엔 흰 옷 입은 인산인해(人山人海)의 형상이었지.

 가을이 오행(五行)으로는 금(金)에 속하고, 금(金)의 컬러[色]는 백색(白色)이며, 방향은 서쪽이고 기온은 차[寒]다. 가을 추수와 함께 농부는 바쁜 일도 많은 게 가을이니 백로에 파 씨 뿌리고, 한로엔 마늘 심어야 했다[白露種葱, 寒露種蒜]. 파 씨는 뜨거우면 말라서 싹틀 수가 없으나 서늘한 백로가 딱 맞는 기온이고, 한로가 지나면 싹 돋기 전에 마늘도 얼어 죽을 수 있으니 한로 때까지는 마늘을 심어야 추운 겨울 죽지 아니할 만큼 자라게 하기 위함이다. 추수동장(秋收冬藏)이니 거두어들이는 가을, 겨울을 위해 갈무리하는 계절이다. 며칠 남지 않은 매미 쓰르라미 바삐 울어야 하는 것도 춥기 전에 짝을 짓고 알을 낳아 다음 세대의 애벌레가 자라야 하며 땅이 얼기 전에 그 벌레는 굼뱅이 되려고 나무에서 땅속으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기러기 돌아가는 제비[玄鳥]도, 아, 부엌의 부지깽이조차 바빴던 가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