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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영화`밀양`의 원작소설 이청준의 `벌레이야기`

  기차역을 이용하기 위해 잠시들른 밀양은 예스러웠다. 산병풍으로 포옥 둘러싸여 아늑하기도 했다.  밀양역 광장에 나서니  영화 '밀양' 의 포스터가 나란히 줄 서 있고  그 앞으로 나 있는  도로는 '전도연의 거리'라 한다.  영화속 가슴아픈 이야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만큼 밀양은 평화로웠다. 

 

  영화 속에서

  아들을 유괴당하고 거의 폐인이 되어 갈 쯤  종교에 의지하며 추수려 가던 과정, 그리고 아들죽인 철천지 원수, 유괴범을 용서하러

찾아가는 장면, 사형 집행일을 앞 둔 유괴범을 마주했을때의 절망과 배신감.  자식잃은 엄마는 절규속에서 폐인이 되어가고 있을 때, 정작 유괴범은 이미 그가 선택한 하나님으로부터 용서와 구원을 받고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사람이 되어 있었다.   오히려 그는 죽은 아이의 엄마를 위로한다.  그 온화하던 유괴범의 말과 행동에 엄마는 충격을 받고 다시 혼란에 빠진다.  자신이 용서하기 전에는 그 누구도 그를 용서할 자격이 없다.  하나님이라도 마찬가지다.  용서를 해도 죽은 아이의 엄마가 먼저다.  영화에서 잊혀지지 않는 장면을 딱 하나만 뽑으라면 바로 철창 안에서 뻔뻔스럽게 평온하던 사형수의 말과 행동 그리고 표정이다.  그 평온함이 왜 지금도 끔찍하게 클로즈업 되는 것일까.

 

  이 시나리오의 원작은 이청준의 중편소설 '벌레 이야기'이다.  물론 시나리오와는 다른 점이 있지만 뼈대는 거의 비슷하다.  서울에서 실제 유괴 살인사건이 일어 났고 그 범인이 남긴 말 '나는 하나님의 품에 안겨 평화스러운 마음으로 떠나가며 그 자비가 희생자와 가족에게도 베풀어지기를 빌겠다'는 이야기를 뉴스에서 듣고 이청준은 이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날이 갈수록 매체에서는 아동과 관련된 사건을 끊임없이 보도하고 보는 사람을 경악과 분노에 떨게 한다.  누구도 그 누구의 제물이 되어서는 안되겠지만 자기방어 능력이 전혀없는 어린이야말로 보호받아야할 첫번째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소설 속에서 

  약국집 부부의 아이는 유괴된 지 두 달 스물 날째 되던 날  참혹한 시체로 발견된다.  범인은 면식범, 아이가 다니던 주산학원의 원장. 금품을 노리고 저지른 천인공노할 살인이었다.  아이의 엄마는 인사불성으로 정신마저 오락가락한 상태로 절망과 자학속에 지

 낸다.   분노의 수렁에서 복수를 다짐하고 있는 그녀에게 종교의 힘을 빌어 스스로와 죽은 아이까지도 구원받게 하려는 사람이 있다.  이웃집 김집사.  아이엄마의 찢어지는 아픔은 뒤로하고 하나님의 역사와 섭리와 은혜와 사랑에 입이 닳던  김집사.  물론 그녀의  전도 자체를 나무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나치게 성급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자식을 잃었다.  엄마로서 팔다리가 잘려나가는 아픔이고 본인이 아니면 상상도 할 수 없는 고통이다.   

 

  상처가 치유되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시간이 필요하다.  세월 앞에 장사 없으니 언젠가는 아이에 대한 아픔도 희미해질 때가 올 것이며  아마 그때 쯤이면 살인범에 대한 용서도 생길 수 있지 않을까.  교회 생활을 한 지 몇 달이 지나자 김집사는 아이 엄마에게 사형수가 된 그 유괴범을 용서할 것을 종용한다.  7월에 아이의 사체가 발견되고 바로 범인이 잡힌 후,  다섯 달도 지나지 않아 살인범을 용서하라니 이것이 사람으로서 가능한 일인가.  부처의 가운데 토막이라도 힘든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를 용서하는 것이 죽은 아이를 구원하는 길이라는 김집사의 말에 결국 교도소를 찾는다. 여기서 반전, 그 곳에서 아이엄마는 이미 절대자에게 죄 사함을 받고 성인같은 모습으로 하나님 품의 어린 양이 되어 있는그를 만나게 된다.  그 후 그녀는 더욱 만신창이가 되고 인간적인 절규속에서 결국 선택한 것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었다.

 

  그래요. 내가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은 그것이 싫어서보다는 이미 내가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 없게 된 때문이었어요....하지만 나보다 누가 먼저 용서합니까.  내가 그를 용서하지 않았는데 어느 누가 나 먼저 그를 용서하느냔 말이에요.  그의 죄가 나밖에 누구에게서 먼저 용서될 수가 있어요? 그를 용서할 기회마저 빼앗기고 만 거란 말이에요.  내가 어떻게 그를 다시 용서합니까.

 

  김집사에게 묻고 싶다.  입장 바꾸어 똑같은 일을 당하게 된다면 아이 죽음과 동시에 그 살인범을 용서할 수 있을지.  그리고 그런 사람이 몇이나 될지.

 

출처 : 진주연의 설레임 공간
글쓴이 : 꽃방글 원글보기
메모 : 좋은 내용 저의 집으로 스크랩해 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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