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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명포구와 둘래길

 

 

 

 

 

 

무료한 일요일 집에서 빈둥거리다가는 살만찌고 머리만 굳어질거같아서 오후에 차를 몰고  대명리로  향했다.

함상공원도 만들고 둘래길도 만든다기에 거기나 가서 좀 걷다와야겠다고 카매라 들고 나섯다.

일요일이라서 그런지 넓은 주차장에 차 세울 곳도 없어서 한참을 해매었다.  역시 대명포구는 살아있었다.

어시장에는 발 디딜 틈도없이 사람들이 붐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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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부터 개장을 한다는거 같던데 아직은 함상에는 입장이 안되어도 시설은 대충 되어있는거 같다...

한번쯤은 볼만한 곳이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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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걷고싶었던 길이다..이 길이 강화대교 입구까지 나 있다는데 언젠가는 한번 완주를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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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가 익어가는 가을들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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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포진이다 ..옛날 내가 머리식히러 자주 왔던 곳인데 그 당시의 내가 앉았던 벤취도 없어지고 지금 한창 수리를 하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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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포진 포대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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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포진 파수청터 (사적 2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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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돌묘 ..손돌은 뱃사공이였다.고려시대 고종이 강화로 피난을 갈때 손돌이 사공이였는데 고종이 아무리 봐도 이상한 곳으로

배를 몰고가는거 같아서 저놈이 역심을 품고 나를 죽일려고 하는구나 생각하고 저놈의 목을 쳐라 하고 군사들에게 명했다

이때 손돌이 바가지를 물에 띠우면서 이 바가지가 흘러가는 곳으로 가면 강화섬으로 갈수있을테니 그렇게 하라고 이르고

죽었다.  정말로 그 바가지를 따라가니 강화에 가서 고종은 크게 후회하고 손들의 시신을 수습해서 여기에 묻었다고 한다.

김포시에서는 해마다 손돌의 제를 지낸다.

염하강 손돌만은 정말로 물살이 세고 지형이 복잡하게 생겨있다.

군사적으로 아주 유리한 곳인데도 여기를 이용하지 못하고 병인양요 신미양요 때 다 여기서는 싸움한번 안하고 적이 들어왔다.

덕포진 포대 맞은편에 남장포대가 있다.. 염하강 양쪽에서 공격을 했는데도 병인양요때나 신미양요때는 초지진과 광성보가

그냥 초토화 되고말았다..그 이유는 우리 조선의 포는 그야말로 장난감 같은 포였고 서양의 함포는 조정이 가능한 함포였기

때문에 상대가 되지못하고 거의 전멸하고 말았다.

그 염하만 지키면 서울이 지켜지는 곳인데도 ........ 물론 운양호 사건때도 우리의 화력이 너무 초라했기때문에 결국은 강화도

조약을 맺게되고 나중에는 일본의 식민지가 되고 말았지만......

 

아무튼 그 염하는 군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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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아지 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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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야생화 두개 덤으로 올린다.

오면서 소나기 흠뻑 맞으면서 터덕터더 걸어왔다.. 비를 맞고 걸은지도 십년도 더 된거 같다.

뭔가 짜릿한 쾌감같다고나 할가....더 좀 펑펑 쏘다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