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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직지사에...

 

 

 

 

 

 

 

고교 대선배님께서 찍으신 사진 가져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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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건 년대는 통일 신라시대가 ...
1. 직지심경
 
고려 우왕(禑王) 3년(1377)에 백운(白雲)이라는 승려가 만든 불서(佛書) , 구텐베르크보다 80년 앞선 현존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으로,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의 잘못된 표현이다. 부처님의 말씀을 기록한 경전에만 경(經)이 붙일 수 있기 때문에, 고려 말 백운 스님이 원나라의 석옥청공(石屋清珙)이 편찬한 <불조직지심체요절> 1권을 들여와 증보ㆍ편찬한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은 <직지심경>으로 불릴 수 없다. 1972년 파리 국립도서관에서 유네스코 주최로 개최한 ‘책의 역사’ 전시회에서 발견되었으며, 현재 파리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1972년 파리 국립도서관에서 유네스코 주최로 개최한 '책의 역사' 전시회에서 발견되었으며, 현재 파리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는
1800년대 말 콜랭 드 프랑시 주한 프랑스 공사가 프랑스로 가지고 갔으며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는 독일 구텐베르크의 활자보다 78년 이상 앞서 편찬되었기에 역사적인 가치가 있습니다.
 
2. 직지심체요절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이하 불조직지심체요절이라 함)은 백운화상이 75세였던 고려 공민왕 21(1372)년에 노안을 무릅쓰고, 선도(禪徒)들에게 선도(禪道)와 선관(禪觀)의 안목을 자각(自覺)케 하고자 함은 물론, 선풍(禪風)을 전등(傳燈)하여 법맥(法脈)을 계승케 하고자 저술한 것으로서, 그 제자 석찬과 달담이 비구니 묘덕의 시주를 받아 청주 흥덕사에서 1377년 7월에 금속활자로 인쇄하였다.
 
「불조직지심체요절」은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선문염송집(禪門拈頌集)」등의 사전부(史傳部)의 여러 불서(佛書)를 섭렵하고 역대의 여러 불조사(諸佛祖師)의 게(偈), 송(頌), 찬(讚), 가(歌), 명(銘), 서(書), 법어(法語), 문답(問答) 중에서 선(禪)의 요체(要諦)를 깨닫는데 필요한 것만을 초록(抄錄)하여 찬술(撰述)한 것이 그 주된 내용이다.
 
「불조직지심체요절」의 ‘직지심체’는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이라는 수신오도(修身悟道)의 명귀에서 채록한 것으로 ‘참선하여 사람의 마음을 직시(直視)하면, 그 심성이 곧 부처님의 마음임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본서는 우리나라의 학승(學僧)들이 대교과(大敎科)를 마치고 수의과(隨意科)에서 공부하는데 사용되는 대표적인 학습서인 것이다.
 
「불조직지심체요절」의 찬자(撰者)인 백운화상(白雲和尙)은 백운이 그의 호이며, 법명(法名)은 경한(景閑)이다. 고려 충렬왕 24(서기1289)년에 전라도 고부(古阜)에서 출생하여, 공민왕 23(1374)년에 여주(驪州)의 취암사(鷲巖寺)에서 77세를 일기로 입적(入寂)하신 분이다.
화상은 어려서 출가하여 불학(佛學)을 익히고 수도하는 데에만 전념하였다. 후에 백운화상은 중국 호주(湖州) 하무산(霞霧山) 천호암(天湖庵)의 석옥청공(石屋淸珙)화상으로부터 직접 심법(心法)을 전수 받았으며,인도의 지공(指空) 화상에서도 직접 법(法)을 물어 도(道)를 깨달았던 것이다. 귀국한 뒤에는 태고 보우국사(太古普愚國師, 1301∼1382)나 혜근 나옹화상(惠勤懶翁和尙, 1320 ∼ 1376)과 더불어 대선사(大禪師)로서 어깨를 나란히 하였다. 뿐만 아니라 황해도 해주(海州)의 안국사(安國寺)에서 11년 동안이나 선림(禪林)의 정업(精業)에 전력하였고, 뒤에는 해주의 신광사(神光寺)에서 후학들을 계도(啓導)하였다.
 
「불조직지심체요절」이 해외로 유출된 경위는 조선시대 고종 때 주한 불란서대리공사로 서울에서 근무한바 있는 꼴랭 드 쁠랑시(Collin de Plancy)가 수집해간 장서에 포함되어 있던 것이 그후 골동품수집가였던 앙리베베르(Henry Vever)에게 넘어갔으며 그가 1950년에 사망하자 유언에 따라 프랑스국립도서관으로 이관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책은 상·하 2권으로 되어 있으나, 현재 하권만이 유일하게 프랑스에 소장되어 있으며, 하권은 39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첫째장은 없고 2장부터 39장까지 총 38장만이 보존되고 있다.
 
3 흥덕사
흥덕사(興德寺)의 창건년대와 규모는 알 수 없으나, 「불조직지심체요절」. 하권 간기에 고려 우왕 3년(1377)에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책을 인쇄하였음을 명기(宣光七年丁巳七月 日 淸州牧外興德寺鑄字印施)하고 있는데, 이것은 독일의 구텐베르그보다 70여년이나 앞선 것으로 1972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도서의 해"에 출품되어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으로 공인된 것이다.
그러나 흥덕사지의 위치를 확인할 수 없던 중 발굴조사 결과 출토된 청동으로 만든 북(靑銅禁口)와 청동불발(靑銅佛鉢)에 "西原府 興德寺(서원부 흥덕사;서원은 신라때 청주의 이름)"라는 글자(名文)가 음각되어 있어 이곳이 바로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을 간행한 흥덕사임을 입증하게 된 것이다.
이 책은 금속활자를 이용하여 인쇄하였는데, 인쇄술을 보다 편리하고 경제적이며 교정을 쉽게 하여 주었고 이 모든 것은 책의 신속한 생산에 공헌하였다. 또한 활자 인쇄술에 적합한 먹, 즉 기름먹을 발명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한국이 혁신한 실용적인 활판 인쇄술은 동양 인쇄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유럽등지로 전파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2001년 9월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되었다.
 
 
4. 직지[直指]란?
 
 
[직지의 명칭]
 
청주 흥덕사에서 1377년에 금속활자로 간행한 책의 이름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 (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이다.
 
이 책의 이름을 줄여서 「불조직지심체요절」, 「직지심체요절」, 「직지심체」, 「직지」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1972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주최한 ’책’ 전시회에 「직지심경」이라 소개되면서 한때 잘못 불리기도 하였다.
 
불교에서 ’경(經)’은 불교경전을 뜻하는 것이다.
이 책은 엄밀한 의미에서 불경이 아니므로 「직지심경」은 잘못된 표현이다. 여기에서는 판심제(版心題 )에 나타나는 가장 간략한 책의 이름으로 「직지」라고 부른다.
 
 
[직지의 편저자]
 
「직지」를 편저한 백운화상의 호는 백운이고, 법명은 경한(景閑, 1298∼1374)이다.
 
백운은 1298년(충열왕 24)에 전라북도 정읍에서 출생하였다.
 
1372년(공민왕 21, 75세)에 성불산 성불사에서 145가(家)의 법어를 가려 상·하 두권으로 「직지」를 편집하여 저술하였으며, 1374년(공민왕 23, 77세)에 여주 취암사에서 입적(入寂)하셨다.
 
 
[직지를 간행한 사람]
 
직지」를 1377년에 청주목(淸州牧) 밖에 있는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인쇄하여 배포하는데 연화문인(緣化門人 ) 석찬(釋璨), 달잠(達湛), 시주 비구니 묘덕(妙德)이라는 간행 기록이 있다.
 
석찬은 「백운화상어록」 상·하권을 모아서 기록한 백운화상의 수행비서격인 시자(侍者)였다.
 
특히 비구니 묘덕은 흥덕사 금속활자본과 취암사 목판본의 「직지」 간행에 모두 관여한 인물이다.
 
석찬과 달잠은 모두 백운화상의 제자로서 스승의 가르침을 세상에 널리 펴기 위해 묘덕의 시주를 받아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직지」를 간행하게 되었다.
 
 
[직지의 프랑스 소장 경위]
 
「직지」는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 동양문헌실에 소장되어 있다.
 
그 경위는 1886년 한불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된 후 초대 주한대리공사로 부임한 꼴랭 드 쁠랑시(Collin de Plancy, 1853∼1922)가 우리나라에 근무하면서 고서 및 각종 문화재를 수집하였는데, 그 속에 「직지」가 포함되었던 것이다.
 
 
[직지의 재발견]
 
「직지」는 1901년 모리스 꾸랑(Maurice Courant, 1865∼1935)이 저술한 「조선서지」보유판에 수록됨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 실물과 내용은 확인되지 않다가 1972년 "세계 도서의 해(International Book Year)"를 기념하기 위한 ’책’ 전시회에 출품됨으로써 세계에 주목을 받게 되었다.
 
직지[直指] - 현존하는 세계에서 최고(最古-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본
 
 
처음 간행 연도 : 1377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본인 '직지'의 발견 경위
 
→ 1901년 쿠랑이 발행한 '조선서지'에 소개
 
1972년 5월부터 10월까지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전시회에
 
이 책이 전시되면서 알려지게 됨
 
'직지'가 프랑스에 가게된 경위 → 주한 프랑스 대리 공사 플랑시가
 
수집하여 귀국할 때 가지고 깄다.
 
'직지'가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선정된 까닭 → 현존하는 금속 활자본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임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직지'의 특성은?
 
→ 한 판에 같은 글자의 동일한 꼴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활자 모양이 정교하게 주조된 것과 주조를 실수하여 모양이 가지런하지 않거나 일그러지고 획의 일부분이 끊겨진 것도 보인다.
 
절의 전통적인 주조 방법은? → 밀랍 주조법
 
인쇄 문화실에서는 무엇을 전시하고 있나?
 
→ 시대별, 주제별 인쇄 발달사
 
5.직지사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代項面) 황악산(黃嶽山)에 있는 사찰. 직지사경북 김천시 대항면 운수동. 종파 대한불교 조계종 소재지 경북 김천시대항면 운수리 216 고구려의 아도(阿道)가 지었다는 설이 있으나 현재 사적비(寺蹟碑)가 허물어져 확실한 것은 알 수 없고, 418년(눌지왕 2)에 묵호자(墨胡子)가 경북 구미시에 있는 도리사(桃李寺)와 함께 창건했다고 전한다. 그 후 645년(선덕여왕 14)에 자장(慈藏)이, 930년(경순왕 4)에는 천묵(天默)이 중수하고, 936년(태조 19)에 능여(能如)가 고려 태조의 도움을 받아 중건하였는데, 임진왜란 때 불에 거의 타버려 1610년(광해군 2)에 복구에 들어가 60여 년 후 작업을 끝맺었다. 직지사라는 절 이름은 능여가 절터를 잴 때 자를 쓰지 않고 직접 자기 손으로 측량한 데서 붙여졌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그냥 설화인 것 같고 직지사란 이름의 유래는 아마도 직지심체요절에서 따 온 것 같다...나의 생각)조선시대에 학조(學祖)가 주지로 있었고, 유정(惟政)이 여기서 승려가 되었다. 경내에는 석조약사여래좌상(보물 319), 대웅전 앞 3층석탑(보물 606), 비로전 앞 3층석탑(보물 607), 대웅전 삼존불 탱화 3폭(보물 670), 청풍료(淸風寮) 앞 3층석탑(보물 1186) 등의 문화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