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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활의음악정원

가끔은 밝고 가벼운 음악도 좀 들어야...모차르트 세레나데, 디베르티멘토...

보월산방도사님의.. 가끔은 밝고 가벼운 음악도 좀 들어야...모차르트 세레나데, 디베르티멘토...






희유곡이라 표현되는 디베르티멘토나 세레나데는 통상 귀족들의 행사나 경사, 오락, 식사를 위한 음악으로

분류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감상 가치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세레나데가 주로 야외에서 연주되는 곡인데 비해

디베르티멘토는 실내에서의 식사용이라고 한다.

나는 서양고전음악 감상을 취미로 삼아 오랜 세월에 걸쳐 꾸준히 들으면서도 왠지 모르게(아마도 지적 허영심

때문에) 상대적으로 무게감 있고 비장한 분위기의 곡에 먼저 손이 갔고 따라서 작곡가를 불문하고

디베르티멘토나 세레나데 부류의 음악은 경박하고 깊이가 없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통 가까이하지 않았고

관심도 없었다.

다만, 세레나데이긴 하지만 모차르트의 세레나데 제13K.525 <아이네 클라이네 나하트 무직>만큼은

너무 유명하고 방송매체 등에서 반복적으로 접했기에 세레나데 종류로는 이 한 곡만 알고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언젠가 세레나데 <하프너>를 듣게 되면서 모차르트의 매력을 새삼 발견하고,

<포스트혼> 등 모차르트의 다른 세레나데들과 디베르티멘토들까지 애써 찾아 들었던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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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레나데 제7K.250 <하프너(Haffner)>는 잘츠부르크의 부호집안인 하프너가의 의뢰로 1776(20) 작곡된

결혼축하용 음악이며, 통상적인 연주시간이 거의 한 시간에 달해 모차르트의 모든 세레나데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악장 수도 8개나 된다. 8개 악장 중 제3악장, 5악장, 7악장이 미뉴엣으로 작곡되었을 정도로 전곡이 밝고

경쾌하며, 듣고 나면 우아한 교향곡을 들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감상용으로도 좋고, 무슨 일을 하면서 배경음악으로 들어도 좋고, 그냥 틀어놓고 있으면 기분이 상큼해진다.

대중적으론 제4악장 론도의 인기가 가장 높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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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레나데 제9K.320 <포스트혼(Posthorn)>1779(23) 작곡된 7악장 구성의 작품인데 제6악장에서

당시 우편마차나 역마차의 발착을 알리던 나팔이 사용되어 포스트혼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대단히 매력적인 곡이라 생각하며 마지막 3개 악장만 들어도 충분히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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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7(21)에 작곡된 디베르티멘토 제15K.287은 디베르티멘토 제17K.334와 더불어 모차르트의

디베르티멘토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아름다우며 전아한 맛이 일품인데 특히 제4악장 아다지오가 무척 어여쁘다.

나는 개인적으로 종종 이 제4악장만 따로 떼어 듣길 즐기는데 안정감 있는 구조 속에 우미한 고전의 향기가

가득 넘쳐흐른다. 잘츠부르크의 귀족 로드론 백작부인의 의뢰로 작곡되어 로드론이란 부제가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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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베르티멘토 제17K.334는 로비니히라는 잘츠부르크 명문가 친구의 대학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

1780(24완성했다는데, 전곡이 다 좋지만 특히 제3악장 미뉴엣이 너무나 유명하며

보통 모차르트의 미뉴엣하면 이 악장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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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의 세레나데와 디베르티멘토는 내가 세속에 살고 있음을 일깨워 주고 늘 가벼운 휴식 충동을 느끼게

한다. 브루크너가 만들어 준 깊은 명상의 심연에 빠져 있다가 세레나데 풍 음악이 권유하는 속세의 만만함으로

복귀할 때의 그 상쾌함과 살아 있다는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한창 음악에 심취해 있던 총각 시절의 어느 휴일, 커텐으로 빛을 차단한 채 묵직함의 대명사인 브람스 교향곡

4개를 서너 번이나 연이어 듣다가 저녁 먹으러 골방을 나서면서 일상으로의 복귀가 주는 행복감에 전율했던

그 순간이 떠오른다. 브루크너와 브람스가 보여 주는 사색과 명상의 세계가 인류에게 얼마나 소중한 위안을

주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겠으나 세레나데와 디베르티멘토가 가져다주는 세속적 휴식의 세계 역시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꼭 존재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동물의 일종에 불과한 인간이 뭐 그리 사색에만 몰두할 수 있을 것인가! 온 국민이 최불암 주연의 <수사반장>이나

막장극 <사랑과 전쟁> 같은 TV드라마를 좋아하는(?) 이유도 통속적이고 진부한 것에서 오는 만만함과 편안함이

나름대로의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브람스와 브루크너만 듣다 보면 그 무거움에 눌려 <KBS 가요무대>와의 휴가를 모색하게 되고 가요만 듣다 보면

보다 깊은 사색과 은둔이 그리워져 브람스와 브루크너를 다시 찾게 된다.

영문학에서 자연을 찬미한 대부분의 명시(名詩)들이 축축한 사랑놀이 직후에 만들어진 것들이라던 어느 노교수의

말도 생각난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컴컴한 실내에서 귀족 유부녀와 사랑노름을 즐긴 직후, 어느 정도

상대 이성에 대한 권태도 생겼고 양심의 가책도 있는 터에 몇날며칠 만에 창밖으로 바라본 태양과 초원과 바다가

젊은 시인에게 얼마나 더 찬란하고 싱그럽게 보였을지는 굳이 말할 필요조차 없다.

태양과 대자연을 찬미하는 아름다운 시구가 마구 마구 쏟아졌을 것이다.

그러다 몇 편의 시를 완성할 무렵쯤이면 또 다시 그 귀족 부인의 음습한 품으로 달려가고 싶어지고...


생의 유한함에서 오는 근본적인 쓸쓸함과 찬란한 태양이 주는 생의 기쁨이 공존하는 피조물의 삶에서 한 가지

색조만 지닐 수는 없는 법이다. 무거움과 가벼움, 밝음과 어두움을 번갈아 취하다 때가 되면 아침이슬처럼

사라지는 게 우리의 생인 것이다. 그러기에, 오로지 경건함 일변도로 조물주와 대자연에 대한 경외를 노래한

브루크너와 가벼운 왈츠만 흥얼대던 요한 스트라우스가 비엔나에서 함께 살 수 있었던 것이다.

한 모퉁이에서는 브루크너의 엄숙함이, 다른 모퉁이에서는 요한 스트라우스의 경쾌함이 흐르던 비엔나,

바로 그곳이 인간세상의 전형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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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듣는 모차르트의 세레나데와 디베르티멘토로 하여 내 마음은 이미 잘츠부르크의 어느 귀족가문 정원을

산책 중이다. 정확하게 29년 전, 없는 돈에 밤기차로 잘츠부르크에 도착하여 물살 센 잘차 강을 넘어

꽃이 만발한 미라벨 정원, 아기자기한 간판들이 인상적인 게트라이데가세 거리, 모차르트 생가,

언덕 위의 호헨잘츠부르크 성, 분수의 궁전으로 불리는 헬브룬 정원을 걸었던 게 생생하게 생각난다.

잘츠부르크를 생각할 때마다 모차르트의 세레나데와 디베르티멘토를 들을 때처럼 따스함, 안온함을 느낀다.

먼 곳에서 만들어진 짧은 추억들이 정신건강에 참 좋다. 일상의 권태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마다 자연스레

떠오르는 잘츠부르크는 이미 먼 나라의 특정 지명에 머무는 게 아니라 적어도 내게는 언제나 기분 좋은

피안의 언덕으로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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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 : 디베르티멘토 제15번 K.287 중 제4악장 




모차르트 : 디베르티멘토 제17번 K.334 중 제3악장




모차르트 : 세레나데 제7번 K.250 <하프너> 중 제4악장




모차르트 : 세레나데 제9번 K.320 <포스트혼> 중 제6악장




모차르트 : 세레나데 제13번 K.525 중 제2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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