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 글 - 진불자인(進不藉人) 퇴불우인(退不尤人) ♧
- 나아갈 때는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물러날 때는 남을 탓하지 않는다
-
영광(靈光)에 사는 강씨(姜氏) 성의 토호(土豪)가 이웃 백성을 곤장으로 때리며 자주 괴롭혔다.
견디다 못한 백성이 그를 다른
일로 밀고(密告)를 했다.
토호 강씨는 제 세력을 믿고 사또 앞에서도 기세등등하다가 곤장을 맞고 나와 갑자기 죽었다.
그의 후처
이씨가 전처 소생의 아들과 함께 밀고한 백성을 칼로 찔러 죽이고 관가에 자수했다.
새로 부임한 사또 임상원(林象元)이 모자를 의롭게
여겨 조정(朝廷)에 보고를 올렸다.
영조(英祖)는 모자를 함께 좋은 곳에 유배 보내고,
그 마을에 효자와 열녀의 정문(旌門)을 세우게
했다.
유배지인 하동(河東)으로 가는 길가에 사람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공경을 표했다.
노자로 준 돈만 수백
금이었다.
모자는 하동 고을 포교(捕校)인 박부장(朴夫長)의 집에 묵었다. 그는 음탕한 자였다.
이씨의 미모(美貌)에 흑심(黑心)을 품었다.
그의 집은 방이 하나뿐이라 아랫목 윗목으로 나누어 거처했다.
박부장은 일부러 마누라와 음란한 짓을 자행하여 이씨의
음심(淫心)을 도발해,
마침내 사통(私通)하여 임신을 시켰다. 고향에 휴가를 다녀온 아들이 사실을 알고 그 길로 관가에 고발하니,
이씨는
박부장의 아내가 되려고 사실대로 자백했다.
결국 조정에까지 보고가 되어 이씨는 흑산도(黑山島)에 종으로 유배를 가게 되었다.
가는
길에 그녀는 창기(娼妓)처럼 음란한 짓을 자행했다.
아들은 어미를 고발한 죄로 강계(江界)로 유배를 갔다.
그후 하동에 있던
효자문(孝子門)과 열녀문(烈女門)은 철거되었다.
※ 출전 : 성대중(成大中)의
청성잡기(靑城雜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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