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같은 곡을 대여섯 번 넘게 반복해 듣고
있다.
흐린 날씨에 어울리는
듯한 음울한 맛에 듣는다.
말러의 <피아노 4중주>다.
이제 겨우 23살인 집안 조카에게서 뇌종양이 발견되었고
상태가 좋지 않다는 문자를
그의 아버지로부터 받고 처참한 심정으로
평소엔 잘 듣지도 않는 말러의 옛 음반을 꺼냈다.
청춘을 구가할 대학 4학년 아리따운 아가씨에게 이 무슨
청천벽력인가...
이십년 넘게 집안 대소사 때마다 용돈을
주면서 성장과정을 지켜봤고,
하도 단아하고 얌전해
어느 왕실의 공주 같은 분위기의
아이인데,
앞으로 아이가 겪을
시련을 생각하니 정신이 아득해진다.
부부의사의 하나 딸로 자라나 서울의 유서
깊은 명문 사학을 다니는,
팔자에 고생이라고는
없을
아이로 봤건만 역시 인생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진정 절대자가 있다면 살려달라고 눈물로
호소하고 싶다.
언젠가 한번은 떠나야
하는 것이
인생이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순서라는 게
있지 않은가...
말로 다 못할 힘든 과정들을 거치게 되겠지만
부디 치료가 잘되어 그 고운 미소를 오래오래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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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러의 <피아노 4중주>는 빈 음악원 학생이던
16세에 만들었으며,
온전히 보관되어 온
그의 유일한 실내악
작품이다.
이 시기에
<피아노 5중주>
등 실내악을 여럿
만들었으나
훗날 작곡가 스스로 다 폐기해 버리고
단악장의 이 곡만 남겼다고 하며,
출판업자의 서랍에
들어 있다가 말러 사후 미망인 알마에게
전달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처음부터 단악장으로 쓰려던 건 아니고 피아노
4중주를 시도하다 첫 악장만 쓰고 그만두었다는
게
정설이다.
14남매 중 가장
친밀했던 한 살 터울의 남동생이 오랜 병마 끝에 세상을 떠나버리자,
말러는 깊은 슬픔에
빠졌고,
동생을 잃은 울적함이
사춘기적 감성,
천재적 음악성과
버무려져
서럽고도 아름다운 선율로 탄생된
듯하다.
올해 아카데미 영화제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이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에게서 많이 배웠다고
말하여 그 자리에 있던 마틴 감독에게 후배
영화인들이 기립박수를 보낸 장면이 있었는데,
이 곡이 마틴 감독의 영화
<셔터 아일랜드>에 사용되기도 했다(어두운 화면 속에서 LP
음반은
돌아가고 옆사람이 “음악 좋네...
브람스인가?”라고 하자 주인공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아니,
말러야...”라고 말하는 대목이
있다).
2017년 제14회 평창대관령 음악제에서도 피아니스트
손열음과 첼리스트 지안 왕이 참여한
사중주단이 이 곡을
연주했다.
말러의 골수팬들은 말러가 남긴 유일한
실내악이라는 점만으로도 이 곡에 애착을 가질 것이며,
말러 교향곡에 진저리를 치는 이들도 이
곡만큼은 짧은 맛에 어찌어찌 견딜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어느 피아니스트는 이
곡을 틀어놓고 김광균 시인의 시 <은수저>를 읽다가
눈물을 왈칵 쏟았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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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저문다
노을이 잠긴다
저녁 밥상에 애기가 없다
애기 앉던 방석에 한 쌍의
은수저
은수저 끝에 눈물이
고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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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 바람이 분다
바람 속에서 애기가
웃는다
애기는 방 속을
들여다본다
들창을 열었다 다시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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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들길을 애기가 간다
맨발 벗은 애기가 울면서
간다
불러도 대답이 없다
그림자마저 아른거린다
우한 코로나로 괴로운 대구에도 봄은 찾아오고...집 근처를 지나는 길에
찰칵...

말러 : 피아노 4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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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afe.daum.net/musicgarden/FLjB/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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