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감촉
조지훈
바람은 벌써
셀룰로이드 구기는 소리가 난다.
두드리면 대금처럼
맑게 울릴 듯 새파란 하늘
내라도 붓을 들어
붉은 점 하나 찍고 싶은데
온 여름내 태양을 빨아들여
안으로 성숙한 과일들이야
꽃자주빛 주황색으로
영글 수밖에----
무르익어 아귀가 벌어
떨어지는 씨알을 땅에 묻고 싶은
성실한 의지가 결실한
저 푸른 허공에
영롱한 점 하나 둘
바쁜 계절을 보내고
이제는 돌아와
창 앞에 앉고 싶어라.
앉아서 조용히
옛날을 회상 하고픈
가을은 낙엽이
뿌리를 덮는 계절
하늘은 자꾸만 높아 가는데
마음은 이렇게 가라앉아
새하얀 바람 속에
옥양목 옷 향기가 정다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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