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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들은 마치 해적같았어요. 너무 잔인했죠. (서양인의 눈으로 본 조선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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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들은 마치 해적같았어요. 너무 잔인했죠. (서양인의 눈으로 본 조선 1편)

 

#조선 #한국 #병인양요

 

1867년에 일뤼스트라시옹에 게재된 이 서신은 우리 한국에서는 ‘병인양요’라고 부르는 사건을 배경으로 합니다. 1400년대 대항해시대가 시작된 이후로 서양은 전세계적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대륙에 땅따먹기 하듯이 경쟁적으로 식민지를 건설해나갔습니다. 1800년대 접어들면서 서양의 힘이 본격적으로 동아시아에 미치기 시작했는데 이 당시 동아시아에 출현한 서양은 이전의 서양과 많이 달랐습니다. 18세기 이후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경제적으로 동아시아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을 보유하게 됐었죠. 서양과 동아시아의 최초의 충돌은 1840년 중국과 영국 사이에 벌어진 '아편전쟁'입니다. 아편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은 중국에 난징조약을 강요해 홍콩을 넘겨받았고 상하이 등 5개 항구를 강제로 개방시켜버렸습니다. 1860년 영국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프랑스와 연합해 베이징을 점령하고 중국과 베이징 조약까지 체결했습니다. 베이징 조약에 따라 중국은 중국내륙 하천의 통행권까지 전부 넘겨주게 됐는데요. 이제 서양은 중국 해안의 항구 뿐 아니라 내륙에까지 영향력을 확대하기에 이른겁니다. 당시 중국의 패배는 조선에게 상당한 충격이었습니다. 흥선대원군은 이런 국제정세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나라 문을 걸어잠그는 쇄국정책을 강화해 군대제도를 개편하고 한양으로 접근하는 길목인 강화도 일대에 군사력을 증강시켰죠. 그런데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은 실패한 정책으로 비난받습니다. 19세기는 전세계 모든 국가가 문명의 대전환기를 맞이하던 시기입니다.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이 유럽 각지로 번져나가면서 유럽은 산업국가로 변모했지만 동아시아 국가들은 여전히 농업국가로 머물렀습니다. 경제적인 면이든 군사적인 면이든 그 어떤 것도 유럽과 경쟁이 되지 않았죠. 그런데 흥선대원군은 1866년 병인년에 천주교도들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을 시작했습니다. 이때 프랑스 신부를 잡아 처형했는데 이는 대원군의 마음 속에 서양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서양이 조선을 침략했을 때 천주교도들이 이에 호응해 조선을 위기에 빠트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죠. 결국 1866년 10월 프랑스 군대는 조선을 침공해 강화도를 점령했습니다. 명목은 프랑스인을 처형했다는 것이지만 실제 목적은 통상을 요구하기 위한 것이었죠. 우리가 '병인양요'라고 부르는 프랑스와의 전쟁이 일어난겁니다. 하지만 기습적으로 조선을 침략해 당연히 승리를 가져올 줄 알았던 프랑스는 정족산성 전투에서 조선 의용군과 사격술이 능한 포수들의 기습공격을 받아 심각한 타격을 입습니다. 조선에서는 5명이 프랑스에서는 27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는데 조선인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 바람에 겁을 집어먹고는 철수해버렸는데요. 이 때 프랑스군은 철수하면서 외규장각 도서 등 온갖 문화재와 은궤를 약탈해갔습니다. 병인양요는 서방국에게도 충격이었습니다. 농업을 기반으로 한 조그만 국가가 산업을 기반으로 온갖 무기를 보유한 프랑스를 상대로 승리를 거뒀다는 점에서 다른 서방국가들의 침략야욕을 꺽어버린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