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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음성)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꽁꽁 숨겨뒀던 100년 전 한국어 육성녹음 원본

(실제음성)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꽁꽁 숨겨뒀던 100년 전 한국어 육성녹음 원본 - YouTube

[광고 문의] 디씨멘터리 채널과 광고 협업을 원하시는 분은 아래 이메일로 문의해주세요. dcmentary@naver.com (실제음성)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꽁꽁 숨겨뒀던 100년 전 한국어 육성녹음 원본 #한국어 #프랑스 #이극로 우물 밖의 개구리 유튜브 채널: https://www.youtube.com/channel/UCF6Z... 뛰어난 언어학자이면서 독립운동가이기도 했던 이극로 선생은 1923년 베를린에서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는 재독한인대회를 개최했고 4년 뒤에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개최된 '세계피압박민족대회'에 조선의 대표로 참석해 일제의 식민지배를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당시 참석한 한국대표는 총 4명(김법린, 이극로, 이의경, 황우일)입니다. 그 중 이극로 선생은 일제강점기 시절 최고의 엘리트로 소련에서 군사학을 배우고, 독일에서 정치경제학을 공부하고 철학박사를 취득했죠. 그는 경제학자, 철학자 뿐 아니라 독립운동가이자 민족주의 역사가 그리고 한글운동가 등 다방면에서 활동했는데 시기가 시기인만큼 그는 조선어가 사라지는 것에 대해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철학박사를 취득했던 베를린대학교에 1923년 조선어과를 창설하고 조선어강사로 3년간 활동하기도 했는데요. 이 당시 그는 참을 수 없는 모멸감을 느낍니다. 3년동안 조선어강사로 활동하면서 그는 총 17명의 학생을 가르쳤는데 서양학생들이 그에게 "그대 나라는 사전도 없는가?"라는 말 한마디에 엄청난 부끄러움이 들었다고 하죠. 그래서 "조국으로 돌아가면 반드시 조선어에 한목숨을 바치겠노"라고 다짐합니다. 뒤에서 다시 말씀드리겠지만 이러한 그의 다짐과 여러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 ‘조선어학회’가 만들어졌고 2019년 개봉한 영화 ‘말모이’가 이를 배경으로 합니다. 어쨌든, 1927년 2월 열린 ‘세계피압박민족대회’에 참석한 후 1929년 1월 8일 조선으로 돌아오기 직전 그는 대뜸 프랑스로 날아가 소르본대학교를 찾아갑니다. “프랑스의 언어학자 ‘페르디낭 브뤼노’라는 사람이 설립한 ‘구술 아카이브’라는 곳은 전세계 모든 언어를 ‘육성’으로 녹음해 보존하려고 한다”는 소식을 접한 그는 일제가 말살시키려는 조선어를 어떻게 해서든 육성으로 남겨야 한다는 사명감에 사로잡히죠. 그리고는 소르본대학교를 위해 ‘파테 프레즈(Pathé Frères)’라는 축음기 회사가 제공한 축음기 앞에 앉습니다. 그 자리에서 인류 최초의 한국어이자 가장 오래된 한국어 육성 녹음본이 남겨집니다. 구독자 분들께서 인류 최초의 한국어 육성 녹음본을 통해 현재의 한국어와 100년 전의 한국어가 어떻게 다른지 한 번 들어보십시오. 사진출처: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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