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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로 돌아간 카자흐 색깔혁명/위구르인 전 총리 체포와 친중라인 붕괴

실패로 돌아간 카자흐 색깔혁명/위구르인 전 총리 체포와 친중라인 붕괴 - YouTube

카자흐스탄에서 발생한 폭동이 거의 진압됐습니다. 러시아 푸틴대통령의 직할 공수부대 3000명과 벨라루시, 타지키스탄, 아르메니아등 CSTO의 평화유지군이 도착하자마자 카자흐스탄사태는 신속하게 잦아들었습니다. 폭도들이 죄다 도망가거나 자진해산했습니다. 전격적이고 초강경 대응 방침을 밝히는 바람에 유혈사태는 없었습니다.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1월 10일을 전국애도일로 선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카자흐스탄 당국은 지금까지 20여명의 폭도를 척살하고 외국인을 포함해 모두 4200명을 체포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번 사태로 2억달러의 경제손실과 함께 경찰과 국민방위군등 모두 18명이 사망하고 750명이 다쳤다고 밝혔습니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당초 시위의 명분이었던 연료가격 앙등을 바로잡고 야간 통금령도 내렸지만 폭력시위가 오히려 더 심각해져 발포명령을 내렸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이번 사태를 외국에서 훈련받은 테러분자가 준비해 선동한 무장침략행위로 규정했습니다. 토카예프는 카자흐스탄 최대 도시 알마띄에서만 2만명의 갱스터와 테러분자들이 폭력시위에 가담했다고 밝혔습니다. 시위대는 알마띄 시청사를 불태우고 곳곳에서 약탈 방화를 저질렀습니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2만명의 시위대가 최소한 6차례 대규모 공격을 가했다고 말했습니다. 카자흐스탄은 영토가 272만 평방킬로미터로 아주 광대하지만 인구는 1900만에 불과합니다. 인구밀도도 극히 낮습니다. 카자흐스탄의 최대 도시로 옛 수도였던 알마띄의 인구는 185만에 불과합니다. 이런 곳에서 2만명이상이 자발적으로 시위를 벌였다고 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측면이 있습니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폭도들이 무기를 소지하고 있었으며 체포된 이들 가운데는 카자흐어를 모르는 외국인들도 대거 끼어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시위대 가운데는 차량을 몰고 경찰을 향해 질주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경찰 대형을 향해 승용차로 이리 저리 돌진하는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또 시위대가 경찰을 참수하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피닉스TV의 주러시아 특파원 통샤오화는 시위대가 한 무리의 경찰을 포위해 완전제압하고 두들겨 팼다고도 전했습니다. 통샤오화 특파원은 시위의 배후에는 경제동기의 음모가 배후에 있다는 토카예프의 발언도 전했습니다.

경제동기 즉, 카자흐스탄의 자원 약탈을 포함한경제적 음모가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외세가 부추긴 폭동이라는 주장입니다. 그리고 카자흐스탄이 CSTO안전보장기구에 병력파견을 요청한 조치가 미국의 허를 찔렀다고 평가한 러시아군사잡지 편집장 크로토친코의 발언도 소개했습니다. 미국은 깜짝놀라 어찌 할줄 몰라하고 있다는 겁니다. 미국은 카자흐스탄에 주재하는 자국외교관들에게 자발적으로 떠나도 된다고 허용했습니다. 철수 명령이 아니라 카자흐스탄내 사태가 엄중해 영사업무를 제대로 볼 수 없으니 알아서 판단하라는 거였습니다. Voluntary departure라는 단어가 정상이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철수명령도 아니고 미 국무부가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역력합니다. 결정적으로 이제 카자흐스탄 사태가 일단락 됐는데 이런 조치를 취하는 게 상당히 이상합니다. 따라서 미국이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는 색깔혁명이 카자흐스탄에서 실패로 돌아간 것으로 보는 이들이 많습니다. 카자흐스탄에서는 러시아, 중공, 미국이 각축을 벌여왔습니다. 러시아는 역사와 문화적 연고를 내세웠고 중공은 금권외교가 무기였습니다. 미국은 잘 아시는 대로 인권외교가 무기입니다. 그런데 이번 사태는 카자흐스탄내 권력투쟁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전임대통령 나자르바예프는 30년동안이나 장기집권했습니다. 공산주의 정권은 아니지만 1인 독재체제였습니다. 곳곳에 자기 동상을 세우는 등 개인우상화에도 몰두했습니다. 이번 사태에서 시위대들은 나자르바예프의 동상도 철거했습니다. 외세가 개입해 조장하기는 했지만 나자르바예프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폭발한 측면도 분명히 있습니다. 나자르바예프는 2019년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국가안보위원회의 의장자리는 놓지 않았고 Elbasy, 국가지도자란 타이틀도 유지했습니다. 사실상 수렴청정을 받아왔던 토카예프는 나자르바예프에게 불만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시위대가 나자르바예프의 동상을 철거하며 항의하자 토카예프는 소요사태의 책임을 물어 국가안보위원장 직책을 내려놓도록 조치했습니다. 그리고는 곧바로 러시아 푸틴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CSTO병력파견을 요청하는 한편 폭도들에게 자비를 배풀지 말고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카자흐스탄 사태의 큰 그림을 보면 친중에 기울면서 러시아로부터 멀어진 나자르바예프세력을 토카예프가 일소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나자르바예프는 중공의 라오펑여우입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서 이탈해 사실상 동유럽권으로 편입된 이후 카자흐스탄과 조지아등은 구소련의 색채를 지워왔습니다. 물론 구소련과 러시아와는 다르지만 러시아는 이런 움직임을 예의주시해왔습니다. 구소련이후 새롭게 들어선 러시아와 심리적으로 멀어지려는 조짐이기 때문입니다. 2011년 11월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부장은 카자흐스탄에서 일고 있는 러시아계 배척심리를 거론하기도 했습니다. 1991년부터 30년동안 카자흐스탄을 통치한 나자르바예프는 그동안 소비에트의 색채빼기와 탈러시아 움직임을 보여왔습니다. 0카자흐스탄 여러 지역에 대기근기념비를 세우고 스탈린 시기 정치박해로 인해 카자흐스탄에서도 수백만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점을 상기시켰습니다. 또 카자흐스탄내 러시아색채가 있는 지명도 바꿨습니다. 대표적인 게 현 수도 누르 술탄입니다. 나자르바예프의 풀네임이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입니다. 과거 이곳의 명칭은 아스타나였는데 나자르바예프가 자기 이름으로 수도명을 바꾼겁니다. 또 러시아의 키릴알파빗을 버리고 서면문에서 라틴문자를 쓰기로 했습니다. 국민들 이름도 러시아식을 카자흐스탄식으로 바꾸라고도 권유했습니다. 그런데 카자흐스탄의 전 총리이며 국가안전국 의장인 카림 마시모프가 반역죄로 체포됐습니다. 1월 6일 국가안전국은 형사법에 따라 마시모프를 구류하고 반역혐의 조사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이틀후인 1월 8일 그를 정식 체포했습니다. 총리를 지낸 카림 마시모프는 카자흐스탄내 위구르인입니다. 1965년 알마띄생인 그는 구소련KGB학교에서 반정보 공작을 학습했습니다. 그리고는 1985년 구소련의 Российский университет дружбы народов, 러시아 인민우호대학에서 수학했습니다. 이 대학은 소련이 제3제국 유학생들을 공산당원으로 양성하는 당교같은 기관입니다. 마시모프는 아주 특이한 이력을 지닌 인사입니다. 카자흐내 위구르인인 그는 1988년 KGB의 공공유학생신분으로 베이징어언대학에서 1년동안 중국어를 익히고 우한대학 법학부에 입학해 국제법을 전공합니다. 당시 구소련은 그를 중공관련 첩보공작에 종사할 KGB요원으로 양성했습니다. 그런데 1991년 소련붕괴에 따라 KGB도 해체되고 그는 실업자가 됩니다. 그의 인생역정은 파란만장했습니다. 카자흐스탄이 소련에서 분리돼 독립국가가 되자 그는 화려하게 복귀해 탄탄하게 경력을 쌓습니다. 카자스탄 노동부의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지낸 뒤 경제무역부에서는 주 신쟝위구르자치구 판사처에서 전문가로, 이어 홍콩에서 카자흐스탄 무역부 책임자로 근무합니다. 위구르인이란 출신성분과 중공전문가로서의 경력을 마친 뒤 카자흐스탄인민은행 총재, 운수통신부장, 부총리를 걸쳐 2007년애 총리가 됩니다. 나자르바예프 정권에서 총리가 된 그는 정치적으로 영화를 누렸습니다. 1차 총리재직기간이 끝나자 2012년부터 2014년까지는 카자흐스탄 대통령실 주임을 지냅니다. 그리고는 2014년부터 2016년까지 다시 총리를 지내고 이후에는 카자흐스탄 국가안전국 의장을 지내다 자기가 수장인 이 조직에 의해 체포돼 반역사범으로 몰리게 됐습니다. 반역은 외국과 내통해 나라룰 팔아먹었다는 건데 마시모프는 골수 친중파입니다. 총리로 재직하면서 수시로 중공을 방문했습니다. 중공의 투자를 받아 일대일로에 협조한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을 열심히 보좌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2008년에는 중공에서 유학했던 모교 우한대학을 방문해 명예박사학위도 받았습니다. 또 2015년에는 중공에서 열린 제2회 세계인터넷 대회 개막식에서 중국어로 연설을 해서 화제가 됐습니다. 단순히 인사말 정도로 생각했는데 3분정도의 연설을 해서 좌중이 깜짝놀랐습니다.발음자체는 위구르인이 하는 중국어였습니다. 그다지 유창한 편은 아니지만 카자흐스탄총리가 중국어로 했다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카심 마시모프 전총리가 얼마나 친중파인지 2021년 춘절에는 7살 난 손녀 키림에게 중국어 노래로 중국인민에게 축하메시지를 전하도록 했습니다. 중국전통복장을 입은 마시모프의 손녀는 산천이역, 풍월동천山川异域 风月同天, 산천은 다른 나라에 있지만 같은 바람과 달을 이고 산다는 고사성어까지 인용합니다. 그리고 알마띄에서 모든 화교, 화인들에게 춘절축하를 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된 세계가 하나의 꿈을 꾼다는 중공의 선전 문구와 함께 중공과 카자흐스탄의 우의가 만고에 푸르르기를 기원한다고 말합니다 .K자르바예프는 장기집권하면서 아스타나를 누르술탄으로 바꾸고 자기 치적을 크게 홍보했습니다. 그를 선전하는 랜드마크로 한 샤틔르Khan Shatyr 칸의 천막이라는 기괴한 건물이 있습니다. 안에는 다양한 쇼핑몰과 여러 위락 시설들이 완비돼 있습니다. 누르술탄은 겨울에 무서운 혹한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영하 53도까지 내려간 적도 있습니다. 당시 토끼가 뛰는 자세로 그대로 얼어 죽은 모습이 화제가 됐을 정도입니다. 나자르바예프는 인민을 위한 낙원 개념으로 이 건물을 짓고 내부온도를 35도로 유지하도록 했습니다.이 빅텐트 건물안에는 Sky Beach라고 해서 인공으로 해변도 조성했습니다. . 칸의 영광을 재현한다면서 30년동안 카자흐스탄을 통치해온 나자르바예프가 강대국들의 각축속에 드라마틱하게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나게 됐습니다. 카자흐스탄 사태는 지정학, 지경학에 따른 국제관계의 본질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국제관계에서 민주냐 비민주냐는 사실 무의미합니다. 절대선, 절대악도 없습니다. 오로지 국가 이익만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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