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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이나 다름없는 바이든의 외교/대중공 봉쇄 대신 뜬금없는 대러압박

재앙이나 다름없는 바이든의 외교/대중공 봉쇄 대신 뜬금없는 대러압박 - YouTube

이번 방송에서는 대립하고 있는 미러 관계가 왜 꼬이고 있는지 근본적인 원인부터 설명드리겠습니다. 미국은 국제무대의 파워게임에서 러시아를 중공편으로 밀어넣는 치명적인 실수를 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동맹국들을 끌어모아 중공을 상대로 포위망을 구성하고 있는 한편으로 중공과 공식군사동맹이 아닌 러시아를 자극해 두 개의 전선을 만들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중공과 러시아를 실질적인 군사블럭으로 만드는 전략적으로 있을 수 없는 수를 두고 있습니다. 이는 2021년 초 Atlantic Council에 발표된 the Longer Telegam 더 긴 전문에 그대로 나와 있습니다. 소련보다 비교할 수 없이 강력한 중공에 대해 나이브한 판단을 미국은 하고 있습니다. 과거 조지 케넌의 the Long Telegram은 소련을 완전봉쇄해 해체까지 이끌었지만 the Longer Telegam은 중공의 레짐체인지만 목표로 했습니다. 중국공산당체제는 그대로 존속시키고 시진핑 정권만 축출하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바이든 민주당 정권의 국제전략이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시진핑이 아닌 다른 권력자가 등장하면 중공은 다시 온건해질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중공은 바이든 정권을 상당히 우습게 보고 있습니다. 여전히 미국에 대해 하나의 중국원칙을 존중하고 홍콩, 티벳, 신쟝위구르 타이완에 대해 내정간섭을 하지 말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러시아에 대해서는 공산주의 소련과 동일시 하면서 냉전시기 적대정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현재 바이든 행정부의 비합리적인 대러시아, 대중공 정책을 보면 해리 트루먼 시기 2차세계 대전을 전후한 정책결정과 유사합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사망하자 그를 이어 대통령이 된 해리 트루먼의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그는 독일이 불가침 조약을 깨고 소련과 싸우자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치독일이 이기고 있으면 스탈린의 러시아를 도와야 한다. 그리고 소련이 전황에서 우세하면 독일을 도와야 한다. 비록 히틀러가 어떤 상황에서도 승리하는 꼴을 보고 싶지는 않지만 독일과 소련이 서로 싸워서 가능한 한 사망자가 많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쉽게 말해 나치즘과 공산주의 가운데 어느쪽이 사상적으로 해악이 더 있느냐가 아니라 두 나라가 모두 적이라고 인식하면서 밀리는 쪽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오늘날 공산주의가 좌익이고 나치독일은 극우라는 서구사회의 잘못된 인식이 바로 여기서 출발합니다. Nazi라는 단어자체가 국가 사회주의입니다. 당연히 좌익이지 우익이 아니고 극우는 더욱더 아닙니다. 그러나 공산주의 소련과 그것고 극렬하게 싸웠으니 극우란 딱지를 붙인 겁니다. 공산주의나 Nazi나 모두 좌파입니다. 2차세계 대전이 끝나자 유럽은 폐허가 됐고 국제질서에서 그 공백을 메울 강대국은 미국과 소련만 남았습니다. 종전 초기 트루먼은 여전히 평화로운 전후질서를 위해 긴밀하고 상호협조적인 대소관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얄타회담에서 루스벨트, 스탈린, 처칠간 이뤄진 합의가 소련에 의해 깨지는 것을 보고 스탈린을 달리 생각하게 됐습니다. 얄타회담에서 세 정상은 폴란드에서 자유롭과 공정한 선거를 통해 정부를 세운다고 합의했지만 소련은 폴란드에 공산주의 정권을 세우고 위성국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폴란드에 이어 소련과 인접해 있는 루마니아, 헝가리, 불가리아, 알바니아에도 줄줄이 소련의 영향권에 편입됐습니다. 이어 그리스, 터키, 이란 조차도 소련의 위협을 받게 됐습니다. 해리 트루먼은 종전 전까지만 해도 소련과 전후질서를 순조롭게 확립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 꿈은 깨지기 시작했습니다. 소련을 동맹국으로 여겨야 할지 위협으로 여겨야 할지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트루먼이 1945년 7월 29일 아내 베스 트루먼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그가 얼마나 나이브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트루먼은 직설적인 성격의 스탈린을 한 때 좋아했습니다. 스탈린이 직설적이어서 트루먼은 그가 원하는게 뭔지를 알고 있었으며 원하는 것을 성취하게 되면 타협하는 성격으로 착각했습니다. 해리 트루먼이 스탈린의 속성을 깨닫고 의회, 행정부 관료와 대소정책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 시점은 1947년 3월 경인 것으로 비밀해제된 문건은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 때 트루먼은 오벌 오피스에 외교, 국방 보좌관들을 불러모아 대소정책을 의논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은 대러강경책을 이어나가게 됩니다. 1946년 모스크바 대사관에서 근무하던 조지 케넌이 국무부에 제출하고 1947년 포른 어페어즈에 he Sources od Soviet Conduct소련행동의 근원이란 이름으로 발표된 the Long Telegram의 정책제안을 미국은 추진하게 됩니다. 바로 봉쇄전략의 기원입니다. 이후 미러간의 대립은 케네디 행정부 시절 쿠바 미사일 위기로 정점에 달합니다. 모스크바는 1959년 쿠바공산혁명을 환영했습니다. 그러다 1961년 케네디 정부의 CIA가 피델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해 피그만 침공작전을 벌여 결국 실패로 돌아갔지만 소련은 경악했습니다. 니키타 흐루쇼프는 이듬해 쿠바에 핵미사일을 밀반입해 미국에 보복하려 했습니다. 결국 핵전쟁 위기도 불사하겠다는 케네디의 굳은 결심에 소련은 미사일을 철수했습니다. 역사는 비슷하게 반복되고 있습니다. 쿠바가 미국의 앞마당인 것처럼 우크라이나는 현재 러시아의 앞마당입니다. 미국과 NATO가 완충지대인 우크라이나를 영향권에 편입하려는데 대해 러시아가 경악하고 있는 상황은 쿠바위기 때와 유사합니다. 소련에 대한 봉쇄정책을 성공적으로 결말지은 것은 레이건였습니다. 그는 1981년 첫 번째 임기 때부터 소련에 대해 아주 강경했습니다. 소련을 악의 제국으로 규정하면서 폭격하겠다는 농담까지 했습니다. 레이건은 대국민 라디오 연설에서 소련을 영구히 불법화하는 법에 서명하게 돼 기쁘다면서 5분있으면 소련에 대한 폭격을 개시한다는 연설을 했습니다. 농담이지만 내용이 너무 과격해 이 부분은 방송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녹음기록은 남았고 이 소식을 전해들은 소련군부와 권력층은 경악했습니다. 레이건은 소련과 싸우고 있는 아프간 무자헤딘 반군에게 무기를 공급했고 서유럽에 퍼싱2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해 소련을 압박했습니다. 그리고는 결정적으로 스타워즈 계획으로 소련을 밀어붙였습니다. Peace through Strength를 주창한 레이건은 확실히 혜안이 있었습니다.

소련에 대한 나이브한 판단을 했던 해리 트루먼은 공산주의의 본질을 깨달았고 이후 미 행정부는 대러 강경책을 일관적으로 밀어붙여 소련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화해를 추구하고 경제발전을 도운 중공이 괴물이 될지는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는 오판을 저질렀습니다. 소련은 체제가 단순해 적으로 규정하고 봉쇄정책을 밀어붙여 쓰러뜨리는데 성공했지만 중공은 소련과는 질적으로 다른 괴물임이 드러났습니다. 소련에 대해서는 공산주의 체제 붕괴를 목표로 했지만 소련보다 훨씬 강성한 중공에 대해서는 정권변화만 노리고 있는게 미국의 가장큰 오판입니다. 미국과 소련은 냉전당시 체제경쟁, 군사력경쟁등 단순한 대결구도에 치중하면 됐지만 지금의 중공은 소련과는 달리 무역, 경제, 과학기술, 문화등 다방면에서 미국과 하이브리드 전쟁을 치루고 있습니다.

미국은 중공봉쇄에 집중해도 모자르는 마당에 러시아를 상대로 위험한 도발을 하고 있습니다. 중공은 이런 미국의 외교정책에 쾌재를 부르고 있습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서 전쟁 위험을 고조시키자 중공은 타이완에 대한 군사적 압박수위를 늦추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이 두 군데서 동시에 전쟁을 치르는 것은 무리라는 것을 중공은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은 중공의 대 타이완 무력도발은 쓸데 없는 짓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전적으로 시진핑의 판단에 달려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와 타이완은 별개의 사안이긴 하지만 우크라이나에서 긴장수위가 높아지는 만큼 중공이 타이완 해협의 긴장을 높이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참고로 우크라이나내 러시아인구와 한국내 폭증하고 있는 중공 조선족과 비교하면서 러시아에 분개하는 분들이 많은데 이는 전제부터 잘못된 것입니다. 조선족은 중공이 한국의 정치 경제를 장악하기 위해 정책적으로 밀어내기 이민을 하는 것인데 반해 우크라이나의 러시아인들은 원래부터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러시아가 이민 보낸 게 아닙니다. 우크라이나의 러시아인들은 오히려 박해가 두려워 러시아로 떠나고 있는 형편입니다. 사실을 제대로 알아야 우크라이나 정세를 제대로 읽을 수 있습니다.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시청해 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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