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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극'1919 필라델피아' 배영진 월간조선 기자

배진영(월간조선 기자)

음악극 ‘1919 필라델피아’. 3‧1운동 후인 1919년 4월 14일~16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제1차 한인대회(First Korean Congress)를 다룬 ‘다큐멘타리 음악극’이다.

막이 오르고 등장인물들이 무대에 본격적으로 오르기 전부터 가슴이 먹먹해졌다. 1919년... 지금부터 103년 전... 미국이나 유럽인들이 한국이 지구상 어느 귀퉁이에 있는 땅인지조차 모르던 시절에, 미국 조야에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겠다고, 미국 독립을 쟁취한 대륙회의가 열리고 독립선언서가 채택되었던 필라델피아에 모여들었던 사람들, 자기가 태어난 고향 땅에서 태어나서 그곳에서 자라고 그곳에서 죽는 것이 당연시되던 시절에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넜던 선각자들, ‘대일본제국’의 위세가 당당하던 시절에 바위에 계란을 던지는 심정으로 한국의 독립을 선언하고 나섰던 사람들... 서재필, 이승만, 정한경, 민찬호, 유일한, 노디 김, 조병옥, 윤병구, 이대위...
당시 미국 조야에 독립을 호소했던 민족들이 많았다. 아일랜드인, 폴란드인, 체코슬로바키아인 등...미국인들은 아일랜드나 폴란드는 잘 알고 있었다. 체코슬로바키아는 몰라도 보헤미아는 알았다. 하지만 코리아는? 극중 서재필이 “나는 최근에 어떤 사람에게 한국이 캐나다의 일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는데 힘이 들었습니다”라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월간조선》에서 손세일 전 의원의 『이승만과 김구』를 연재할 당시 담당 편집자였기에 필라델피아 한인대회의 개요나 참석자들의 면면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한 나라의 독립을 논의하는 사흘간의 회의를 어떻게 ‘극(劇)’, 그것도 음악극으로 만들 수 있을까’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하지만 정말 재미있고 감동적이었다. 원로 서재필의 신중함과 계몽적이고 민주적인 태도, 장년의 이승만의 자신만만함, 조병옥·유일한·노디 김 등 20대 청년들의 열정과 패기 등이 잘 그려졌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보내는 선언문’ ‘미국 국민에게 보내는 호소문’ ‘한국인들의 목표와 열망에 대한 결의문’ ‘일본국민에게 보내는 서한문’ 등을 토론하고 채택하고, 플로이드 톰킨스 목사, 제임스 딘 신부, 헨리 버코비츠 랍비, 허버트 밀러 박사, 드밍 선교사, 클래런스 E. 맥카트니 목사 같은 이들이 축사와 축도를 하는 회의 장면들이 이어지지만, 조금도 딱딱하거나 지루하지 않았다. 그 안에 담긴 메시지 때문이었다. 그것은 자유였다! 이 음악극 속에서 등장인물들이 외치는 ‘자유’라는 메시지는 100여년 전 옛날의 것이 아니었다. 자유를 위한 투쟁은 바로 이 땅에서, 세계 곳곳에서 얼마 전까지 전개되어왔고 지금도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원래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 지배당하기보다는 죽음을 원합니다. 1776년에 선포된 미국의 독립은 힘 있는 나라가 다른 민족의 의지를 거슬러 통치할 수 없다는 선포였습니다. 제국주의는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할 수 없습니다. 독일이 시도했습니다. 오스트리아가 시도했습니다. 그리고 일본이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계 역사는 그것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라는 밀러 박사의 축사, “패션(passion)이란 말 알아요? 보통 ‘열정’이라고 하지만 라틴어 어원은 고통(pain)이라는 뜻이기도 해요. ‘어떤 사명을 위해 겪는 고통은 곧 그것을 이겨내는 열정이 된다!’ 저분들의 열정도 이런 거 아닐까요?”라는 조지 베네딕트 기자의 말에서 나는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 싸우고 있는 우크라이나인들을 떠올렸다.
“때로는 하나님이 우리를 잊으신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정의가 시험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실은 반드시 승리합니다.”라는 톰킨스 목사의 축도에서는 지난 5년간 대한민국을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갔던 좌파정권의 패악질을 생각했다.

‘1919 필라델피아’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기독교 색채가 무척 짙게 묻어난다는 것이다.
“자유공화국에서 대중의 의견은 천천히 모이지만 행동은 강력합니다. 한국의회가 고국에서 멀리 떨어진 이 곳에서 열린다고 절망하거나 여러분 숫자가 적다고 낙담하지 마십시오. 2천년 전 열 두명의 어부가 돈도 기술도 없이 동방의 먼 변방에서 문명의 대전환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들이 가진 것은 진리뿐이었지만 세상은 아직도 그 가르침을 따르고 있습니다. 갈등하는 마음을 강철처럼 만드십시오. 진리와 정의의 방패로 무장하십시오.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부’를 위해 자유에 대한 기준을 높이고 어떤 희생이라도 치를 각오를 하십시오.” (딘 신부)
“우리 유대인들은 억압이 있는 곳에서는 언제나 저항해왔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노력에 진심으로 공감하는 바입니다. 우리에게는 공평한 신이 계십니다. 여러분이 박해를 받는다면 그것을 곧 자유를 쟁취하라는 신의 부르심으로 받아들이십시오.” (버코비츠 랍비)
그밖에도 많은 이들이 발언 중에 ‘기독교’를 언급한다. 이것은 당시 이 대회를 이끌었던 서재필, 이승만 박사 등을 비롯해 참석자 대부분이 기독교를 받아들인 미국 유학생이거나 교민들이었다는 것과 관계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현대 자유민주주의의 이념적 기반인 ‘자유’의 개념이 유대-기독교 문명의 산물이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그것이 그렇게 거슬리지는 않을 것이다.

이러한 메시지들에 울림을 더해주는 것은 중간중간에 삽입된 노래와 음악들이었다. 미국 민요‘스와니강’ ‘켄터키 옛집’ 멜로디에 가사를 붙인 ‘피 묻은 옷’, ‘동반도 옛집’, 스메타나의 ‘몰다우강’, 찬송가 ‘어느 민족 누구게나’, 이스라엘 국가 ‘하티크바’, 그리고 ‘3·1독립선언서’를 모티브로 한 ‘독립선언의 노래’등이 가슴을 뜨겁게 달구었다. 출연자들이 한목소리로 “독립은 시대의 뜻, 정당한 우리 권리, 자유는 하늘의 뜻, 존엄한 인류의 행진”을 노래할 때에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1919필라델피아’의 텍스트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제1차한인회의’ 회의록이고 다른 하나는 유대인 미국 기자 조지 베네딕트의 회고록이다. 시오니스트인 베네딕트는 필라델피아의 체스넛 거리 문방구에 들렀다가 거기서 3·1운동 희생자의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던 서재필과 이승만을 우연히 만났다. 그는 일본의 막강한 홍보력에 맞서 3·1운동의 실상을 알릴 방도가 없다고 탄식하는 두 사람에게 “우리가 지금 있는 이 도시는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곳입니다. 몇 개월 전 체코슬로바키아의 마사리크가 독립기념관에서 자유를 선언하기도 했지요. 미국 전 지역에 있는 한국인들을 불러서 대회를 여세요”라고 권유했다. 그는 이 대회에 참석할 유명 인사들을 섭외하고, 대회 관련 기사들을 언론에 뿌리고, 상·하 양원에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는 결의안을 상정하는 일들을 도왔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번영은 정말 우리가 기억하지도 못하는 수많은 외국 친구들의 도움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새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우리는 세계시민으로서 그에 상응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가?

아트플랫폼 대표인 이혜경 국민대 교수가 극본을 쓰고 감독을 맡았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5월1일(일)까지 공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