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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대공무사 大公無私


'공(公)'이란 글자는 본래 '사(私)를 나눈다'는 뜻에서 비롯되었다 한다.

원죄설로 대변되는 서양사상은 차지하면, 사람의 천성은 원래 선한 것이라고 믿는다. 

다만 자기보신을 위한 욕심이 커져서 여러 잡음이 나는 것이 우리 사는 모습이라면

이러한 사사로운 욕심을 버리고 여러 사람과 함께 어울리는 태도가 있기에 지금의 사회가 붕괴되지 않고

유지되었을 것이다. 그러한 남을 배려하는 정신, 이러한 것이 함께 더불어 사는 사회성, 공적인 행동일 것이다.

고사성어로서의 대공무사의 예가 십팔사략(十八史略)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대공무사 大公無私 란 지극히 공평하여 사사로움이 없다는 말로, 공적인 일의 처리에 있어서 개인 감정을 개입시키지 않는다는 뜻이다.


춘추시대 진(晉)나라 평공(平公)이 하루는 기황양(祁黃羊)에게 물었다. "남양(南陽)에 현령(縣令) 자리가 비었는데 누구를 보내는 것이 가장 좋겠는가?" 기황양은 주저하는 기색 없이 즉시 대답하였다. "해호(解狐)를 보내면 반드시 임무를 훌륭히 수행할 것입니다." 평공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 해호와 기황양은 서로가 극히 미워하는 사이였기 때문이다. "해호는 그대와 원수지간이 아닌가? 어찌하여 해호를 추천하는 것인가?" 기황양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왕께서는 현령 자리에 누가 적임자인지를 물으셨지 누가 신과 원수지간이냐를 물으신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후 어느 날 평공이 다시 "조정에 법을 집행할 사람이 한 명이 필요한데 누구를 임명하는 것이 좋겠소?" 하고 묻자, 기황양은 서슴없이 자기 아들을 추천하였다. 평공이 "그는 그대 아들이 아닌가?" 하고 묻자, 기황양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누가 그 일에 적임자냐고 물으셨지, 그가 내 아들인지 아닌지를 물으신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신은 비록 제 아들이라도 그 자리에 적격이기에 추천한 것이지 사사로운 정으로 추천한 것이 아닙니다." 그의 말대로 평공은 그의 아들 기오(祁午)를 그 자리에 앉혔고, 기오는 공명정대하게 일을 처리하여 칭송을 들었다.


대공무사란 이와 같이 사사로운 정에 얽매이지 않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공평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을 가리킨다.

근자에는 사람의 평가가 재질보다는 나와의 관계에 따라 좌우되곤 한다.

자신의 이익(? 무슨 이익인지도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또는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만을 생각하고

무조건 편가르기를 하는 것, 면장감도 안되는 것이라고 폄하하는 것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리워하는 사람도 결국은 뒷골목에서 노는 이의 수와 비슷한 행태를 하였던 것인데도

그것에 대한 반성도 없이 내지르는 소리가 나라를 시끄럽게 한다.


아마 그들에게는 자신이 사는 나라에 대한 애정보다는

맹목적인 추종으로 결국은 이 나라를 절단내고 싶어하는 발상인지도 모른다.

大公無私는 커녕 대사무공(大私無公)인 셈이다.


저놈을 넘어뜨리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라도 할 것 같다는 마음,

어느 인터넷 노란에서 보니 그 직위에서 선물로 받았을 수도 있는 것이라고 하면서

변호하기를 주저하지 않고 범대위인가를 조직하고 있다.

아니면 그 이후의 행동이 어떠할지 자뭇 궁금해진다.

그 직위를 이용해서 이익을 준 것을 증명하여야 한다는 논리,

그런 논리로 아들 집 사주기 위해 돈을 달라고 한 것을 조사한 것을 죄 안되는 것으로 치부하고

이전 부터 부하 바람난 것도 그로 인해 직위를 이용한 이익을 도모케 한 것도

남의 탓, 깜도 안되는 것으로 치부한 것이 구준히 지속된 것중 가장 나중의 일이다가 망신을 당하고

직위를 이용한 기록을 남긴 것이 칭찬 받을 일이고 후세에 모범이 될 일이지만

개인기록인양 이해부족으로 스스로의 업적을 똥통 망통으로 만들고

에미 심정으로 그러할 수도 있는 일을 무조건 아니라고 강변하다가 할 말이 없으니....

아무튼 이와 같이 모든 원인을 그 쪽으로 돌리는 것으로 위안 삼으려 하는 것은 

모든 공적인 것에 대한 판단을 그 개인 집단의 이익에 견주어서 만들어 내고자 하는

이상한 논리일 것이다.


물론 빌미를 준 것 같이 행동하는 그 상대편도 그들과 동류의 것이라는데는 이견이 없지만

저 놈이 저 만치 잘못했으니 이거는 잘못이 아니라는 태도가

결국은 우리가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하는 사회적인, 공적인 가치기준을 없애려는 시도가 아닐까 한다.

그럼으로서 우리 사회 자체를 없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최소한 그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 집단의 이익만을 위하여 무슨 일이나 할 수 있다는. 그에 대한 여파는 생각하지 않고, 그 마음 뿐 일 것이다.


자주 주장하는 것이지만

자기 반성없이 일개 정적 제거를 위하여 어설픈 칼을 휘두르다가

7000여명 뿐의 이름만 올려놓고는 나라와 민족에 대한 배신을 보신으로 치장한 것들이 더욱 발호하게 만들어 놓은 것 같다.


하관말직이거나 왜놈들 위세를 업고 그 사는 근동에서 우리 민족을 괴롭히던 무리들은

또 그런 기회가 오기를 호시탐탐 노리며 살게 하는 것은

그들이 그런 종자들의 후손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이 주장하는 말도 안되는 말은, 일제시대에 살았던 사람은 다 일본에 협력한 사람이 아닌가 하는 것,,,,

그래야 자잔하게 악행을 행한 그들 조상이 살아 남으니...


그 혁혁한 예가

신기남 이미경, 그리고 그 들부류가 존중한다는 동학운동의 초기 원인제공자가 된

조병갑의 후손인 조기숙 같은 것들의 망발이 아닌가 한다.


왜 그런 것들이 그 주위에 모여있는지.......


그런 대사무공한 행위를 하니 그들이 말로만 척결하고자 한 것들이 오늘도 버젓이 활보를 하고

무슨 공공연한 단체를 만들고, 공공연히 찬일을 하는 역사교과서까지 만들고

역사유물을 관장하는 단체장 자리에도 올려 놓는 사태가 생기게 된 것 일 수도 있다.


대공무사란 말의 어원이 된 이 이야기만이 아니라

그 허접한 머리로 친일파들이 우리민족을 업수히 여기기 위하여

작의적으로 기술한 것만을 담아서는

우리 역사를 폄하하는 그들이 내세우는 대표적인 사건, 사색당쟁,에서도

예를 볼 수 있는 것이 우암 송시열과 미수 허목의 일화에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공은 공이고 사는 사라는 입장을 굳게 견지하였던 이야기

인터넷에서도 찾을 수 있고 본인이 이전에 쓴 글에도 있다.

출처 : 雨谷 反芻錄
글쓴이 : 타향살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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