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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갑 선배님의 마지막 수필

60년 모은 사진첩을 불사르며

문 인 갑

 


                                                                                              * 한국수필가협회, 부산수필문인협회 회원

                                                                                              * <풍류에 세월 싣고>, <산절로 수절로 하니> 등




불태워 버리면 그 형체가 없어지기에 그에 담긴 사연도 사라질 수 있다. 지나간 과거지사란 일장춘몽으로 모두가 허망한 일이다.

이제 80여 년의 긴 세월을 살았으니 과거에 대한 미련과 애착을 초월해서 망각(忘却), 무소유(無所有)의 경지에 들어가야 할 때가되었다.

40년 교직 생활을 하는 동안 이 학교 저 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 찍었던 사진과, 친구들과 여행길에서 등산길에서. 그리고 여러 가지의 기념행사 등등에서 찍었던 사진들이 한 장 한 장 모여서 무려 수백 장이나 것 같았다. 

그 많은 사진 한 장 한 장에 담긴 사연은 모두 소중하겠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이 있으리오. 모두가 지나간 과거지사로 흘러가 버린 유수(流水)와 같은 것이다.

학교 소풍 또는 여행길에서 "선생님 함께 찍어요." 하며 보채던 천진난만한 여학생 남학생들 모두가 다정하고 귀여웠던 그들이었다. 그들이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50년이 지났으니 그때의 소녀 소년들이 이제 모두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같은 학교에서 근무했던 동료 선생님들도 다정하게 지냈던 친구들이었는데. 모두 늙어 할아버지가 되었을 것이고,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도 있을 것이다.

4인방으로 알려졌던 김공 탁공 권공과는 20여 년 동안 전국 명승지를 누비고 다닌 친구들이라, 그들과 함께 찍은 사진들이 많았다. 그들도 모두 저 세상으로 가 버리고 이제 나 혼자 남았다. 모두가 허망하고 무상한 일이다. 이제 그때 나와 함께 찍었던 사진들이 무슨 소용이 있으며 불태워 버린들 무슨 여한이 있으리오. 나는 라이터로 불을 질러 사진 한 장 한 장을 태운다. 낯익은 얼굴들이 불길 속에서 웃으며 연기로 사라져 간다. 사랑했던 제자들이여 다정했던 친구들이여 영원히 안녕하여라.

그 많은 사진 가운데 유난히도 마음에 사무쳐 잊을 수 없는 친구들이 있었다. 60여 년 전 일제 강점기 말기에 일제의 탄압이 극심했을 때다. 은밀히 숨어서 조선 청년 독립당을 비밀 결사하여 조국 독립을 위하여 한 목숨 바치기로 굳게 맹세하고 생사를 같이했던 동지들의 사진이다.

결국 거사 직전에 발각되어 일본 경찰에 검거되어 참혹한 고문을 당하고 일 년여를 교도소에서 콩 깨묵 밥으로 생지옥 같은 감옥 생활을 하다 천우신조로 8·15해방을 맞아 출옥했던 동지들의 사진이다. 모두가 흰 옥양목 바지 저고리를 입은 파리한 모습들이다. 그 당시 일본의 대륙 침략의 성공과 그 기세로 보아서는 조국 독립이란 가망이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최남선, 이광수 같은 민족 지도자들도 하나 둘 일본에 협조하는 글도 쓰고 강연도 했다. 그래도 피 끓는 젊은 우리들은 "울밑에 선 봉선화야"를 부르며 한 가닥 꿈을 키우고 있었다.


   북풍한설 찬바람에 너 형체가 없어져도

   평화로운 꿈을 꾸는 너의 혼이 예 있으니

   화창스런 봄바람에 환생키를 바라노라


때로 우리들은 아무도 없는 시골 들길에서 큰 소리로 합창하며 울분을 달랬다. 이 사진은 독립기념관 제5 전시실에 크게 확대되어 높이 걸려 있다. 이제 모두다 저 세상으로 가 버리고 나 혼자 남았다. 친구들이여 영원히 안녕하여라. 명복을 빈다.

다음은 교직 생활 40년을 통해서 잊으래야 잊을 수 없는 가장 애통했던 일이었다. 해방 직후 26세의 나이로 모교의 국사 교사로 부임했었다. 그 당시는 일본 교사들이 다 들어가고 국사를 가르칠 선생이 없어 어쩌다 내가 맡아 가르치게 되었다. 부임하자마자 6학년 졸업반 담임을 맡았다. 그때 학생들은 일제 말기에 입학시험에 합격해서 들어온 우수한 학생들이었다. 나는 힘을 다하여 가르치고 훈육에 정성을 다 하였다. 그들도 나를 잘 따라 주었다.

그들은 졸업을 하자 대부분이 서울의 명문대학에 합격하여 진학했다. 나는 서울까지 가서 그들을 격려했다.

그런데 청천벽력으로 그해 6월에 6?25전쟁이 터졌다. 학생들은 갈팡질팡하다 괴뢰군의 의용군으로 강제 연행되거나 혹은 국군의 학도병으로 입대해서 일선에서 적과 싸웠다. 하늘도 무심한 일이라, 그들은 대부분 전사하거나 행방불명이 되었다. 그 애통하고 참혹함을 어찌 다 말하리오. 그중에는 내가 아끼고 사랑했던 학생들도 여러 명이 있었다. 정말 아까운 학생들이었다.

나는 그들을 연모하다 혼자 울기도 하고, 꿈속에서 그들을 만나 부둥켜안고 대성통곡을 하기도 했다. 6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그들의 씩씩하고 늠름한 모습이 상기되어 그들의 사진을 태우다 한참 동안 슬픈 감상에 빠지곤 했다.

너희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사랑하는 나의 제자들이여.


                                      - 어느 먼 시골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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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갑 친정아버지 일대기 담은 moonpilboon의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