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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영화 같은 실화 이야기

가끔  사람들로부터  어떻게 하프를  배우게 되었냐는 질문을

받는다나는 한마디로 내가 하프를 배우려고 찾아 다닌 것이

아니라 하프가 나를 찾아와 주었다  대답 하곤 한다.

왜냐하면 나는 꿈에도 내가 이 아름다운 악기를 연주하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해 봤고 또  추구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우선 이 악기는 너무 아름다워서 나와 어울리지도 않을 뿐더러

그림에서만 가끔 본, 나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는 생소한  예쁜

가구같은 존재일 뿐이었다.  나의 음악적인 배경은 어렸을 때

피아노 렛쓴을 몆년 받은 것과, 음악을 전공한 친구를 가까이

둔 덕분에 친구따라 음악회에 수없이 따라다닌 것, 미술대학 

1학년 때 클래식 기타 렛쓴을 6개월 받은 것이 전부였다.

 

그 후 결혼해서 두아이들 키우면서 모든 생활을 아이들 중심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보다는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

익숙해진 가정주부의 하루하루가 나의 일상이었다시간이 나면

전공한 그림 그리기 작업을 잠깐 사이사이에 하면서 가끔씩

전시회를 여는 것만도 내게는 벅찬 일이었다그런 나에게 너무나

이상한 우연으로 이 악기를 처음 가까이서 만나게 되었다.

 

이야기는 15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딸이

피아노 렛쓴을 일주일에 한번씩 받으러 다닐 때였다. 집에서십분

운전해서 갈 수 있던 거리였는데, 딸이 한시간 렛쓴 받을 동안  

나는 주로 선생님 집 응접실에서 기다리면서 시간을  보내곤 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날씨가 너무 좋아 한가하게 그 동네를 차로 돌아

보며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각기 집앞에 정원을 어떻게 가꾸었나 눈여겨 보면서 나도 모르게

어떤 아담한 집 앞에 차를 멈추게 됐다. 하늘하늘 가늘고 섬세한

연두색 잎을  머리빗살처럼  나란히 드리고 바람에 나부끼는 

아름다운 나무 두 그루가 집앞을 장식하고 있었다.

아 나도 저 아름다운 나무를  우리 집앞에 심어야지하는 생각을

하면서 용기를 내어 그 집 문을 두드렸다곧바로 70대 정도의

고상한 부인이 미소를 품고 나왔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우선 예고없이 문을 두드린 실례를

양해해 달라며 이 앞에 있는 나무 이름을 알고 싶어서…”라고

얘기했다그 부인은 시간이 있으면 잠시 들어오라고 친절하게

나를 안으로 안내했다. 그녀는 식물에 관한 책을 꺼내서 나무의

학명과 원산지, 나무의 특징들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 나무의 이름은 캘리포니아 패퍼트리라고 하는데, 한가지

단점은 뿌리가 아주 억세게 퍼지므로, 집 벽으로부터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심어야 된다며 세밀하게 조언을 해 주었다.   고맙다고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거실 한 쪽에  너무나 아름다운,

내 키보다  훨씬 큰 하프 세개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의외의 광경에 깜짝 놀라며 당신은 하프 비지네스를

하시나요?”  하고 물어 보았다내가 묻는 말에 부인은 웃으면서

 나는 하프 연주가이고  또 가르치기도 하지요당신도 원하면

배울 수 있어요.”  

 

나는 그 부인의 말에 아무 느낌도 없이  그건 불가능하지요 저는

아주 바쁘고, 또 시간이 있다 하더라도 이 나이에 어떻게 새악기를…”

하며  하프에 관한  얘기를 더 이상 계속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하프에서 다시 화제를 나무로 돌려 봄이 오면 나도 부인의 앞뜰에 

있는 나무와 똑같은 나무를 우리 마당에도 꼭 심겠다고 하면서

딸을 데리러 갈 시간이 되어 급히 그 집을 나왔다나는 그 해 봄,

화원에 가서 캘리포니아 패퍼트리 두 그루를 사서 뒷뜰에 심었다.

 

그리고 3년이 지났다두 애들이 다 대학으로 떠나고 우리 부부만

집에 남게 되었다갑자기 얻은 많은 자유시간들이 처음엔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나는 작품 활동을 더 하며 자원 봉사하는

시간도 늘렸다오랫만에 다시 찾은 자유와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뒷뜰에 심은 두 나무도 사철나무여서 항상 푸르게 이웃집을 적당히

가려 주고 부엌에서 설겆이 하면서 항상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어서 더욱 좋았다.  

 

잘 자라고 있는 나무들을 매일 보면서도 나는 나무 이름을 가르쳐

그 고상한 부인은 완전히 잊어버리고 지냈다.  더구나 피아노 렛쓴을

받을 딸아이도 집에 없으니 그 동네 갈 일도 없고 나에게는 그저

한번 스쳐 지나간  친절한 부인일 뿐이었다.

 

어느날 하루 남편이 나에게 내 생각을  물어 왔다. 자기가 규칙적으로

보는 노신사 환자가 있는데 주말에 시간이 있으면 꼭 집에 초청을 하고

싶다고 하는데 언제가 좋겠냐고.  사실 이번이 세번째 초청이라고

하였다리는 초청을 거절하는 무례를 더 이상 범하지 말고 한번은

초청에 응해야 되겠다고 의견을 모았다. 

 

12년전 가을 어느 토요일이었다남편과 나는 받은 주소를 따라서

드라이브를 하면서 말들이 뛰어 노는 농장도 지나고 작은 포도원도

지나면서  말끔한 새 집들이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동네에 이르게 되었다.   계속 구비구비 오르다가  꽃으로

가득한 어느 단층집 앞에  차를 세웠다.

 

집 앞은 온갖 종류의 꽃들로 가득 찼고 입구에는 두 사람이 앉을 수

있는 벤취가 있었는데 꼭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듯 했다나는 여기

사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집안은 어떻게 꾸며놓고 있을까

하는 호기심으로  조금 흥분이 되기 시작했다.

 

도어벨을 누르자 곧 윌체어를 탄 노신사가 문을 열어 주었다. 남편은

나를 그 분께 소개시키고 그 신사는 우리를 거실로 안내했다부인은

부엌에서 무엇을 준비하다가 뒤늦게 나오고 있었다. 그 부인과 나는

서로 보자 마자, 어머나 당신은!.. 하면서 작은 환성을 지르고 있었다.

나는 부인에게 당신은 바로 나무 이름을 가르처준 하피스트 아닌가요!”

그 부인도 나를 곧 알아보고  참 좁은 세상이군요!  이렇게 연결이

되다니!”   남편들은 우리가 이미 서로 만났다는  사실에 놀라는

표정들이었다남편이 월체어를 타기 시작하면서 거동이 편리한

집으로 이사왔다고 부인은 설명해 주었다이사온 집에는 음악실이

따로 있어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하고 자기도 연주전에  연습에

집중할 수 있어서 아주 좋다고 했다.

 

우리는 부인이 만든 맛있는 케익을 먹으면서 한가롭게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나는 부인에게 특별 요청을 했다. 3년전에는

음악을 들을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그 아름다운 악기를 보고도

그냥 지나쳤지만 오늘은 꼭 하프 연주를 듣고 싶다고 .. 선생님이

제일 좋아 하시는 곡을 특별히 듣고 싶다고 했다부인이 우아한

손놀림으로 처음 연주한 곡은 우리가 교회에서 자주 독창곡으로

듣던  알버트 말롯의 주기도 였다하프로 들으니 또 다른 느낌의

새로운 감흥이 느껴졌다이어서 바하, 아이리쉬 민요등 몇곡을

계속 연주해 주셨다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하프 연주를 듣기는

처음이었다.   남편과 나는 그 소리에 감탄하면서 갑자기 딴 세상에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어쩌면 이 악기는 모양도 그렇게 아름답고 

울리는 소리도 그리 아름다운지!  우리는 생각지도 않았던 대접을

받으면서 왜 진작 초청에 응하지 못했었는지 후회스럽기까지 했다.

 

노신사께서는 내 남편이 오피스에 갖다 놓은 딸 아이의 피아노 치는 

사진을 보고  우리를 초청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 났다고 했다.

부인은  내게 하프앞에 앉아서  도레미도 쳐보고 자유롭게 이 악기를

시험해 보게 해 주었다. 그 분은 또 다시 지금이라도 렛쓴을 시작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었다나는 또 다시 망설여졌다.   오십

다 된 나이에 새악기를 배우기 시작 한다는 것도 그렇고 저렇게
비싸 보이는
악기를 사서 몇개월 하고 고만두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앞섰기 때문이다.   부인은 내 마음을 읽었는지, 처음 하프를 시작하는

학생은  작은 투르브도 하프( 기본적인 민속 하프로 장조를 바꿀 때마다

일일이 줄을 당기는 클립을 바꾸어야 하지만 간단한 곡을 치는

초보자에게는 아주 적당하고 크기도 작아 다루기 편함) 를 세내어서

치다가 나중에 페달 하프 (일곱개의 페달이 있어서 반음을 올리거나

내려 줄의 길이를 자유로 바꿀수 있어서 모든 복잡다단한 악보를

다 칠수있는 편리한 하프)  로 바꾸면 된다고  하는 것이었다.

앞에서 듣고 있던 남편도 적극 지지를 해주었다.

 

다음 주말  하프를 전문적으로 세내는 곳에 찾아가서 내 키보다 좀

작은 투르브더 하프를 1년 계악하고 빌려 왔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하프 레쓴을 받기 시작했다생각보다 훨씬 어려웠고  선생님처럼

예쁜 소리가 나지 않았다몇개월 동안 별 진전도 없는 것 같았고 

마음속에서 회의가 가기 시작했다그런 내 마음을 아셨는지 아주

아름다운 바하 칸타타의 합창곡을 하프로 간단하게 편곡한

“Jesu, Joy of Man’s Desiring” 란 곡을 주셨다.   지루하던 연습

시간이 갑자기 반짝  전기가 들어온 것 같이 환해졌다일주일동안

어찌나 열심히 연습을 했는지 곡 전체를 외워서 선생님 앞에서

치게 되었다선생님은 유치원 학생이 4 학년으로 점프 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그 곡이 나에게는 큰 전환점이 되었다.

그 때부터 하프와 나와의 인연은  굳게 맺어졌고 나의 삶에 새로운

세계의 문이 열리게 되었다.  

 

선생님이 새곡을 주실 때마다  새로운 기쁨과 기대로 가슴이

두근거렸다하프 협회에 가입하면서 다른 훌륭한 하피스트들도

만나게 되었다.  하프가 두 애들이 다 집을 떠난 빈자리를 채워 주고

허전한 마음도 채워 주었다.  내 연주를 들어 주는 청중은 우리 집에

오는 손님, 이웃 친구들이 전부다그러니 큰 기대도, 스트레스도

없이 자유롭게 연주를 한다모두들 이렇게 가까이서 하프 연주를

들은 적이 없다며 흥분하는 것을 보는 것도 즐거운 일중에 하나였다.

 

렛쓴받기 시작한지 1년쯤 후, 선생님은  큰 싸이즈의  페달 하프를

시카고에  있는 하프 제작 회사에 주문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셨다.

나는 또 망설이기 시작했다.   나는 작은  하프로 만족 했고 악기점에 

중고품을 알아 보고 있는 중이었다선생님은 나보다 항상 한걸음 

먼저 생각하셨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 가까이 사는 선생님의 딸로부터  전화가 왔다.

선생님이 갑자기 병원에 입원 하셔서 이번주일 렛쓴을 취소한다는

전화였다.  따가운 햇볕아래서 3시간 동안이나 정원일을 하시다가

잠깐 의식을 잃으셨지만  곧 회복 하실것이니  걱정 말라며 다시

연락해 주겠다고 했다.   그 다음날  따님, 카렌이 다시 전화를 했다.

어머니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는  믿을수 없는 놀라운 소식이었다

토요일 오후에 입원하셔서 다음날  일요일 부활절 아침에 돌아

가셨다고 했다.                     

 

나에게는  스승이기도 하셨지만 매주일 만나면서 친한 친구가 되어

버린 선생님, 시간이 나는대로 정원 가꾸시는 것을 즐기셨던 선생님,

거동이 불편한 부군을 돌보시며 바쁜 연주 일정과 학생들을 가르치시는

일들이 76 세의 나이에 너무 무리셨을까

 

장례식에는 그 분이 가르쳤던 제자들이 이곳 저곳으로 부터 날아 와서 

조문을 하였다훌륭한 하프 연주가가 된 한 제자가 장례식 내내

하프를 치며 선생님의 가심에 예를 표했다. 

 

선생님꼐서 갑자기 떠나신 후 나는 친구와 스승을 한꺼번에 잃은 

허탈감에 하프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새 선생님을 구할 생각도

안하고 거실에 있는 하프를 보면 일부러 피하기까지 했다. 

 

장례식 두 달후 쯤 어느날 선생님 부군께서 전화를  하셨다. 선생님이

쓰시던  하프들을  제자들이 물려받기를 원하신다며   하프 딜러의

값에 반도 안되는 낮은 가격을 제의하셨다선생님이 쓰시던 하프들은

일주일도 안 되서  모두 제자들이  물려 받게 되었다. 나는 분에 넘치는 

최고의 하프 제작 회사에서 만든  페달 하프를  물려 받게 되었다.

선생님께서 갖고 계셨던 모든 악보들까지도, 여유로 갖고 계셨던

47개의 하프줄까지도

 

선생님과 나와 지낸시간은 꼭 1 6개월 밖에  안 되었지만 그 분은

나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주셨다하프를 소개시켜 주셨고 나의 첫번째

스승이 되셨고 내가 포기하지 않도록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그리고  그 분이 쓰시던 하프까지 물려 받았다돌이켜 생각할 때 정말

하늘이 맺어 주신 인연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처음 선생님을

만났을 때는 나무에만 관심을 두었던 둔한 나에게 또 한번의 만남의

축복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두고두고 감사한 마음을 드린다. 

 

뒷뜰에 다람쥐들도 새들도 아직 깊은잠에 빠져 있는 고요한 새벽,

선생님이 제일 좋아 하셨던 주기도를 치면서, 정지해 있던 아침 공기에 

퍼져나가는 하프의 맑은 소리를 듣는다.   가슴에 작은 기쁨이  밀려 오는

이 시간, 하프와 맺게 된 인연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아침이다.

 

출처 : 서강대학교독어독문학과동문회
글쓴이 : 오화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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