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인의글

겨울 산

요즈음 사람들은 겉모습만 본다면 모두 미인이고, 또 그 사람이 그 사람같다. 이유는 수도없

이 뜯어고치고, 또 좋은 옷으로 성장을 하고, 여기에 각종 화장품으로 덧칠까지 하였으니 진

짜 미인을 구별해 내기가 쉽지를 않다.

 

그래서 부모와 달리 이상한 2세가 태어나면, 그 때서야 왜 이런 아이가 태어났느냐고들 놀란

다. 그도 그럴것이 남녀 피차 모두 속이고 결혼했기 때문에 진짜 본 모습을 본적이 없으니 이

는 당연한 결과이리라. 그 결과 심하면 이혼을 하고, 약하면 부부싸움으로 까지 비화되기 일

쑤다.

 

이같은 불행을 피할려면, 먼저 피차간에 裸身을 드러내어서 그 진면목을 살펴보는 것이 최상

이다.

 

산도 이와같다. 잎이나는 봄철부터 잎이 떨어지는 늦가을까지는 마치 화장하고 성장한 여자

같아서 그 진면목을 살펴볼 수가 없다. 그래서 看山을 할 때는 보통 잎이 떨어져서 裸身을 드

러내는 2월부터 3월까지가 제일 좋고, 그것도 눈 온 후의 겨울철이 제일 좋다.

 

이유는 산도 盛粧한 사람과 마찬가지로 무성한 잎으로 가려져 있으면 그 진면목을 살펴보기

가 난망인지라, 스스로 그 진면목을 드려내는 2월 전후의 시기가 제일좋기 때문이다. 여기에

눈이라도 와서 온산이 흰눈에 덮혀 있으면 더욱 좋은데, 이는 소위 명당아라고 불리우는

곳은 높은 열기로 된 地氣가 올라와서 취기되어 상승하므로 눈이 오자마자 녹기 때문에 명당의 진가를 구분하는 데 유익하기 때문이다.

 

어제 보다 오늘이 춥다고 한다.

 

오전에 아이들이 꼬맹이를 데리고 식사하려 온다고 해서 얘들 오기전에 다녀와야겠다고 일

찍 집을 나셨다. 앙상한 나무가지만 있는 산은 글자 그대로 裸身을 적나라하게 잘 보여주고

있었다.

 

초입을 지나 조금 더 올라가는데 갑자기 은은한 자단香氣가 코를 찌른다. " 이 깊은 산 중에

웬 향기?" 하면서 몸을 감싸고 도는 紫檀香氣가 감도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오시길래 마증나왔다"고 웃으면서 인사를 한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올라가는데, "오늘은 좋은 곳을 보여주겠다."고 하면서 안내를 한다.

 

여지껏 이 조그만 산을 오른 것이 몇번인데, 아직도 내가 모르는 구석이 있단 말인가 하고 생각하면서 이끄는대로 따라 갔다.

 

관악산에서 떨어져 나온 낙맥이 힘차게 내려오는 한강을 맞으려 가는 중에 한 가닥을 떨쳐 결혈시킨 곳으로 곳으로 청계산과 저 멀리 광교산이 조안이 되고 주변 산들이 모두 조읍해 들어오는 帝王之地 明堂이 눈 앞에 펼쳐져 있는데 참으로 장관이다. 아니 여태 이곳을 수없이 지나면서도 어째서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天藏地秘라더니만 옛말이 틀림없구만, 이 좋은 곳을 모르고 지나쳐 다녔다니" 하면서 돌아 보았더니 웃으면서 대답한다.

" 그동안 겨울에는 이곳을 찾지 않았으니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 당연하지요"라고.

 

아침 떠오르는 태양이 너무 좋아서 採陽精法으로 운기조식을 조금했더니만 금새 몸이 후끈

후끈해지면서 열감이 올라와서 얼얼하던 빰과 시린 귀를 녹여준다.

 

이 낮은 산에서 오늘따라 서울의 동서남북 전체의 모습이 한 눈에 다 들어 온다. 거대한 한강

이 유유히 흘러서 반포라는 퇴적층을 남기면서 구반포를 돌아 射水되어 현충원을 치면서 서

로 흘러가고, 저 멀리 하남, 잠실, 광교산, 청계산, 관악산, 양재,강남, 서초, 사당, 흑석, 상도

동 등 서울 동남부의 모습이 일목요연하게 보이며, 관악산에서 구불 구불하게 서달산으로 흘러들어오는 生龍의 모습과 북으로는 북악,도봉, 남산과 사대문 도심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가고, 서로는 사패산, 도봉산, 북한산,안산, 원효대교, 한강대교, 63빌딩, 여의도, 영등포, 목동신시가지,국사봉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동서남북의 서울모습을 감상하면서 올라가는데, 그 음지인 반대쪽 현충원은 눈 한점 녹지 않

고 찬바람만 불어 온다.

 

조금 가니 이 추운 겨울 아침에 개를 끌고 오는 년놈, 골프채를 휘두르면서 지팡이 삼아 들고

오는 놈 등 다양한 인간군들이 지나가는데 인간같은 놈은 없다. 개끌고 오는 놈을 보면서 저

려다가 시비가 붙지하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앞으로 가는데, 아니나 다를까, 30대 초반의 젊

은 놈이 개를 끌고와서는 등산로에다 똥을 싸게 버려두고 있었던 것을 지나가던 60대 중반의

한 등산객이 "봉투를 가지고 와서 치우라"고 하니 이놈이 말하기를 "그냥 가라"고 하여 시비

가 붙여 있었다. 참으로 기가막히는 광경이 아닐 수 없다.

 

등산로 초입에 분명히 " 개. 고양이 등 애완동물을 데리고 오지마시오'"라는 표시판이 있는데

도 불구하고 오불관언이다.

 

瑞達山(179m) 정상에 이르니 '土地神之位'라는 거대한 화강암 바윗돌과 그 바로 앞에 김우

중씨가 동작구청장이였던 때에 건립한 우람한 정자가 있는데 바로 '銅雀臺'라고 표기되어 있

다. 이 동작대를 보는 순간 후한말 간신 조조가 세웠던 동작대가 생각나서 웃음이 나온다.

 

이곳 2층 누대에 오르면 북쪽에서 서쪽으로 흘러가는 서울 서부지역이 한 눈에 들어오는데,

겨울에는 더욱 더 선명하게 보인다. 참으로 좋은 경관이 아닐 수없다.

 

좀 전에 서류가방을 들고 내 앞을 지나갔었던 30대 후반의 젊은이가 운동을 하다말고 말을

건내온다. "날씨가 무지 춥지만 그래도 운동할만 하지요?"라고. 그래서 "그럼요, 땀도 안나고

좋지요"라고 말하면서 한 참을 이야기 했다.

 

전경을 구경하느라고 가만히 서 있었더니 참새가족이 놀다가 그 중 두마리가 어깨에 살짜기

내려와 앉으면서 짹짹거리면서 그 동안 일어난 일들을 말해준다.

" 이 추운 겨울에 무엇을 먹고 살아가노?"라고 물었더니만,

"땅 속에 묻혀 있는 열매들을 찾아서 먹고 살아 간단다."

 

시간이 조금 흘러가자 간헐적으로 등산객들이 지나간다. 모두들  추위 탓에 복면을 하고 지

나 가는데 거개가 다  60대 분들이다. 이들이 지나간다는 의미는 이제 내려갈 때가 되었다는

뜻이니 눈으로 덮힌 빙판길을 뛰어 내려왔다.

 

한 참을 내려오니 현충원 내의 호국지장사의 아침 예불소리가 펴져 나온다. 아마도 그 사이

시간이 좀 흘러 갔나보다.

 

한동안 매주토요일 오후마다 늦은 시간에 청계산을 올라서 해지기전에 내려가느라고 정상에

서 빙판길을 미끄럼 타면서 1시간 만에 내려다녔던터라 별로 힘들이지 않고 동작역까지 내

려 갔다가 다시 돌아서 내려오는데 입구 못미쳐에서 그 분이 "잘 가시라'고 환송을 해준다.

 

참으로 고마운지고.

 

햇살이 올라오자, 복면에 아이젠까지 한 등산객들이 한 두명씩 올라오는게 보인다. 이들이

제발 질서를 잘 지켜서 자연을 파괴하거나 더럽히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이들이 걸어가는 길가에는 류시화씨의 "눈 위에 쓴 詩'라는 시가 판각되어 걸려 있다.

 

어떤이는 종이에 시를 쓰고

어떤이는 가슴에 시를 쓰며

어떤이는 허공에 시를 쓴다.

 

하지만, 나는 눈 위에 시를 쓴다.

눈이 녹으면 눈처럼 사라질 시를.

 

이렇게 흔적을 남기지 않고 다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