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고전문학자 이규배 시인이 매주 1회 연재하는 <이규배, 고전문학 다시읽기> 한마당이 새롭게 마련되었습니다. 송강 정철에 이어 두 번째로 선보이는 학자는 이규보입니다. 21세기 우리 문학과 미래를 꿰뚫기 위해서는 우리 고전문학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한문이 섞여 있어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떨구고 찬찬히 읽는 그 자리, 바로 그 자리에 새로운 문학이 새싹을 틔울 것입니다. 애독자 여러분, 큰사랑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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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규보 초상화 |
이규보(1168~1241)는 고려무신집권기(1170~1279)를 살았던 시인으로 그에 대한 평가는 연구 초기에는 상반되는 양면으로 받아들여졌다. 대체로 <최씨 정권에 아부한 문객>이라는 평과 <진취적이고 양심적인 지식인>의 면으로 받아들여지다가 이우성, 조동일, 김시업 교수 등에 의해 그의 일대기와 시론, 시 등이 본격적으로 연구되는 동시에 번역되어 조명됨으로써, 현재 이규보의 문학사적 가치는 <진취적이고 양심적인 민족시인>으로서 평가하는 데 이론이 없는 것으로 안다.
흉년 들어 백성들은 죽을 지경 歲儉民幾死
뼈와 살갗만 남았는데 唯殘骨與皮
몸에 조금 있는 살점 그마저도 身中餘其肉
남김없이 베고 찢고자 하누나 屠割欲無遺
*
그대는, 물 마시는 두더지가 君看飮河鼴
얼마 못 먹어 그 배가 부르는 걸 보았을진대 不過滿其復
묻노라 네놈은 주둥이가 몇이나 되어 問汝將幾口
백성들의 살점을 먹으려 탐하였느냐 貪喫蒼生肉
- ‘聞郡守數人以贓被罪二首(문군수수인이장피죄이수:군수 몇이 뇌물을 받아 죄를 범한 것을 듣고 지은
시 2수)
위의 오언시 두 수는 1978년 김시업 교수의 논문 ‘이규보의 현실 인식과 농민시’(<대동문화연구> 12호)에 처음으로 번역되어 조명되었다. 김시업 교수의 이 논문을 기점으로 한국 한시의 사실주의(현실주의, 리얼리즘)는 유럽문학의 ‘리얼리즘론’의 시각에서 탈피하여 그 이론과 작품 미학을 논의할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이후 한국 한시의 사대부 리얼리즘론(현실주의론)으로 정립되어 나가게 된다.
그런데 이규보는 현실에 대한 투철한 인식뿐만 아니라 시의 구성과 표현에 있어서도 완벽을 추구하던 시인이었다.
만약 앞의 시구에 문제가 있으면 뒤의 시구로써 이를 해결하고, 단 한 자의 시어로 구 전체를 안정시킬 수 있으니 시를 쓰는 사람은 모름지기 이를 사려하지 않을 수 없는 법이다. (或有以後句救前句之弊 以一字助一句之安 此不可不思也)
현재 우리가 이규보의 시와 시학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이규보는 “심장과 간을 깎아 그 즙으로 시를 써 내려간” 진정한 예술인으로 평가하고 싶기 때문이다. “문학은 도를 싣는 그릇”이라는 성리학적 문학관 이전의 예술가로서, 그는 유학자이자 경세가였지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이 이미 칠십을 넘었으며 / 年已涉縱心
지위 또한 삼공(三公)에 올랐으니 / 位亦登台司
이제는 시 쓰기를 버릴 만도 하건만 / 始可放雕篆
어찌하여 아직도 그만두지 못하는가 / 胡爲不能辭
아침에는 귀뚜라미처럼 노래하고 / 朝吟類蜻蛚
밤에는 올빼미처럼 읊노라 / 暮嘯如鳶鴟
떼어버릴 수 없는 시마(詩魔)가 있어 / 無奈有魔者
새벽부터 밤까지 몰래 따르고는 / 夙夜潛相隨
한번 몸에 붙자 잠시도 놓아주지 않아 / 一着不暫捨
나를 이 지경에 이르게 하였네 / 使我至於斯
나날이 심간(心肝)을 깎아서 / 日日剝心肝
몇 편의 시를 짜내니 / 汁出幾篇詩
기름기와 진액이 / 滋膏與脂液
다시는 몸에 남아있지 않네 / 不復留膚肌
앙상한 뼈에 괴롭게 읊조리는 / 骨立苦吟哦
내 이 모습 참으로 우습구나 / 此狀良可嗤
남을 놀라게 할 문장으로 / 亦無驚人語
천년 뒤에 물려줄 만한 시 못 지었으니 / 足爲千載貽
스스로 손뼉 치며 크게 웃다가 / 撫掌自大笑
문득 웃음 멈추고는 다시 읊는다 / 笑罷復吟之
살거나 죽거나 오직 시를 짓는 / 生死必由是
내 이 병의원도 고치기 어려우리 / 此病醫難醫 - 「시벽(詩癖)」
시마(詩魔)! 몸에 달라붙어 시를 쓰게 만드는 귀신! 이규보는 자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