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혼자 웃고 싶은 오후 / 장 석 주 (♣)
가만히 혼자 웃고 싶은 오후 / 장 석 주
글쓰는 시간에는 어떤 방해도 받고싶지 않다
물론 항상 글이 잘 써지는것은 아니다
한 줄 써 놓고 다음 문장이 이어지지 않아 막막하면
책상위에 책들을 잔뜩 쌓아놓고 뒤적인다
책상 앞에 있다고는 하지만 글을 쓰는 시간보다는
빈둥거리며 멍하니 앉아있는 시간이 더 길다
나는 미지근한 마음을 덥혀 느릿느릿 더디게 한 줄 한 줄 써나가는 것이다
지금은 한가롭고 평화스러운 가을 오후다
여름에는 카페가 문을 여는 아침부터 정오까지 다섯시간 정도 앉아서 글을 쓴다
겨울에는 여름보다 조금 더 늦게 카페에 나온다
어느 겨울 아침 흰 눈을 뒤집어쓰고 나와 정오너머까지 글을 쓰다가
다시 흰 눈을 뒤집어쓰고 집으로 돌아간다
글을 써서 생계를 해결하는 이 단순한 삶을 기꺼워하고
보통 글을 쓰고 있을 때 내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찬다
이 행복감은 잘 익은 복숭아를 깨물어 먹을 때의 그것에 견줄 수가 있다
가을이 저 안쪽에서부터 깊어간다
바람이 분다
아아,
다시 살아봐야겠다 !
가을 오후, 마음의 근심을 내려놓고 책을 읽다가 혼자 웃는다
얼굴이 환해지고 입가에는 절로 웃음이 떠오른다
무르익은 석류열매가 터지고
야산 언덕에 구절초가 흐드러진
이 계절이 좋다
가을밤은 일찍 오고 ,창가에 등불을 밝힌 채
귀뚜라미 우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책을 읽을 때
아아, 이 가을 ,
내가 살아있음이 미칠 만큼 좋다
장 석 주 산문집
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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