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나이가 되어도
어느 날 리모컨을 돌리다가 <윤식당>을 보았다.
무언가에 빠지듯
부담 없이 끝까지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어느 날
연출자가 정해준 역할을 하고 있지만,
분명 모든 것이 낯설고 서툴지만
자기 일처럼 진심을 담아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이 되면서
감동은 배가 되었다.
<윤식당1>이 이미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은 만큼,
<윤식당2>도 역시 시청자들의 관심이 뜨거웠다.
제주도와 비슷한
가라치코 화산 섬은 모로코보다 더 아래에 있는
인구 5천명이 사는 작은 마을에서
<윤식당2>를 오픈했지만,
처음엔 메뉴판만 보고 돌아가는 모습에
나까지 아쉬웠다.
덕분에
비빔밥, 김치전, 호떡 등을 개발시켜
나중엔 대표 메뉴가 되 버렸다.
동양 음식이라곤 처음 대하는 그들은
저마다 특이한 맛과 색에 빠져
감탄의 제스처를 취하기 시작했다.
야외 테이블까지 만석이 되자
주변 상인들은 계속 장사를 하라는 권유까지
받을 정도로
날이 갈수록 명성을 더해 갔다.
나는 <윤식당> 출연자 모두가
서로를 배려하며 가족처럼 최선을 다했지만,
그 중에서도 단연
식당사장 윤여정 씨가 덧보였다.
그녀는 엄연한 대한민국 대 배우며
유명인사 중 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러한 명성이 그냥 주어진 타이틀이
아님을 이번 <윤식당>을 통해 여실히
증명되었다.
72세에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는 그녀는
영어도 자연스럽게 구사하지만
젊은이들과도 말이 통하고
뼈있는 농담을 통해
그녀만의 칼라와 매사에 성실한 이미지는
모두에게 진지한 삶을 생각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윤식당>을 통해
윤여정 씨가 사람들에게 더욱 친숙해지자,
시청자들은 말한다.
‘누구는 나이 들수록 더 매력적인데,
누구는 이전보다 더 망가져 간다.’
그 나이가 되어도
사랑받는 비결은 무엇인가.
그녀는 사생활도 호감을 갖게 했지만,
주변에서 보기 힘든
그 분만의 분명한 매력이 있었다.
기자가 인터뷰할 때,
“떨림을 죽을 때까지 유지 하고 싶어!”
마치 브로드웨이 첫 공연 티켓이 가장 비싸지만,
그 안에 떨림과 최선이 있는 것처럼,
그녀는 한 평생
예쁘고 우아한 삶이 아닌
긴장 속의 애씀이 그대로 묻어나왔다.
물론 중국과 한반도 관계나
수험생들에게 긴장은
별로 필요치 않지만 긴장해소를 위한
최선은 해야 할 일이다.
최선을 다한 작품이나
떨림 반 설렘 반의 일들은 언제나
우리를 긴장하게 만든다.
우리가 최선을 다하면 할수록
긴장은 필연적으로
올 수 있다.
어쩌면 산다는 것은
나를 절제하고 긴장하게 하는 힘이
온전히 나를 다스릴 수 있고
그래야만
모든 것에 익숙해지며
자유로울 수 있다.
세상 거저 얻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긴장한 만큼 내게
열매로 화답한다.
사실 윤여정 씨는
오랫동안 배우였기에 집에서 요리 할
기회가 적었음에도
비빔밥을 남기자 바로 레시피를
변경했다.
무조건 맵고 짠 가라치코 사람들의
피드백을 받고
그들의 입맛에 맞춰나갔다.
이렇듯 피드백에 민감하다는 것은
남의 기분을 헤아리는
세심함과 풍부한 감성임임에도 지금까지
우리 문화에서는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부정적 프레임에 종속시킴으로
무시한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피드백에 민감하다는 것은
주의력이 깊기에
상대의 필요를 빨리 파악할 수 있는
뛰어난 감정이입능력자들인데,
그들은 독창적이면서
책임감이 높기에
비빔밥을 넘어
자신의 자존심과 가치관을 획일적 세상에서
지켜내면서
어디서나 필요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가 있다.
그녀는 요리뿐만 아니라 한평생
끝없이 노력하므로
인생을 잘 요리하였기에
지금의 색다른
인생 후반을 즐기고 있는 듯 했다.
그녀는
‘예쁘지 않다’, ‘예민하다’라는
두 가지 자타 평가 앞에 좌절 대신에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안녕 하세요!’
한마디를 갖고도 500가지 다른 뉘앙스로
연습했기에,
대본을 넘어 자신의 느낌을
자유자재로 전달하게 있게 된 것이다.
덕분에
50여 년 동안 연기생활 속
매너리즘은커녕
어떤 역할을 요구하든 소화할 수 있는
연기자가 되었기에
장르 가리지 않고 제작진으로부터
러브콜이 많이 들어오고 있질 않는가.
<윤식당>하기 직전에
스크린으로 돌아가 70대를 넘었음에도
젊은 배우들에 지지 않고
존재감을 발산할 수 있었던 건
그녀만의
꾸준한 자기관리 덕분이었으리라.
1947년생이면 분명
70이 넘었음에도 자연스러운 머릿결에
선글라스가 너무 잘 어울렸다.
특별한 메이크업이 아님에도
자연스러운 주름에도 자신감 있는 표정까지
보통 다른 70 넘은 할머니들과는
느낌부터가 다르다.
그건 연예인이라서가 그런 것이 아니다.
그녀는 나이를 받아들이면서
더 아름답고 멋지게 살아가고 있기에
아름답게 나이 들어가는
그녀의 행복이
과연 내게도 올까하고 생각해 본다.
하지만 세상은 역시 만만치 않은 모양이다.
‘늙은이가...’라는 식의 악플이
많았음에도 그녀는
‘애야, 너도 늙는다. 늙으면 너도 머리 얇아져’라고
답 글을 쓰고 싶었지만 참았다고 한다.
물론 그런 소수의 부류도 있겠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나이 먹어도 저렇게 일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던 것이 큰 자신으로 여겨진다.
나이 들어서도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일 하고,
하고 싶은 말을 하면서
사는 그녀는
분명 행복한 사치를 누리고 있음에
분명하기에
부럽고 또한 자연스럽게 그런 꿈을
나도
가져본다.
2018년 2월 12일 강릉에서 피러한(한억만)드립니다.
사진허락작가:하누리님, 우기자님, 이요셉님, 아굴라님^경포호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