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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활의음악정원

헤밍웨이가 '황금 목소리를 가진 태풍'라고 극찬한 칼라스--마리아 칼라스 영화를 보고..

가을하늘처럼님의.. 헤밍웨이가 '황금 목소리를 가진 태풍'라고 극찬한 칼라스--마리아 칼라스 영화를 보고..


     

마리아 칼라스 : 세기의 디바
  - Maria by Callas: In Her Own Words -

(영화의 원래 제목)




지난 11일 개봉한 '마리아 칼라스: 세기의 디바'(감독 톰 볼프)는 칼라스의 실제 공연 영상,

그녀가 생전에 했던 인터뷰 영상, 무대 밖의 개인적 삶을 촬영한 DVD,
미공개 편지와 미출판 회고록의 일부를 재구성한 다큐멘터리

마리아 칼라스가 남긴 편지는 그녀의 인생을

극영화로 담은 '칼라스 포에버'의 주연 배우인 파니 아르당의 목소리로 덧입혔다

순간의 본능에 따라 노래를 부르는 그녀의 목소리는 심금을 울린다

"모든 가사와 모든 쉼표에 의미를 부여"한다고 했던 당대의 관객..

 "황금빛 목소리를 가진 태풍"이라고 극찬했던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

그녀가 즐겨 불렀던 오페라 '토스카'의 아리아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처럼

여인 마리아로 사랑에 살고, 디바 칼라스로 노래에 살았던 마리아 칼라스의 인생, 애틋한 울림을 남긴다

 


영화는
마리아 칼라스의 사망 3년 전인 1974년에 이루어진 인터뷰로 시작된다
"제 안엔 두 사람이 있습니다. 마리아로 살고 싶지만, 칼라스로서도 살아야 해요"
진행자는 짓궂게 묻는다
"둘 중 하나를 정해야 한다면 누가 이길까요?"
"나는 둘의 모습을 모두 공유하고 싶어요
내 노래와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신다면 진실의 마리아 칼라스를 만나실 수 있을 거예요"





자신이 못이룬 성악가와 배우의 꿈을 딸을 통해 대신 이루기 위해 어린 마리아에게 아동학대에 가까울 정도로
스파르타식 음악 훈련을 강요했던 '어머니 에방겔리아' ..
13살의 마리아는 극성스런 어머니의 교육열과 큰 키 덕분에 17살이 되어야 가능했던

그리스 국립 아테네 음악원에 입학
뛰어난 스승인 스페인 출신 소프라노 엘비라 데 이달고와 마리아 트리빌라 들로부터 지도를 받고
소프라노 칼라스를 있게 한 스승 엘비라 데 이달고는 말한다
" 같은 말을 두 번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똑똑하고 열정적였던
가장 먼저 와서 가장 늦게까지 있었던 학생이었어요
하루에 10시간씩이나 강의실에서 유명 성악가의 노래를 들으며
그녀의 두드러지게 큰 눈과 입으로 고음 발성을 연마했습니다"

1947년 베로나 음악제에서 폰키엘리의 오페라 '라 지오콘다'의 타이틀 롤로 성공적인 데뷔를 한 이후
칼라스의 독보적인 행보는 놀라웠다
그녀의 열렬한 팬이자 후원자요, 매니저가 된 28년 연상의 조반니 바티스타 메네기니와 1947년 결혼.
1954년 시카고 리릭 오페라에 이어 1956년 뉴욕 메트오페라 극장에서

그녀의 분신이 된'노르마' 역으로 화려하게 데뷔

뉴욕 필하모닉의 예술감독이자 작곡가인 레너드 번스타인은 마리아 칼라스를 '전율'이자 '오페라의 성서'라고 극찬.
풍부한 성량과 격정적인 음색, 무대를 휘어잡는 카리스마.. 완벽한 프리마돈나로 자리했던 칼라스

1958년 1월 2일, 이탈리아 대통령을 비롯한 각계 유명 인사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전석 매진된 로마 오페라극장에서의 '노르마' 공연에서
심한 기관지염으로 도저히 노래를 계속할 수 없었던 칼라스는
공연 취소를 알리는 안내 방송의 순간, 극장은 항의와 탄식의 아수라장이 된다
"미안하지만 난 형편없는 공연은 안해요"
언론들은 칼라스의 공연 취소 이슈를 1면 헤드라인으로 장식했다
기다렸다는듯이 맹비난하며 잔인하리만치 물어 뜯어대는 악의적인 보도


1965년, 7년 여의 해묵은 갈등을 뒤로 하고 다시금 뉴욕으로 되돌아와 메트오페라 무대에 다시 선 마리아 칼라스
그녀의 팬들은 '토스카' 공연 티켓을 구하기 위해 며칠 전부터 밤낮으로 노숙하며 기다리고
" 이렇게 줄 선 이유가 뭐죠?"
칼라스가 담긴 입간판을 들고 다니며 그녀에게 열광하며 환호..
" 마리아 칼라스 때문이죠. 그녀는 최고의 디바에요! "
" 칼라스의 공연을 놓치는 건 범죄에요. 이 시대 최고의 가수잖아요!
기교도 뛰어나고 연기 또한 말로는 표현 못하죠.
쉼표, 음표 하나 하나에 그녀의 영혼이 깃들여 있어요.그녀는 진정 천재에요!"


그녀는 말도 많았던 2년 여의 공백 끝에 엘리자베스 여왕 자매도 참석한 1964년 1월
런던 코벤트 가든 로열오페라의 컴백 무대에서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 로 대성공을 거둔다


토스카



1950년대 후반 절정의 전성기를 갓 지난 마리아 칼라스, 오나시스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1959년 7월,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가 칼라스 부부를 호화 요트에 초대한 것이 발단.
겉잡을 수없는 사랑에 빠진 오나시스와 칼라스는 항해가 끝나갈 무렵 연인이 되었고
사랑이 식은 칼라스와 메네기니의 결혼 생활은 파경에 이른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아리스토틀, 당신'은 내 삶과 자존심 또한 숨결이에요"

그리스 음악가 미키스 테오도라키스의 '희랍인 조르바의 춤'선율이 흐르고..

오나시스는 1968년 재클린 케네디와 전격 결혼함으로써
칼라스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으며 절망과 고통으로 빠져들게 하고
마스네의 '비가(Elegie)'와 함께
일생에 단 하나의 사랑이었던 오나시스에 대한 칼라스의 진심은

월터와 줄리, 그레이스 켈리 등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오나시스를 향해 쓴 러브레터로 ..

1973년 마리아 칼라스는 그녀의 예술적 파트너였던 이탈리아 출신의 유명 테너

주제페 디 스테파노와 함께 순회공연을 하고
"여신이 다시 나타나셨다"는 청중들의 뜨거운 환호성과 갈채는 그녀를 감동시켰다
칼라스는 앙코르 곡으로 푸치니의 '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를..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중 '허밍 코러스'가 잔잔하게 흐르는 가운데
오나시스와의 밝혀지지 않은 사랑이야기가 들려진다
병이 심해져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듯 초췌한 모습의 오나시스가 칼라스를 찾아오고
진심어린, 진정성있는 우정이었다고 오나시스는 고백.
"재키와의 재혼은 돌이킬 수 없는 실수였다"며 모두가 자기 잘못이었다고


1976년 마이애미 팜 비치에서의 마리아 칼라스는 평범한 중년 여성으로 지난 영광과 상처를 추억한다

베르디의 '지난 날이여 안녕' 을 배경으로,

프랑스 파리 시 외곽, 작은 아파트에서 외로이 은둔해오다 1975년 오나시스의 사망 소식을 들은 칼라스,
그녀는 크나큰 충격으로 고독과 우울증에 괴로워하다 1977년 9월 14일, 끝내 심장마비로 세상을 뜬다.

리턴 투어에서 칼라스가 앵콜곡으로 불렀던 푸치니의 '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가 다시 흐르면서
'마리아 칼라스 : 세기의 디바'는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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