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바르드 그리그
언제나 장미꽃 보기를 원했던 사랑하는 부인 '니나'를
위하여
바다로 면한 출입문 상부를 '장미꽃'이 들어있는 스테인드글라스로 만들었던
그리그.
결혼생활에 위기가 왔으나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화해, 호수가
보이는 언덕위에 집을 짓고
작곡생활을 하며 행복한 날을
보냈다
그의 음악은 노르웨이
향수가 피어 오르고
아련한 슬픔이 드리워져 있는 듯
늘 들어도 서늘한 기쁨을 준다
1843년
노르웨이 베르겐에서 태어난 그리그는 6살 때부터 어머니에게 피아노를 배웠으며
공부를
마치고 고향 베르겐으로 돌아와 귀국 독주회를 연 후 음악가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
당시 베르겐은 문화적으로 매우 낙후된 곳이어서 1863년 문화예술의 고장인 덴마크 코펜하겐으로 갔다
그리그는
많은 친구를 사귀었고 노르웨이 국가를 작곡한 리카르드 노르드락으로 인해 그리그는
고국의
민요와 자연의 위대함에 눈뜨게 되었다
그리그는 사촌인 니나와 결혼했고 오슬로
필하모닉의 지휘자이자 음악원 부원장으로 취임.
니나는 실력 있는 성악가였지만 결혼한 후
성악가로서의 삶을 포기. 가정주부의 삶을 살려고 노력했고
그리그는 자신이 아내가 세계적인
성악가로서 이름을 떨칠 기회를 박탈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전에는 그녀의 해석이 얼마나 중요한지
인식하지 못했다
나의 가곡을 그녀만큼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영혼 저 깊은 곳으로부터 진심을 가지고
말하듯이 부를 수 있는 성악가가
없었다."라고..
1870년 그리그는 리스트의 초청을 받고
이탈리아로 가서 리스트에게 피아노 협주곡의 악보를 보여 주고
리스트는 이 곡의 장대한 스케일과 뛰어난
색채감에 매료되어
"이 곡이야말로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혼이다"라며 극찬.
1894년 프랑스에서 드레퓌스 사건이
터졌다.
프랑스 육군의 포병대위였던 알프레드
드레퓌스라는 유대인이 간첩 누명을 쓰고 종신형을 선고받은 사건이었다
나중에 진범이 밝혀졌으나 장교들은
자기들의 실수를 덮으려고 사건을 은폐했다.
프랑스 작가 에밀 졸라가 〈로로르〉라는
신문에 '나는 고발한다!'라고 시작하는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 편지를
게재했다
그리그 역시 에밀 졸라의 생각에
동조했다. 1899년 콜론 오케스트라의 초청을 받았을 때
그는 드레퓌스 사건에 대한 프랑스의
정의롭지 못한 처사에 항의하는 의미에서 초청을 거절한다고 밝혔다
프랑크푸르트 신문에도 자기 생각을 밝히는
글을 실었다. 이 일로 수입이 줄어들고 친구들이 등을 돌렸다
1903년에 프랑스를 방문했을 때는
경호원을 대동해야 할 정도였다
1907년 그리그는 영국에서 열리는 리즈
페스티벌에 초대를 받았으나
출발 전날 건강이 안 좋아 병원에 입원.
얼마 후 9월 4일, 6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Yekwon
Sunwoo : Grieg piano concerto op16
(선우예권의
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