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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먼 옛날, 아주 머언 옛날에....

#1 먼먼 옛날, 아주 머언 옛날

폭정이 계속되어
백성들은 도탄에 빠져 있으나
백성의 어려움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어리석은 임금에게 총애를 받아
각종 이권에 개입하여 재물을 긁어모은 후

여러 대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형조판서에까지 오른
사악한 간신이 있었더랬다.

그 권세가 심히 높아
그 간신의 멍청한 딸년까지
진사시, 심지어 별시나 알성시도 없이
성균관에 입학 하였더라.

그 딸년은 학문과는 담을 쌓고
남사당패에 들어가 장구와 징이나 치던 년이라
매년 대과에서 낙방을 하였으나
그 아비의 권세에 눌려
성균관 대제학 마저 찍소리를 못하더니

이에 이 딸년의 성균관 유생 자격을 두고
전국 각지에서 특혜를 의심하는 상소가 빗발쳤으나
이 간신은

" 저~~녀 사실이 아닙니다. "

라고만 하였더라...
.
.

어느날

지나가던 나그네가 이 간신의 집에 들러
밥 한끼와 술 한 잔을 청하나
인정머리 없는 이 간신은
부인이 관리하는 곶간이 비고 쌀이 없어
자기들도 굶고 있으니
밥알 한톨 줄 수 없다고 하였더라.

나그네가 고개를 들어 툇마루를 바라보니
간신의 딸년이 드러누워 고기를 뜯으며 말을 하는데... 

" 허리 접질려 먹기만 해 돼지 되고 있나봉가... "

하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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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가 조용히 집필묵을 청하여
시 한 수 짓고 가는데...

이 간신이 나그네가 두고 간 시를 읽어보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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變容自足呈鳳嘉 (변용자족정봉가)
: 얼굴을 바꾸고 스스로 만족하여 봉황의 아름다움이라 뽐내고

權下醉驕登峰歌 (권하취교등봉가)
: 권력 아래 교만에 취해 정상에 올라 노래 부르나

難祕本愚生奉假 (난비본우생봉가)
: 근본의 어리석음을 숨기지 못해 태어나면서부터 거짓을 받드니

萬民怨聲刑棒加 (만민원성형봉가)
: 만백성의 원성에 형벌의 몽둥이만 더하리라

하였더라...


#2.나그네의 글을 읽고 대노한 간신이
머슴을 시켜 나그네를 뒤쫓아가 잡아왔다.
분에 못 이긴 간신은 나그네에게 오라를 채워
칼을 목에 채우고 꿇어 앉혔다.

그럼에도 분이 풀리지 않자
도성 내의 모든 기생들을 불러들여
나그네를 욕보일 심산으로
때아닌 술판을 벌렸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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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기방마다 내로라 하는 기생들을 보내왔는데
그 중
이젠 늙어 퇴물이 되어버린 행수기생도 끼어 있었더랬다.

이 행수기생년은 소싯적에
시 깨나 짓고 글 깨나 쓴다하여 도성에 널리 알려졌으나
본디 그 음기가 방탕하여
기둥서방을 셋이나 갈아치웠던 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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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행수기생이
평소 간신의 외모에 끌려 흠모하였던지라
간신의 마음을 달래주고자
간신 옆에 달라붙어 아부를 떨어대는데
오랫동안 비염이 있어
그 말투와 목소리 또한 기괴하여
듣는 사람들의 소름을 돋게 하였더라...
.
.
.
" 형판대감, 소인이 대감을 왜 흠모하는지 아시옹?
소인이 주상전하께 성심을 다하는 바
대감은 주상전하께서 총애하시니
소인은 그저 주상전하만 믿고 다른 누가 뭐라고 해도
대감의 편에 설 것이옹~ "

하더니
간신에게 술을 한 잔 따르고 나서
마당에 꿇어 앉은 나그네를 꾸짖어 가로되...

" 네 이놈, 어찌 우리 대감을 음해하고 비난한단 말인공?
네 목숨 하나 부지하는 것이 다 주상전하의 음덕이공,
이 형판대감께서는 이 자리에서 당장 네 목을 쳐도
아무도 시비걸 수 없는,
전하의 가장 총애하는 대감인 것을 정녕 모른단 말인공?
지금이라도 대감께 백배 사죄하공
목숨만이라도 부지하여 썩 물러남이 어떠한공? "

하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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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용히 듣고만 있던 나그네가
다시 한 수 시를 읊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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淺川出妓亦頭空 (천천출기역두공)
: 개천 출신 기생이라 역시 머리가 비었고

悞諂老身欲滿孔 (오첨노신욕만공)
: 그릇된 아첨과 늙은 몸뚱이로 구멍이 채워지길 바라는구나

短春温風辱心貢 (단춘온풍욕심공)
: 짧은 봄 따뜻한 바람에 욕된 마음을 바치나

長冬寒雪哭悔恐 (장동한설곡회공)
: 긴 겨울 한설에 울고 후회하며 두려워하게 되리라

하였더라...



#3.이 말을 듣고 있던 형조판서가
더욱더 대노하여 아랫것들에게 일러 가로되

" 저,저,저, 저 발칙한 놈을 매우 쳐라 !! "

하니

주변에 있던 머슴들이 몽둥이를 들고 달려드는데...
.
.
.
이때에 나그네 군호(軍號)할제...

- 암행어사 출도야 ! -

외는 소리 강산이 무너지고 천지가 뒤눕는다.
초목(草木) 금수(禽獸)인들 아니 떨랴

남문에서 출도야!
북문에서 출도야!

동서문 출도야! 소리 청천에 진동하더라...
.
.
.
천둥벼락같이
우르르 몰려든 어사또의 군졸들이
간신과 기생무리들을 포박하여 마당에 꿇어 앉히고
어사또는 대청마루에 올라
간신의 죄목을 낱낱이 읊었겄다.
.
.
.
" 죄인 형판은 들으라.

네 비록 주상께서 총애하는 벼슬아치이나
직위를 이용하여 재물을 탐해 축재하고
네 딸년마저 위계로써 성균관에 진학케 하니
그 죄가 만방에 퍼져 원성이 자자하여
삼척동자도 네 잘못을 알거늘
어찌 모른다, 사실이 아니다라고 잡아떼며
만민을 개, 돼지, 가재, 붕어로 업신여기는가?

만백성이 너의 간교함과 위선을 알고 있어
네 스스로 자중해도 모자라거늘
어찌 관직을 탐하여 구름 위의 용이 되어
그 위세를 대대손손 이어가려 한단 말인가?

내 이제 너에게 합당한 벌을 내려
백성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똑똑히 알게 하려 함이니
수형을 달게 받아
평생 네 죄를 뉘우치며 살아라. "

하였더라.
.
.
.
그러나 이 간신은 임금이 자신을 총애한다는 것을 믿고
오히려 큰 소리로 외쳐 말하되...

" 네 이놈, 내가 누군지 아느냐?
감히 주상전하의 복심인 내게 이렇게 하고도
네놈이 무사할 줄 알더냐?
네놈에게 어사또를 하사하신 것도 주상이시거늘
네 어찌 주상의 마음에 반하여 내게 이렇게 무엄할 수 있느냐?
게다가 너는 내 수하요, 나는 너를 감찰할 수 있는 형판이다.
네 어찌 감히 네 상관을 수감할 수 있단 말이냐?
하늘이 두렵지 않느냐, 이놈! "

하니

이에 어사또가
.
.
.
" 민심이 곧 천심이요, 백성의 뜻이 곧 하늘의 뜻이라.
임금의 위세가 높은들 하늘의 뜻을 거역할 수 있겠는가?
나는 오직 백성의 뜻을 받들 뿐,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

하시며

" 여봐라! 저 죄인을 당장 끌고가라! "

하시더라...
.
.
.
이에 간신이 이제 희망 없음을 생각하고
끌려가며 어사또께 묻되...

" 어사또 존함이나 알려주시오. "

하니

어사또 다시 시 한수 읊어 가라사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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凡君授令以義尹 (범군수령이의윤)
: 무릇 임금은 의로써 다스리라고 명령을 주었으나

貪官爪加民淚潤 (탐관조가민루윤)
: 탐욕스런 관리의 손톱은 백성의 눈물 젖음을 더할 뿐이라

天命對正以唯允 (천명대정이유윤)
: 하늘은 오직 진실로써만 올바름을 대할 것을 명하였으니

爲守百姓不折鈗 (위수백성부절윤)
: 백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부러지지 않는 창이 될 것이다.

하시고는
.
.
.
" 본관은 파평이나...
죄인이 어사또 이름은 알아서 무엇에 쓰겠는가?
가당챦은 네 이름이나 개명하거라. "

하시더라...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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