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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09, 23 / 가을 은총 / 정목일






     가을 은총 / 정목일 


     가을엔 맑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깨끗하고 푸른 하늘을 주셔서 무한의 맑음 속 으로 이끌어주십니다. 하늘 나라의 거울을 꺼내 영혼을 들여다보게 해주십니다.
    가을 하늘엔 맑음의 분수가 뿜어 오릅니다. 삶 속에 무수히 얼룩 졌던 거짓, 불의, 부끄러움을 씻어주는 눈물의 샘이 넘쳐나고 있 습니다. 아,
    나에게도 감춰둔 순수의 눈물샘이 있었던 것일까. 이 무량한 물로써 마음에 묻은 욕망, 집착, 이기의 먼지를 말끔히 씻 어내고 싶습니다.
    나는 비어 있는 조그만 그릇이고 싶습니다. 가을 하늘을, 마르 지 않는 맑음의 샘물을, 영원한 그리움을 담아두고 싶습니다.
    가 을 하늘은 무한한 맑음의 거울, 내 마음의 표정을 보여줍니다. 영 혼에 묻은 때를 씻어낼 깨달음의 눈물을 주셨습니다. 

     가을엔 깊이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어로써 표현할 길 없는 영감을 주시고 존재와 사유의 깊이를 생각하게 합니다. 밤하늘의 별 한번 반짝임이 내 눈에 들어오기까 지
    몇만 광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가을은 영원의 모습을 보여주고, 깊이의 심연으로 인도해줍니 다. 영원까지 닿을 수 있는 무한의 깊이를
    느끼게 합니다. 까닭 모 를 깊이는 두려움을 가져오지만, 영원 속으로 침잠해버리고 싶습 니다. 살아오면서 일시적이고 사소한 것에만
    매달려 영원하고 근 원적인 것을 보지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속도 모른 채 바깥만을 보고서 모든 것을 판단해온 어리석음을
    저질렀습니 다. 깊이에의 외경, 신비를 주셨습니다. 
     
    가을엔 고독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외로움이 커지면 오래 묵혀 향내나는 고독이 됩니다. 고독이 깊 어져 그리움의 피리가 됩니다. 그리움의 피리 소리가 흘러가면 고 요가 될까요.
     고요가 겹겹이 쌓이면 침묵이 될까요. 침묵은 천언 만감(千言萬感)을 안으로 되뇌고만 있을 뿐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않습니다.
    말이 아닌 영가의 세계,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서로 닿아 미소만 띄웁니다. 어둠 속에 빛나는 별, 산 속에 피어난 풀꽃 들이 그러합니다.
    혼자서 깨달음의 꽃을 피우게 하는 건 고독입니 다. 이 정갈하고 정화된 시간을 허락해주셨습니다. 고독이 아니면 홀로 가는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고독 속이어야만 영혼의 램프 불을 켤 수 있습니다. 

     가을엔 결실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곡백과만이 아니라, 만물에게 제각기 일년 동안 거둔 성취의 결실을 얻게 하셨습니다. 나는 가을 들판을 걷길 좋아합니다.
    황금빛 벼들이 겸허히 머리 를 숙이고, 오곡이 열매 맺어 바람결에 향기를 날리고 있는 들 판-. 논두렁, 밭두렁, 산비탈, 풀밭, 어느 곳에도
    가릴 것도 없이 자랄 대로 자란 풀들은 늦게 꽃을 피웠거나 풀씨들을 달고 있습니 다. 아무도 이름 한 번 불러주지 않은 듯 외로운 눈빛의 풀꽃,
    너무 나 조그맣고 단출하기는 하나 정갈하고 알찬 열매를 맺은 풀들의 일생과 만나면서, 나도 풀들처럼 대지에 뿌리박고 자신이 발견하 고
    얻은 깨달음으로 일생을 꽃피우고 열매 맺을 수 있을까를 생각 합니다. 모두가 제 모양 제 빛깔 제 향기를 온전히 드러내는 가을 에 나도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을엔 작은 것들이 알찬 결실을 얻는다는 걸 발견하곤 합니다. 농부로 조용히 살아가는 위대한 분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합 니다. 양심으로 욕심 없이 살아가는 고결한 분이 있다는 걸 깨닫 곤 합니다. 
     
    가을엔 비우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결실의 풍성함을 주셨으니 이제 모든 걸 비우고 떠날 때가 되었 습니다. 기러기를 앞세우고 그리움도 떠나보내야 합니다. 타는 듯
    이 아름다운 단풍도 남김없이 떨쳐버리겠습니다. 조용히 대지의 품속으로 돌아가겠습니다. 흙들의 표정이 경건해진 이유를 알겠 습니다.
    나무들의 표정이 겸허해진 것을 눈빛으로도 알아차리겠 습니다. 작은 풀씨들이 우주를 담고 빛나고 있습니다. 아름답던 모습과 빛깔은
    어느덧 해체되어 사라지고 맙니다. 저 녘 노을이 하루를 불태워 작별을 고하는 태양의 정열이듯이 단풍 도 사라지기 위해 최후를 단장합니다.
    채움이 있었으니 비움도 마 련돼야 합니다. 비워야만 새로운 것을 담을 수 있음을 알게 해주 십니다. 
     
    가을엔 길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음에 혼미와 혼란의 구름이 걷히고 걸어가야 할 길이 보입니 다. 혼자서 걸어가야 할 오솔길이 펼쳐져 있습니다. 나는 고독의 피리 하나를
    들고서 언덕을 넘어 황톳길을 걸어가렵니다. 새들도 하늘 길을 찾아 떠날 곳을 찾아갑니다. 곤충들도 하나씩 오랜 준 비를 해온 듯이 날개도 접고
     노래도 거두며 어디론가 모습을 숨깁 니다. 가을이 되면 비로소 하늘길이 보이고 땅의 길도 보이는가 봅니다. 만물이 제 갈길을 알고 소리 없이
     찾아갑니다. 지나온 길 과 남은 길을 바라보게 하고 생각하게 해줍니다. 과연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는 길-.
    내면을 응시해 순리로 향한 길을 조용히 가르쳐주십니다. 
     
    가을엔 종소리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만히 하늘에 귀대보면 영원에서 들려오는 듯한 신비음이 일 렁이고 있습니다. 맑음의 깊이와 영혼에서 울려오는 소리입니다.
    들판 길을 걸어가면 햇볕에 잘 여문 풀씨들에서 종소리가 은은히 퍼져흐릅니다. 참깨 터는 걸 보면서 종소리를 듣고,
    벼이삭에서도 종소리가 울려나는 듯합니다. 가을에 대한 찬미의 음악입니다.   
    <마음꽃 피우기>중에서      











LA 수향 문학회 cafe.daum.net/la-shmunh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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