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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활의음악정원

드보르자크 - Gott erhör mit Langmut mein flehen (하느님, 듣자옵소서 내 부르짖음을!) / 노래 이동활

(예전것) 드보르자크 - Gott erhör mit Langmut mein flehen (하느님, 듣자옵소서 내 부르짖음을!) / 노래 이동활

"신과 사랑과 조국, 오로지 이것만이 궁극적인 행복을 가져다준다" 체코 프라하에 있는 "빌라 아메리카"라고 불리는 작곡가 드보르자크의 박물관에 들어서면 한눈에 들어오는 이 글귀는 드보르자크의 유명한 좌우명입니다. 많은 분야의 체코인들이 그랬듯이 드보르자크 또한 이토록 두터운 신앙심과 사랑의 마음, 그리고 경건한 애국심으로 똘똘 뭉친 生을 살았습니다. 드보르자크가 태어난 곳은 보헤미아의 아름다운 대도시 프라하 근교입니다. 보헤미아는 체코의 서부 지방을 가르키는데, "보헤미안 기질"이란 본질적으로 속세를 떠나 자유분방한 생활을 좋아하는 것으로서, 낙천적이며 우울함보다는 즐거움을 뜻하지요. 보헤미아의 오랜 전통 위에서, 근대적인 음악을 구축한 선구자가 스메타나였고, 그것을 세계적인 것으로 입지를 굳힌 음악가가 바로 드보르자크입니다. 많은 이들이 체코를 찬양하는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만.. 보석과도 같이 옛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프라하의 자태도 자태이지만, 무엇보다 문학과 음악이 살아숨쉬는데 그 유혹이 있지않나 여겨집니다. 사람들의 삶의 모습엔 여러가지가 있지만 보헤미안적이냐? 필리스틴적이냐? 로 구분 할 수도 있어 보입니다. 극한 보헤미안은 필리스틴과 상통하고 극한 필리스틴은 보헤미안과 상통하겠지만... 보헤미안이란 이렇게 원래 체코의 보헤미아 지방에 산 유랑민족(집시)을 일컬었으나,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사회의 관습에 구애되지 않는 방랑자(vagabond), 자유분방한 생활을 하는 예술가, 문학가, 배우, 지식인들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고, 속물근성의 대명사로 되고 있는 필리스틴(Philistine)에 대조되는 말이지요. 필리스틴은 기원전 12세기경 팔레스티나 서남 해안에 살던 비(非) 셈족인 호전적 인종의 사람을 가르키는 말로 일반적으로 문학, 예술 등을 이해못하는 실리주의자, 무취미한, 속되고 교양 없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 되었습니다. 드보르자크의 음악에는 고전적인 균형과 조화가 잡힌 구성의 틀 안에서 민족적인 주제나 리듬이 융합되어 있습니다. 유머러스한 매력과 소박성, 그리고 박력과 정열등이 형성되어 있지요. 보헤미안의 야생적 취향과 세련미, 소박함과 기교 등의 대립요소가 심한 단층을 이룬채 독특한 조화를 이룹니다. 음악적 영감은 풍부하고 생기에 차 있을 뿐더러, 선율은 자연적이며, 항시 발랄한 음악성이 충만되어 있습니다. 지금 배경음악으로 흐르는 "성서의 노래"는 교향곡 "신세계에서"와 마찬가지로 드보르자크가 1894년 뉴욕 시립 음악원장으로 재직하던 미국 체제 중에 작곡한 것입니다. 드보르자크가 무엇때문에 "성서의 노래"에 손을 되었는가에 대해서 여러가지 추측이 있으나, 아마 가장 큰 동기는 "인간의 죽음"이라는데 있지 않나 봅니다. 이 곡집을 작곡하기에 앞서 드보르자크는 먼 이국에서, 유럽의 저명한 음악가 세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는 통지를 받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 세사람이란 구노, 차이코프스키, 한스 폰 뵐로입니다. 그로부터 다시 부친의 건강 상태가 매우 우려할 만 하다는 통지도 고국에서 왔는데, 이 부친은 "성서의 노래"가 완성된 바로 이틀 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와같은 일과 동시에 미국 체재도 2년째에 접어들어 53세인 드보르자크에게는 고향생각이 많이 났음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는 프라하 시절부터 취미가 특이하게도 기차구경, 나아가 열차의 제작연도, 넘버, 도착시간까지 다 외울정도로 역의 풍광과 열차시스템을 구경하는 것을 즐겼는데, 취미 자체가 가히 보헤미안적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뉴욕에 와서도 거의 매일 그랜드 센트럴 스테이션으로 나가 괴성을 지르며 질주하는 기차와 역의 풍광을 보는것을 마음껏 즐겼으나, 그것만으로는 고향에 대한 향수를 견디지 못했는지 보헤미아 이주민들이 모여 사는 아이오와 주의 스필빌도 자주 찾곤했습니다. 이렇듯 조국에 대한 향수는 드보르자크를 한층 더 내성적으로 만들었으며, 종교의 세계에서 위안을 받고자 한 듯 여겨집니다. 지금 흐르는 "Gott erhör mit Langmut mein flehen" (하느님, 듣자옵소서 내 부르짖음을)는 성서의 노래 전10곡 中 제6곡 으로서 시편 제61편의 제 1,3,4행과 제63편의 제 1,2,4행을 가사로 하고 있습니다. 하느님, 듣자옵소서 내 부르짖음을, 내 비는 기도를 살펴 들어 주소서. 주님이야 정말 나의 피난처, 원수 앞에 굳센 탑이시니이다. 내 항상 당신의 장막 안에 살았으면 싶사옵고, 당신 날개 그늘 아래 들었으면 싶사옵니다. 하느님 내 하느님, 당신을 애틋이 찾나이다. 내 영혼이 당신을 목말라 하나이다. 물기 없이 마르고 메마른 땅, 이 몸은 당신이 그립나이다. 이 목숨 다하도록 당신을 찬양하며 당신 이름 부르며, 두 손 치올리리이다. 미국 체류중에 알게 된 흑인 영가의 영향도 다소 스며들어 있으며, 조국을 떠난 이민자의 향수가 그의 신앙심과 맞물려 애수띤 선율로 담겨 있는 듯 합니다. 브람스는 드보르자크를 두고 "그는 어떤 작곡가보다도 많은 악상을 갖고 있다" "그가 쓰다 버린 악상에서도 중요한 모티브를 얻을 수가 있다"라고 말했듯이.. 이곡에서도 풍부한 그의 음악적 영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노래는 1990년에 있은 저의 귀국독창회 실황인데 체코어가 아닌 독일어로 불렀으며 당시 어리고 좁은 저의 가슴에 드보르자크의 당시 삶과 죽음에 대한 내면적인 심각함, 그리고 표현의 간결함을 담아내기엔 족탈불급(足脫不及)인 듯 여겨집니다. 음질이 약하니 볼륨과 Bass를 많이 높이셔야 합니다! 잘 소개되지 않은 곡인 듯하여 노래 불렀을 당시 젊었던 저의 사진과 함께 올리니 부족하더라도 이해하시길! 저는 여러가지 삶의 유혹(?)에 연주 활동 그만둔지 오래된 것 다들아시죠? 영세는 오래전에 받았지만.. 요즘은 크리스마스에만 성당에 가는.. 그것도 아이들의 성화에 못이겨.. 마치 드보르자크가 기차구경하러 역에 가듯이, 성탄의 풍광이나 보러 성당에 가는 사람으로서 이곡을 소개하니 많이 부끄럽네요. 종교적 차원이아닌 학술적 차원에서 감상하시길 부탁드립니다. 야박한 속세를 접어두고 이곳 음악정원을 거닐기를 좋아하는 보헤미안들이여! 날마다 자유와 내적인 안정, 그리고 은빛 영롱함이 흐르는 나날되소서! 2005, 12, 12 달구벌 용지산하, 수성호반이 바라다 보이는 서재에서 音庭 이동활 francesco 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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