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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에서
단테의 흔적을 만나고 단테교회에서 그의 발자취를 더듬었던 몇년 전..
아르노
강변과 베키오 다리를 보니 푸치니의 오페라 'O mio babbino
caro'에서
연인에 대한 사랑을 아버지에게 호소하며 사랑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베키오 다리에서 뛰어내리겠다는 애절한 노래도
떠올랐고.
'단테'
하면 《신곡》과 베아트리체를 빼놓을 수 없으리라.《신곡》은 문학 작품으로만 머무르지 않고
미술, 음악 등 예술계 전반에 다양하게
리스트,
차이코프스키와 라흐마니노프의 작품에
까지
영향을 미쳤다.
단테와
그의 연인 베아트리체..
단테 연구학자였던 보카치오는 저서 '단테의 삶'에서 연인들의 운명적인 첫 만남을 이렇게
말한다.
'5월 초하루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난 피렌체. 명문귀족 폴코 포르티나리 가문은 저명인사들을 초청해
축제를
베푼다. 피렌체에서 귀족들은 모두 가족과 함께, 단테의 부친 알리기기에로도 아들을 데리고
흥겨운
파티에 참석했다. 단테는 이 파티에서 포르티나리의 귀엽고 예쁜 딸 베아트리체를 보게 된다.
어린
단테의 눈에 비친 베아트리체는 천사 그 자체였다. 아름다운 용모와 우아한 자태를 자랑하는
베아트리체는
파티의 꽃이었다. 단테는 첫눈에 베아트리체에게 운명적인 사랑을 느꼈다.
그날
이후 단테에겐 오직 베아트리체를 보는 것만이 생의 유일한 위안이요 행복이 되었다.'
단테가
파티에서 베아트리체를 처음 보았을 때는 아홉 살이었다.
넋을
뺏을 만큼 아름다운 소녀와의 첫 만남은 소년의 순결한 영혼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첫만남에
숙명의 여인을 발견한 시인의 고백은 화가들의 영감을
자극했다.
피렌체의
관례대로 일찍 약혼한 단테는 스무살에 명망 높은 가문의 딸, 젬마와 결혼을
했다. 몰락한
귀족의 아들인 단테와 피렌체에서 최고의
부와명에를 자랑하던 가문의 딸, 베아트리체와의
사랑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베아트리체도
대부호인 바르디 가문의 시모네와 결혼.
단테의, 평생의 사랑이었지만 결코 가까워질 수 없었던 베아트리체는 1790년 스물네
살,
세상을 떠났다.
Henry
Holiday (1839-1904)Dante and
Beatrice
Henry
Holiday의 그림은.. 아름다운
처녀로 성장한 베아트리체가 친구와 함께 아르노 강변을 산책.
청년
단테는 베아트리체의 모습을 애타게 바라보나 베아트리체는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낯선
남자의 눈길을 의식하지 못한 채 앞만 보고 걷는다.
John William
Waterhouse
(1849-1917) Dante and
Beatrice
Lord Frederick
Leighton
(1830-1896) Dante in
Exile
유령처럼 창백한 표정의 단테.
얼굴은
돌처럼 굳어져 있고 깊은 절망감이 풍겨 나온다.
베아트리체가
길을 가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 단테를 바라본다. 단테는
사랑하는 여인에게 눈길조차 줄 수 없다.
화가는
단테의 불행을 강조하고 극적인 효과를 위해 베아트리체가 지켜보는 가운데
단테가
생이별하는 상황을
연출했다.
그는
이후 56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탈리아와 유럽 전역을 떠돌며 살았다.
Dante Domenico di Michelino Duomo
Florence
Domenico di Michelino (Italian,
1417–1491)
정치가의
길을 걸었던 단테는 서른 일곱 살 때 피렌체로부터 영구추방이 결정되고,
체포시에
화형에 처해질 것이라는 끔찍한 선고를 받는다.
이
도시 저 마을을 방랑하면서 단테는 《신곡》을 구상하고 1307년(42세)에 집필을 시작,
13년에
걸쳐 완성한 뒤 바로 숨을 거둔다.
음악을 들으려면 아래 바로가기 누르세요!
http://cafe.daum.net/musicgarden/FCQY/1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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