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모든 과(果)에는 필연적인 인(因)이 있으며, 하나의 과(果)에는 인(因)과 함께, 여기에 작용하는 무수한 연(緣)에 의해 나타나는 것이며, 이 과(果)는 또 다른 인(因)의 요소가 되어, 연기(인-연-과)의 법칙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 과(果)의 '용도나 수명'이 다하면(생→주→이→멸),
다시 '지(地 :흙의 요소) · 수(水 :물의 요소) · 화(火 :불의 요소) · 풍(風 :바람공기의 요소)'로 표현되는 '4가지 요소(四代)'로 돌아가게 되며, 이 또한 다시 시작되는(_흙으로 돌아가면 또 다른 씨앗의 토양이 됨)을 알 수 있습니다. in ※'인·연·과'와 과정에서 우리들 '인간의 의지'도 작용을 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인연생기(因緣生起)의 법칙인 인과(因果)는 삼계의 모든 사물들과 현상에서는 '인과율(因果關係)'의 적용범위에 포함이 되는데, '유정물(생각이 있는 것)' 중에 인간(사람)은 '의지(意志)'라는 것이 강하게 작용하므로 이 '인과 법칙'의 경계(정도의 한계)에서 벗어납니다.
하나의 인(因)에 의한 과(果: 나타나는 결과)가 '개인의 생각과 의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정물 중 의지(개인적 사고)가 강한, 우리들 인간에게는 업(業)에 의한 인과(因果)로서의 과보(果報)를 적용하게 되며, '업보(業報), 인과응보(因果應報)'라는 말을 쓰게 됩니다.
업(業)은 산스크리트의 '카르마(karma)'를 뜻하는 것으로, 이는 '하는(짓는) 행위_작위(作爲)'로 [스스로의 행동]함을 뜻하는 말로, 인간이 짓는 (의지적)행동 하나 하나가 모이고 쌓여
과보(果報)의 인(因)이 되고, 이는 다른 인연조건(緣)에 의해 '과(果)에 대한 보(果報)'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_선한 행위(善業)는 낙과(樂果)를 받고, 악한 행위(惡業)은 고과(苦果)를 결국 받게 된다는 것으로 이것을 따로 설명하는 것이 '업감연기설(業感緣起說)'입니다.
또한, 잘못을 하였을 때 이를 반성하고 다시는 안하거나, 아니면 이를 만회할 수 있는 행위(선행)를 많이 하는 것과, - 그 잘못에 대한 뉘우침이 없이, 잘못을 반복하는 경우에 그 인(因: 잘 못한 것)에 대한 보(果報)의 내용(결과)는 다르게 나타나는 것과 같은 것이죠.
"악의 열매가 익기 전에는 악한 사람도 복을 만나나, 악의 열매가 익은 뒤에는 악한 사람은 죄를 받는다.
선의 열매가 익기 전에는 착한 사람도 화를 만나나, 선의 열매가 익은 뒤에는 착한 사람은 복을 받는다." -법구경(法句經)-
※사성제, 팔정도, 삼법인 등의 모든 가르침은 이 연기설과의 관계속에서 이해가 되며, 따라서 이 연기의 의미를 아는 것은 초기 불교 사상 그 자체를 아는 것과 같다고 말해집니다. 원시경전에는
만약 연기(緣起)를 보면 곧 법(法)을 보고 법을 보면 연기를 보리라. 법을 보는 자는 나(=부처)를 보고, 나(=부처)를 모는 자는 법을 보리라. 라고 설해져 있습니다.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라자그리하의 칼란다카 대나무 동산에 계시었다. 그 때에 존자 샤리푸트라와 존자 마하코티카(摩訶狗치羅)는 그리드라쿠타산에 있었다. 그 때에 존자 사리푸트라는 해질녁에 선(禪)에서 깨어나 존자 마하코티카가 있는 곳으로 가서 서로 인사하고 위로한 뒤에 한 쪽에 앉아, 존자 마하코티카에게 말하였다.
"물을 일이 있는데 틈이 있으시면 대답해 주시겠습니까." 존자 마하코티카는 존자 사리푸트라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이제 물으시오. 아는 대로 대답하겠소." 존자 사리푸트라는 존자 마하코티카에게 물었다. "어떻습니까. 존자 마하코티카여, 늙음이 있습니까."
존자 마하코티카는 대답하였다. "있습니다. 존자 사리푸트라여." "죽음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늙음과 죽음은 자기가 지은 것입니까. 남이 지은 것입니까. 자기와 남이 지은 것입니까. 혹은 자기도 아니요 남도 아니며 인(因)이 없이 지어진 것입니까."
존자 마하코티카는 대답하였다. "존자 사리푸트라여, 늙음과 죽음은 자기가 지은 것도 아니요, 남이 지은 것도 아니며, 자기와 남이 지은 것도 아니요, 또한 자기나 남이 지은 것도 아니지만 인(因)이 없이 지어진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태어남(生)을 인연하기 때문에 늙음과 죽음은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태어남(生) · 존재(有) · 취함(取) · 애착(愛) · 느낌(受) · 닿음(觸) · 육입(六入) · 명색(名色)은 자기가 지은 것입니까. 남이 지은 것입니까. 자기와 남이 지은 것입니까. 자기도 남도 아니요 인(因)이 없이 지어진 것입니까."
"존자 사리푸트라여, 명색(名色)은 자기가 지은 것도 아니요, 남이 지은 것도 아니며, 자기와 남이 지은 것도 아니요, 자기와 남이 지은 것도 아니지만 인(因)이 없이 지어진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 명색(名色)은 식(識)을 인연하여 생긴 것입니다." "그러면 그 식(識) 자기가 지은 것입니까. 남이 지은 것입니까. 자기와 남이 지은 것입니까. 자기도 아니요 남도 아니며 인(因)이 없이 지어진 것입니까."
"존자 사리푸트라여, 그 식은 자기가 지은 것도 아니요, 남이 지은 것도 아니며, 자기와 남이 지은 것도 아니요, 자기와 남이 지은 것도 아니지만 인(因)이 없이 지어진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 식은 명색을 인연하여 생기는 것입니다."
존자 사리푸트라는 다시 물었다. "존자 마하코티카여, 조금 전에 말하기를 '명색은 자기가 지은 것도 아니요, 남이 지은 것도 아니며, 자기와 남이 지은 것도 아니요
자기와 남이 지은 것도 아니지만 인이 없이 지어진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 명색은 식을 인연하여 생기는 것이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 이치는 어떠합니까." 존자 마하코티카는 대답하였다.
"이제 비유를 말하겠소. 지혜로운 사람은 비유로 말미암아 바른 뜻을 알게 되는 것이니, 비유하면 세 개 갈대가 빈 땅에 서려고 할 때 서로서로 의지하여야 서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만일 그 하나를 버려도 둘은 서지 못하고 만일 둘을 버려도 하나는 또한 서지 못하여, 서로서로 의지하여야 서게 되는 것입니다. 식이 명색을 인연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아서 서로서로 의지하여야 나서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 · · 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