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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바라보며 (김영중수필가) 그림: 정영진 유화전 (소나무가 있는 풍경 중에서)

나무를 바라보며 (김영중수필가) 그림: 정영진 유화전 (소나무가 있는 풍경 중에서) 

 

나무를 바라보며
김 영 중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의 상황이 더 심각해져 다시 셧 다운을 한다는 뉴스를 듣는다.

갑갑하고 구속감에 젖어들게 하는 살 맛 나지 않는 세상에 더위는 계속되고 있다.

아이스커피를 한잔 들고 마당에 나가 앉자 바람을 가슴으로 맞아드린다.

 

담 너머로 땡볕에 외롭게 의연하게 서 있는 옆집 나무를 바라보며

너는 덥지 않니 나무에게 물어본다. 나무는 침묵할 뿐 말하지 않는다.

할 수 없는 나무이기에 내가 좋아하는지 모른다.

 

이 양하 선생의 수필에 나무의 덕목을 찬양한 글이 있다. 나무는 덕을 지녔다.

나무는 주어진 분수에 만족할 줄 안다.

나무는 태어난 것을 탓하지 아니하고 왜 여기 놓이고 저기 놓이지 않았는가를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불교의 윤회설이 참말이라면 죽어서 나무가 되고 싶다고까지 쓴 글을

오래전에 감명 깊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요즘 나는 정 영진 화백의 나무 그림에 매료되어 있다.

화백의 나무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한 마디로 편안함이다.

정신이 고요하게 진정되며 내 영혼과 육체에 위안과 휴식을 제공해 준다.

마치 오래전에 잃어버린 친구를 다시 만난 기쁨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내가 처음 그림에 빠졌던 때는 학창 시절이 였고 나를 매혹시킨 화가는 밀레였다.

밀레의 만종이란 그림을 보았을 때,

기도와 같은 아름다운 농민들 인생이 시처럼 가슴에 다가왔다.

그 후 나는 밀레의 그림 중 만종과 이삭 줍는 여인,

두 그림을 구입해 내 집안 거실 중심에 걸어놓고

그 그림을 보배롭게 여기며 살아 온지 어느새 50년 세월이 가깝다.

 

그림을 보는 일은 확실히 좋은 일이나 이 시대에는 참으로 요란스러운 그림들이 많다.

어지러울 정도로 무엇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제멋대로의 그림들이 범람하고 있다.

화폭에 물감을 뿌려놓고 발로 비벼댄 건지, 그리다 만 건지,

물감을 확 화폭에 부어버린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림들이 쏟아져 나오는 통에 미에 대한 질서를 잡을 수가 없고

무엇이 그림인지 정의를 내릴 수도 없이 되어 버렸다.

 

정화백의 나무 그림에는 때 묻지 않은 쓸쓸한 충만이 가득한 자연,

맑고 아름다운 정경도 좋고 나무 표피의 생생함,

청결한 순수의 생명이 아름다움으로 넘친다.

그것은 또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기쁨이기에 내가 좋아하는 그림이다.

자연도 아름답지만 천재의 두뇌를 통해서 재창조되어 나오는 그 그림의 세계는

더욱더 아름답고 신기하고 황홀하다.

그것은 무상의 희열을 나에게 안겨준다.

무한한 상상과 꿈과 풍경과 그 미지의 신비로움- 이러한 것에 취하게 해 준다.

리하여 잠시나마 이 따분한 현실에서 해방을 맛보는 휴식을 준다.

 

말없이 땅속에 뿌리를 박고 저 혼자 열심히 자라나

푸르름을 지키며 꽃과 열매를 맺어 인간에게 헌신하는 나무,

스스로의 삶을 만족하며 고독을 즐기고 우리 모두에게 두루 너그러운 나무,

그 나무를 바라보노라면 깊은 반성과 사색을 준다.

나무는 연륜이 갈수록 의젓하고 지혜로워지는 것 같이 보인다.

나도 나무를 본받아 나무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LA 수향 문학회 cafe.daum.net/la-shmunha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