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자리 임금/ 㰔主
갈대 엮어 만든 삿자리를 섭(㰔)이라 하고, 섭주(㰔主)는 ‘삿자리 임금’이란 뜻이다. 고려 태조 왕건(王建王建/ 877-943/ 在位 918-943)을 이은 제2대 임금 혜종(惠宗/ 912-945/ 在位 943-945)을 두고 전하는 별명이다. 그의 이름은 왕무(王武)이고 어머니는 나주오씨(羅州吳氏)의 장화황후(莊和王后)다. 기울어진 통일 신라의 한반도를 정복해 내려갈 때 왕건의 목포(木浦) 고사(故事) 하나가 그것이다. 그는 25명의 아들과 8명의 딸을 낳았을 정도로 정략(政略)으로 여러 여인과 결혼을 했으니 그 많은 뒷얘기 가운데 한 전설.
혈기 왕성한 궁예(弓裔)의 장수였던 왕건이 지금의 나주인 목포(木浦)에 배를 정박하니 남국 하늘에 오색 구름이 너무 고왔다. 마침 완사천(浣紗泉)에서 빨래하는 처녀에게 물을 청하니 소위 버들 낭자가 물 바가지에 버들 잎을 훑어서 뿌리고 내밀자, 왕건이 감동하고 불러다 동침을 했다. 불현 듯 ‘아, 왕자가 날지도 모를 일이니 빨래하는 이런 미천한 여자에게 임신 시켜서는 안 될 터!’ 클라이맥스(climax)의 순간에 오르자 급히 포즈를 취하고서 방바닥에 사정(射精)을 해버렸다. 세상에는 기는 놈 위에 나는 놈도 있으니, 비록 빨래하는 이름 없는 시골 처녀였지만 왕건보다 한 수 위를 보는 슬기가 있을 줄을 어이 상상 했으랴! 바로 그때에 용 한 마리가 처녀의 품 안으로 빨려 드는 환상을 볼 줄이야! 비장한 마음으로 시골 처녀의 순발력은 야수(野獸)도 능가할 지경이었다. 가난한 시골 방 삿자리에 쏟아낸 왕건의 정액을 쏜살같이 자기 손으로 쓸어 움켜서 자기 속에 담아 넣었지 뭔가. 그 아이를 낳은 것이 혜종(惠宗/ 912-945)이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혜종의 얼굴에는 삿자리 자국이 남아 있어서 ‘삿자리 임금[㰔主]’이 되었다는 전설. 그 처녀가 바로 왕건의 첫 아들을 낳아준 장화황후(莊和王后) 나주오씨(羅州吳氏)다.
아버지 태조가 여러 여자에게서 낳은 자그마치 25명의 아들 중에서 아버지의 왕위를 계승한 맏아들이 혜종, 출생 신화부터 극적(dramatic)인 것은 그만큼 치열한 경쟁 속에서 파란만장한 권력 투쟁 속이었음을 웅변 해온 게 아니겠는가. 아버지 태조가 후백제를 칠 때에 벌써 왕무(王武)는 아버지를 도와 지략과 용맹을 떨치며 공로를 세웠지만, 호족(豪族)의 세력을 각기 업고 있던 왕건의 부인들은 저마다 왕자를 태조 뒤를 잇는 왕위에 올리고자 했을 것이니,그 중에도 이복동생 왕요(王堯)가 지금의 평양인 서경(西京)의 왕식렴(王式廉) 세력과 결탁하여 권력을 엿보고 있었으므로 혜종이 앓게 되자 쟁탈전이 노골화했다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자기 외가의 힘에 의지한 왕규(王圭) 동생이 왕무(王武)를 암살하려는 음모를 후견인인 박술희(朴述熙) 재상(宰相)의 도움으로 겨우 모면하고서 가까스로 왕위에 올랐던 혜종이었는 데. 왕식령의 군대가 개경으로 쳐들어와서 왕규의 일당 3백 명까지 죽이고 박술희조차 갑곳(甲串)에 유배 시켰다가 죽였다니 까. 그리하여 왕요가 혜종이 죽자 스스로 여러 신하들의 추대라면서 왕위에 올라 정종(定宗)이 되었던 것만 보아도 혜종이 얼마나 위태로웠던 가를 짐작 케 하고, 심지어 그의 죽음도 의문이 남아있을 정도이다. 삿자리 임금 혜종은 그나마 2년을 겨우 왕위에 있었고, 그를 이었던 이복동생 정종마저도 27살에 죽어 고작 4년의 임금이었으니, 안타깝게도 인생과 권력이란 무상 하기[ephemeral]가 이를 데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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