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적과 김정희"
아침 햇살 흐릿한 성곽 너머로
눈 서리 뒤엉킨 드넓은 들판
지독한 추위는 풀리지 않고
남은 겨울을 옥죄고 있다.
모래 길 찾으면서 걸어가는데
얼음은 돌멩이와 뒤섞여 있고
빈 강의 찬 가운은 눈을 찌르며
드넓은 유리 빙판 덮어버린다.
주막 깃발 나부끼는 깊은 마을엔
고깃배 얼어붙어 멀리 갈 수 없지만
파교로 매화를 찾아나서면
시인을 만날 수도 있을 듯하다.
그 옛날 왕휘지는 친구 찾아 나섰다가
부질없이 섬계에서 배를 돌려 왔었지.
저기 저 한겨울의 나뭇가지 위로는
바람 속에 까치가 맴돌고 있다.
- 이 상적 -
왕휘지라는 이는 명필로 유명한 왕희지의 아들이다. 그는 어느날 섬계라는 곳에 사는 친구를 보고 싶어서
밤새 노를 저어 갔다.
그런데 새벽이 밝아오고 친구의 집 근처에 이르자, 돌연 배를 돌렸다.
이유는 “흥이 나지 않는다.”는 것.
친구가 보고파서 밤새 노를 저어 갔지만,
막상 당도하고 보니 그럴 기분이 사라져서
배를 돌렸다는 고사(故事)를 인용한 것이다.
이건 무슨 뜻일까.
어쩌면 이상적 역시 불안했는지도 모른다.
추사의 부친 김노경이 절해고도로 유배된 사건은 뒷날 그 사건의 중심 인물 윤상도가 능지처참을 당할 만큼 심각한 사건이었다.
이렇듯 역모에 필적하는 사건에 휘말린 이의 가족을 찾아 위로한다는 것은 그 자신에게도 대단한 부담일 수 밖에 없었다. 누군가에게 역모 또는 그에 준하는 혐의가 씌워질 경우, 그 친구들도 의심의 시선을 받고 불운한 경우 의금부에 끌려 들어가 형틀에 묶이는 경우가 다반사이던 시절이었다.
이상적은 가는 길에도 여러 번 발길을 돌릴까 말까 망설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상적은 왕휘지가 아니었다.
한편 김정희는 생애 가장 혹독한 겨울을
맞이하고 있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누구도 찾기 어려운,
외로워서 괴로운 겨울을.
그 지긋지긋한 겨울 끝,
입춘 즈음 이상적은 봄처럼 찾아왔다.
“얼마나 상심이 크십니까.”
경사(慶事)에는 빠져도 상갓집은 빼놓지 말라는 말이 있다. 어려울 때 손잡아 주는 벗은 기쁠 때 축배를 든 친구보다 열 배는 더 기억에 남는다.
김정희 또한 감격했다.
더구나 이상적은 역관으로서 북경을 막 다녀온 참이었다.
여독도 풀리지 않은 몸으로 한겨울 바람을 헤치고 자신을 찾아 항상 가슴에 담고 있던 북경의 새 소식을
도란도란 전해 주는 이상적이 김정희에게
어떻게 보였을까.
김정희의 가슴에는 이상적의 이름과 얼굴이
깊숙이 박힌다.
☆세상은 흐르는 물살처럼 오로지 권세와 이익에만 수없이 찾아가서 부탁하는 것이 상례인데 그대는 많은 고생을 하여 겨우 손에 넣은 그 책들을
권세가에게 기증하지 않고 바다 바깥에 있는
초췌하고 초라한 나에게 보내주었도다.
조선시대 역관은 대를 이어 그 직업을 세습했는데, 이상적 집안은 역관을 뽑는 역과(譯科)에 합격한 자가 9대에 걸쳐 30명에 달할 정도였다.
17세 연하인 역관 이상적이 어떻게 추사의 제자가 되었는지는 정확치 않다. 이상적은 통역관이었지만,
시문에도 밝아 추사의 문하를 자처했고,
연경에 문우가 많았다. 왕홍(王鴻)과의 30년 교우가 특히 회자되었다. 말년에는 온양군수를 지냈다.
⊙이상적
- http://naver.me/GttJY6cc
⊙김정희
- http://naver.me/xYQTsZbL
- 지식백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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