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생각하기
걷기는 인간 본연의 이동 방식이다. 앞서 나간 발은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전진을 가능케 하는 운동을 이끈다. 몸은 언제나 땅과 닿아
있으며, 한순간도 공중에 머무르지 않는다. 만약 공중에 떠 있다면 이미 달리기로 넘어간 것이다. 걷기는 개인을 땅에 붙들며, 그럼으로
써 개인과 땅의 본질적 유대를 포함한다. 우리는, 플라톤이 뭐라 하건 간에, 땅의 식물이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체중은 쉴 새 없이 좌우로 흔들린다. 걷는 사람은 균형감각을 지닌 채 힘을 균등하게 분배할 줄 안다.
걷기는 다리, 골반, 몸통, 팔 그리고 머리가 모두 협력할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근육을 균형 있게 발달시키고, 밖으로 표출되기 전
에 한 테제에서 다른 테제로 넘어갈 수 있는 변증법적 정신을 길러준다. 정신의 걷기는 변증법적이며 가장 적절한 균형을 추구한다. 이처
럼 몸과 정신은 상호 불가분의 관계다. 아이에게 있어 걷기를 배우는 시기와 언어를 습득하는 시기가 일치한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보행자는 시속 3~5km 사이의 속도로 이동하며, 세상의 크기와 현실에 대해 명료하게 의식한다. 속도가 증가함에 따라 세상은 점점 윤곽
선이 흐릿해져 마침내 사라지기에 이른다. 우리는 걸을 때 우리가 사는 현실을 구성하는 존재와 형태들의 무한한 다양성을 잘 발견할 수
수 있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우리 눈은 걷기에 최적화되어 있다. 걷는 사람의 내밀한 의지는 세상을 점거하거나 정복하거나 지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살고자 하는 것이다.
가장 오래된 이동 방식인 걷기는 여전히 특정한 장소에 닿고 특정한 장애물을 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기도 하다. 그 어떤 탈것도 지나갈
수 없을 만큼 좁은 통로, 지나치게 심한 땅의 기복 같은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보행자만이 이런 곳에 갈 수 있다. 보행자는 느리게, 그러
나 확실히 간다.
200만 년 전 최초의 인류에게 처음 나타난 걷기는 팔을 자유롭게 했고, 그러자 팔은 도구를 사용하고 사물을 운반하며 몸짓을 전달하는
데 쓰일 수 있게 되었다. 걷기의 필요조건인 직립은 또한 뇌의 발달 및 그와 연관된 지적 능력의 발달을 가능케 했다. 달리 말하자면, 인
간이 걷게 된 것은 우연에 의한 것이 아니라 천성에 의한 것이다. 인간은 발로 생각하기 시작한다. 루소가 썼듯이, "우리의 첫 철학 스승
은 우리 발이다."(에밀)
걷기와 달리기
걷는 것과 달리는 것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둘을 구분하는 것은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본질의 문제다. 둘 중 하나는 시간을
압축하고 줄이려 하며, 시간에 대해 일종의 폭력을 행사한다. 달리는 사람은 가능한 한 빨리 가려고 애쓴다. 다른 하나는 시간의 흐름에
맞춰 어우러지며, 시간의 가장 내밀하고 근본적인 리듬을 흉내내려 한다. 걷는 사람은 자신과 세상의 맥박 사이의 일치를 추구한다. 내
달리는 사람이 조급하다면, 걷는 사람은 한가하다. 전자는 시간에 쫓기고, 후자는 시간을 들인다. 한 명이 초시계에 의거한다면, 다른 한
명은 시간이야 아무래도 좋다. 노력 전체의 초점을 마지막 몇 미터에 맞추는, 달리는 사람에게는 오로지 도착만이 아름답다. 노력을 여정
전체에 걸쳐 분산하는, 걷는 사람에게는 오로지 길만이 아름답다.
우리는 때로 걷고 때로 달릴 수 있다. 이 두 활동이 양립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 둘은 같은 논리를 따르는 활동이 아
니며, 달리기가 이따금 좋은 일이라고 한다면 걷기는 언제나 필수적이다.
크리스토프 라무르 : 코트 바스크 지방의 고등학교 철학 교사 [권력 추구의 작은 철학] 저자.
- 크리스토프 라무르의 <걷기의 철학>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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