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 결혼 (祝 結婚)
결혼식이란 신랑과 신부가 일가친척, 친구,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두 사람의 결합을 공개적으로 알리면서 축하를 받는 자리다. 따라서 이러한 책임 있고 이유 있는 결혼식을 항해에 비유한다면, 두 사람이 탄 배를 각각 밧줄로 결합하여 미래의 바다로 출항하는 것으로 표현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각각의 배가 뭍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채 운항해왔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더 큰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미래의 바다를 항해하려고 할 것이다. 낯설고 먼 미래의 바닷길을 항해하려면, 한 배보다는 두 배로 가는 것이 더 좋다. 더욱이 배가 크고 성능이 좋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겠지만 말이다.
낯설고 먼 바닷길을 나서는 데는 준비할 것도 많다. 그렇다고 해서 처음부터 필요한 것들을 모두 챙길 수는 없는 법이다. 길의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 배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노와 돛, 배를 정박할 때 사용하는 닻, 그리고 기본적인 생활도구 등 생존에 필요한 것부터 우선 확인해야 한다.
앞으로 항해과정에서 일어날 모든 상황을 예측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떨 때는 강풍이 몰아쳐 돛이 찢어질 수도 있으며, 갑자기 파도가 덮쳐서 배 안이 온통 물난리를 겪을 수도 있다. 나침반이 고장이 나서 바닷길에서 헤맬 수도 있으며, 배가 노후 되어 선체나 갑판에 균열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판단해야 할 일이 많다. 바닷길에서 이상현상이 생긴다면, 오직 두 사람이 지혜를 모아 해결해야 한다. 더욱이 주위에 다른 배가 없을 경우엔 더욱 그렇다. 두 사람이 처음부터 각자의 역할을 분담하겠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공동대응을 해도 힘에 부칠 때가 많을 것이다.
두 배를 묶는 밧줄의 강도가 높다면, 바닷길은 좀더 안전할 것이다. 밧줄의 강도는 두 사람이 얼마나 서로 신뢰하고 사랑에 충만하냐에 따라서 좌우된다. 살다 보면 사랑의 밧줄이 가끔씩 느슨해질 때도 있다. 느슨해졌다고 해서 배에 걸쳐놓은 밧줄을 풀어서는 서로에게 더 위험한 국면을 초래할 수도 있다.
낯설고 먼 바다를 항해하다 보면, 만성적인 피로가 쌓이고 앞날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하기도 한다. 또한 항해하고있는 바다의 환경영향에 따라서 서로의 생각이 다를 때도 있다. 한 사람은 이렇게 한 사람은 저렇게 판단하여 논란이 생길 때도 있다. 그럴 때일수록 서로 자제심과 인내심이 요구된다.
항상 항해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되새겨봐야 한다. 항해를 하는데 무리하게 속력을 낼 필요는 없다. 속력을 내면 원하는 목적지에 빨리 도착할 수는 있겠지만, 항해의 의미가 희석될 수도 있고 항해의 가치에 손상을 입을 수도 있다. 앞으로 나아가되, 서둘지 말고 여유를 잃지않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가다가 이 섬 저 섬에 정박하여, 그간 바닷길에서는 보기 어려운 경치도 구경하고 먹지 못했던 음식도 맛보면서, 항해에서 쌓인 피로도 풀어야 할 것이다. 다시 출항할 때를 대비해 몸과 마음을 충전할 시간도 필요하며, 또한 섬을 뒤져서 필요한 양식도 구하고, 배의 상태를 점검 보수하는 일도 필요하다.
낯설고 먼 바닷길을 항해하려면, 항상 상대의 인격을 존중하고, 그때그때의 상황을 함께 슬기롭게 헤쳐나가면서, 진정한 하나가 되어야 한다. 겉으로는 서로의 배에 밧줄을 묶어 결합을 하였으나, 각자 항해조건을 내세우거나 마음속으로 특정한 한도를 설정한다면, 진정한 하나가 될 수는 없는 법이다.
흔히들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말한다. 그러나 결혼만 했다고 일심동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삶에 충실하고 정직하여, 상대에게 믿음을 주어야 신뢰하게 되는 법이다. 자신의 주장만 강하게 밀어 부치거나 자존심을 너무 내세워서는, 상대에게 믿음을 주기는커녕 두 사람간의 불화만 돋구게 된다.
부부라 해도 서로간에 신뢰를 쌓지 못하면, 진정한 하나가 될 수가 없다. 낯설고 먼 바닷길을 항해하는 의미도 가치도 모두 잃어버리게 된다. 또한 표면적으론 두 배가 같은 방향으로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바닷길을 항해하는 동안 늘 외롭고 우울해지면서, 불안한 마음을 떨쳐버리지 못할 것이다.
인생의 바닷길에서는, 목적지를 찾는 것보다 찾아가는 과정 그 자체가 더욱 중요하다. 목적지란 본래부터 정해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함께 동행하는 것이, 어차피 헤쳐가야 할 바닷길을 항해하는데 외롭지도 않을 뿐더러, 서로에게 도움이 되면서 행복도 배가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곧 결혼이다.
( 2009. 10. 박순원 글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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