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모 신문에 난 책소개컬럼에서 스크랩한 기사입니다.
'회사생활에 대한 위험한 착각'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아래는 책의 뒷표지 소개글이다.
능력만으로 승진하는 것은 20대까지다.
열심히 일만 잘 하면 된다고 믿는 것은 여자들만의 착각이다.
회사 생활에 대처하는 남녀의 차이, 그 차이가 조직에서의 생존을 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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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문제는, 경기의 규칙을 모르는 여자들 자신에게 있다.
20대, 직장에 들어와 처음 몇 년은 여자들이 뛰어난 업무능력을 인정받아 승진한다. 하지만 30대가 되면
이런 상승곡선 태반이 종지부를 찍게 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자기보다 능력도 떨어지는 남자직원이
윗자리를 먼저 차지하는 일이 생긴다. 결국 문제는, "실력만 있으면 됐지 뭐가 더 필요하단 말이야?'라는
여자들의 위험한 착각이 문제를 초래하는 것이다. 회사생활은 능력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경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는 팻 하임이라고 하는 미국의 남녀조직관계 연구 컨설턴트이다. 미국 사회의 회사생활에 대한 조언인데 군대중심, 위계질서 중심이라고 하는 오늘의 대한민국 회사생활과 별 차이가 없다. 이 책에서 저자가 하는 것과 거의 똑같은 충고를 얼마전 부서장에게서 들었다. 미국, 대한민국 뿐만 아니라 남자 중심의 비즈니스 문화가 존재하는 세계 어느 나라에 가나 별반 차이가 없다는 얘기이다.
팻 하임은 미국 남자들이 야구, 미식축구 등에서 자연스럽게 배우는 경기장과 게임의 규칙이 회사생활이라는 경기의 지배적인 규칙이라고 말한다. 반면 여자들은 소꼽놀이에서 배우는 관계의 규칙으로 회사 생활을 하기에 일정 직급까지 오르면 남자들의 규칙이 지배하는 회사생활에 더이상 적응할 수 없다고 말한다.
남자들이 운동경기를 통해 배우는 규칙은, (우리나라의 경우 덧붙이자면 군대 생활을 통해 강화되는 것은)
시합은 게임이다, 사람들이 좋아해주는 것보다 존경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승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반칙과 파울은 승리를 위해 용납할 수 있다, 팀 멤버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일 필요는 없다, 인간성이 안 좋아도 팀이 승리하는데 필요한 사람이면 된다, 모든 답을 알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모든 답을 아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가능하다, 권력을 얻었으면 그걸 활용해야지, 안 그랬다간 고스란히 잃고 만다, 가장 윗자리에 오르는 방법은 단 하나,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다, 감독에게 확실한 충성심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 다음 경기에 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조직은 위계서열에 의해 유지된다, 공격적으로 경쟁하는 사람이 강한 사람으로 여겨져 리더 자리를 차지한다, 리더는 딱 한 명 뿐이며, 그 사람 말은 힘을 지닌다. - p20
반면, 여자들이 소꼽놀이를 통해 배우는 것은,
리더같은 것은 없다, 협상을 통해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경쟁과 갈등은 원만한 인간관계를 손상시키므로 무슨 일이 있어도 피해야 한다, 사람들에게서 호감을 얻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권력은 공평하게 나누어야 한다, 사람 사이에는 위아래가 따로 없다, 경쟁적인 아이들은 교활하고 공격적이고 거만해서 인기가 없다, 소꿉놀이에 승자는 없다, 오로지 과정만이 중요하다, 승리란 인간관계를 깨뜨리지 않고 완벽하게 일을 해내는 것을 의미한다, 착한 아이는 자랑하지 않는 법이다, 좋아하는 사람이 팀 동료가 되어야 한다, 싫어하는 사람과 한 팀이 되어 일할 수는 없다, 누군가 감독의 입장에서 우리의 놀이에 대해 평가를 내릴 필요는 없다, 자신의 약점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조화로운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최우선의 과제다. - p21
이책을 읽어 가면서 지난 17년간 회사생활을 하며 은근히 내가 힘들게 느껴왔던 것들, 특히 30대 후반이 되면서 더욱 첨예하게 느껴지던 경쟁의 규칙들, 그리고 작년 5월 이직을 하면서 맞닥드린 철저한 남성중심 회사 문화의 이런 저런 일면들이 전체적인 맥락을 가지고 이해되기 시작한다.
우리나라 사회에서 '최진사댁 세째딸'은 어느 집안에 데리고 가도 고분 고분 말 잘 듣고 순응하며 주변과 조화로운 관계를 이끌어내는 여성들의 전형으로 여겨져 왔다. 최진사댁 세째딸의 정서를 많든 적든, 어느 정도 가진 많은 직장 여성들이 자신의 실력을, 일에 대한 전심전력을, 그리고 뛰어난 조직 융화력을 인정받아 팀장 자리에 오르는 순간, 이제 남자들과 동등한 경쟁선상에서 피라미드의 정점으로 올라가는 전투에 투입되는 것이다.
팻 하임은 이제 이 때부터는 남자들의 규칙을 얼마나 이해하고 그 문화에 적응해가느냐에 따라 다음 단계의 승진이 결정된다고 한다. 윗사람에게 절대적인 충성심을 보여야 하고, 부당함에 대해서도 항명하지 말 것이며, 리더에 대한 권위를 존중하고, 남의 것을 뺏어올 줄 아는 경쟁심을 갖추고, 아래 사람의 공과도 내 것으로 이용할 줄 아는 뻔뻔함을 갖추고, 싫은 사람도 내 사람으로 품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팻 하임은 회사 조직 생활에서 살아남을 것을 염두에 두고 충고하고 있다. 이것이 현실이니 회사에서 살아남고 싶은 여자들은 이 규칙을 이제 받아들이고 현명하게 처신하라는 것이다.
사실 이 시점에서 여자들은 퇴직과 이직을 고민한다. 이런 조직 사회에서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절로 고민이 된다. 이런 부당한 게임의 규칙을 받아들이고 내가 이 조직에서 살아 남는다고 할지라도 도대체 내게 뭐가 남는 것일까? 이 원칙들은 자녀교육, 엄마로서의 원칙과도 상충된다. 여자들이 가진 화합과 조화, 모성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다.
위계 질서와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조직에서 끝까지 버텨 조직에 여성 리더십의 새로운 형질전환을 가져오고자 하든, 자신에게 적합한 새로운 조직으로의 이직을 선택해 새로운 뿌리를 내리려고 하든, 자신의 능력과 창의성으로 새롭게 일구어나갈 수 있는 일인 창업의 길을 가든, 아이들과 이웃을 위해 사랑을 실천하는 전업주부의 길을 택하든 모두 쉽지 않은 선택이다.
하지만 시대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 권력 중심, 위계 질서 중심이 아닌 조화와 협력 중심의 공동체들이 생겨나고 있고, 많은 이들이 새로운 시대의 패러다임을 만들기 위한 물 밑 작업들을 하고 있다. 사실 이제 변하지 않으면 인류가 향할 곳은 파괴와 종말 밖에 없다는 묵시록적인 인식을 누구나 가지고 있다. 남북이 첨예하게 군사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더 날카롭게 갈등과 분쟁의 칼날을 느낄 수가 있다.
힘에 대한 사랑(Love of Power)이 지배적인 이 세계를 사랑의 힘(Power of Love)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 많은 여성들이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자녀 교육과 자신에 대한 사랑을 키워간다면 여자들의 룰이 세상을 지배할 날도 올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미래를 위해 내가 해야할 일을 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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