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한 동네에 사는 고등학교 동기가 직장암에 걸려 수술을 했고, 한 친구는 부부간의 신뢰에 문제가 생겨 거의 이혼의 상황에 몰려 있다. 이런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마다 '나는 누구인가?'라고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묻게 된다.
나의 삶이 나의 자아실현을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할 때 가정이나 사회적 역할에 따라 나의 정체성이 결정되지만, 그런 정체성이 나와 동일할까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정체성은 나와 다른 사람을 구분하는 하나의 기준, 즉 다른 사람이 나를 기억하는 나의 인간적인 특징이다.
우리의 성격은 본래부터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자라면서 환경적인 영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텔레비젼 프로그램을 보면 부모의 정체성이 아이들의 성장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 알 수 있다.
출근하지 않는 휴가가 길어지거나 은퇴 후 집에만 있게 되면 나에게 내 자신이 부자연스럽듯이 나의 공적인 역할을 빼면 나와 뗄래야 떼어낼 수도 없는 나 자신이 나에게도 아주 낯설게 느껴진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텔레비젼의 오디션 프로그램이나 퀴즈 프로그램들에서 보면 지원자들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아니 모습, 즉 주최측에서 요구하는, 어쩌면 자신의 모습이 될 수 없는 모습들도 보여주려 애쓴다.
지원자가 지금 보여 주어야할 모습이 평소 생각하던 자신의 정체성과 맞지 않으면 미련없이 버리고 주최자들이 요구하는 또 다른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 행동하는 것이다.
'행복하고 성공적인 나만의 세상살이'라는 공개 쇼에서 일인자가 되기 위해서 지원자인 내가 벌이고 있는 시합은 결승선을 알고 있는 마라톤 대회도 아니며, 해답을 아는 퀴즈 프로그램은 더더욱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나도 내가 어떤 행동 모습을 보여 주어야할 지를 모르는 오디션의 한 지원자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다중 정체성의 세상에서 이정표가 될 수 있는 것이 친구다. 친구는 나 자신은 아니면서 나와 거의 다를 바가 없는 사람으로 나의 일부를 대변하지만, 누구도 나와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친하면서도 가끔씩은 이해가 되지 않고 낯설게도 느껴지고, 한 동안 만나지 않고도 그냥 덤덤히 지낼 수도 있는 이유다.
살아가면서 나에게 익숙하지 않고 어색하거나 낯선 모든 것은 정상적이 아니라 생각하며, 이를 나는 정상이라는 증거로 받아들인다. 내가 누구인지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비정상은 아니라고 확신하면서 나와 일치하지 않는 것은 모두 비정상이라 판단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나 자신과 일치하는 것을 찾는데 너무 몰두하고 있기 때문에 비정상적인 것을 겪을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고, 그만큼 나 자신에게는 비정상적인 일이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어제까지 건강했는데, 오늘 신체검사에서 암이 발견되었다거나 어제까지 괜찮았는데 오늘 갑자기 이혼해야 된다고 생각해보자. 이런 예측하지 못한 모든 상황이 모두 나에게 적대적이 된다.
건강국의 국민이 질병국으로 망명을 가있다고 생각하면 어서 빨리 질병문제가 해결되어 다시 건강국으로 귀국할 수 있게 되길 고대하게 된다. 질병국에서는 자신이 외계인처럼 느껴지고, 평소 익숙하던 자신과의 일치 또한 불가능한 자신에게마저 낯선 존재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가 나 자신을 안다는 것은 나 자신과 진정한 친구가 된다는 의미 뿐만 아니라 낯선 것을 반갑게 맞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평소에도 한번씩 지금까지 내가 정상적이라고 생각했던 공적인 역할에서 벗어나 질병에 걸리거나 부부간의 심리적 갈등관계, 혹은 친하지 않았던 옛 친구들과의 만남 등 관점의 변화를 가져오는 경험을 상상하며 나의 정체성을 계속 찾으려 노력해야 한다.
나의 정체성이 과연 이름(이동윤), 역할(의사), 그리고 개념(건강)으로 표현이 가능할까 의문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때문에 나 자신을 잘 모른다는 사실에서 출발하면 비정상적인 것이나 낯선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런 과정을 통해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더 잘 이해하게 된다.
지인의 글 가져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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