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노 데 싼티아고 ( Camino de Santiago: 산티아고 순례길)
작년 10월 말경, 매주 등산을 같이 다니는 등산친구 경영학과 장정익군과 또 한 명, 그리고 과거 직장 선후배 다섯, 이렇게 여덟 명이 ABC(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 4050m) 11박12일 트래킹을 떠날 때처럼 이번에도 또 그렇게 오랜 계획도 없이 다소 즉흥적일 정도로 빠른 결정으로 정익이와 나는 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하기로 한 것이 지난 5월 말경이다.(Camino de Santiago: 산티아고 가는 길, 산티아고 순례길)
기왕 가기로 결정한 이상 정익이와 나는 가장 빠른 시일 내 가는데 의견 일치. 그래서 잡은 날짜가 9월21일 서울 출발, 23일 까미노 데 프랑스 루터인 프랑스 생장 피트 포르에서 출발, 31일째인 10월23일 산티아고 도착, 24일 산티아고 데 깜포스텔라성당에서 정오 미사 참석, 25일 피스테라로 출발, 27일 서울에 도착함으로써 모든 일정을 종료한다는 계획을 세워 출발. 장장 40일이나 걸리는 여정이다. 마침 김훈 작가님이 자전거로 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한다기에 더욱 기대감과 호기심이 배가되었다.
파리공항 도착 1박 후 몽파르나스에서 바욘까지 떼제베로, 나머지는 열차로. 그리고 생장 피드 포르에서 까미노 증명서인 끄레덴시알을 받고 까미노 순례 첫발로써 피레네산맥을 넘기 시작했다.
명색이 그래도 인문학을 전공한 국문학도인데 까미노를 하는 명제는 있어야 하지 않겠나 해서 출발 전 등산 친구들에게 톨스토이의 인생론에서 도용한(?) 첫째 나는 누구인가, 둘째 나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 셋째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까미노 여행 중에 나름대로 생각하겠다고 공언을 하다 보니 실제 답을 이번 기회에 찾아 보겠다고 마음을 먹게 된다.
풍광 좋은 피레네산맥(1500m)의 산등선 26km를 넘으면서 시작된 까미노(원래 길이란 스페인 말인데 산티아고 순례 여행길을 이렇게 부른다)는 첫날 순례자 모두를 지치게 만들면서 과연 까미노를 끝까지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으로 잠을 설치게 하며 모두를 긴장 속으로 몰아넣는다.
비교적 어르신 나이(?)인 우리 둘에게 출발 전부터 무리하지 말고 가능한 한 천천히 걸으라는 충고를 정중히 접수한 우리는 체력을 아끼기 위해 오후 2시 전후에는 가능한 숙소인 알베르게에 도착한다는 암묵적임 원칙을 세우니 자연 새벽 출발의 방식을 택하게 되고, 오후 2시 이후 스페인 태양 빛은 생각 보담 훨씬 강렬하다는 사실을 이틀만에 쉽게 알게 된다.
그래서 새벽 6시반 전 출발, 오후 2시 도착. 도착 후 재빨리 샤워, 빨래, 저녁먹거리 및 다음날 아침 준비, 동네 산책 그리고 새벽 출발을 위한 동네 빠져 나가는 길 사전 답사 후 휴식이 기본 일정이 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아는가?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며 걷고 또 걷고 하는데 그 생각은 3일이 지나지 않아 발가락, 발바닥, 발 뒤꿈치에 물집이 생겨나고 어깻죽지가 아파오기 시작함으로써 새까맣게 사라지고 오직 통증을 피하기에 바빠 머리가 하얗게 변하기 시작한다. 어떻게 걷고 어떤 자세면 아프지 않을까?
그래도 생각을 해야지 하면서 찡그린 모습으로 걷고 또 걷고….
그렇게 자주는 아니지만 감사라는 말을 일상적으로 써왔지만 이제는 정말로 무엇이 감사이고 어떻게 감사해야 하며 또한 누구에게 감사해야 하는지를 조금씩 느끼게 된 것은 까미노를 시작한지 그렇게 많은 날이 필요하지 않게 된다. 또한 무엇이 작은 일인지도..
몸 한쪽에 느껴지는 통증이 부분적으로 사라지면 또 다른 부위의 고통이 찾아 들고 이렇게 돌아가면서 나타나는 육체적 고통은 마침내는 내가 아무리 그 고통을 피하려고 몸부림 쳐보아야 까미노 기간 동안은 어쩔 수 없다는 사실에, 그래 모든 고통과 통증들은 모두 다 내 까미노 친구가 아닌가?
까미노 친구들인 발가락, 발 바닥, 발 뒤꿈치 물집, 왼쪽 어깻죽지 통증, 발목이 부어 오르고 그리고 빈대들이 달라붙어 물어서 일어나는 끊임없는 가려움증과 같이 더불어 가야겠다.
대명천지 21세기 선진국이라는 스페인에서 빈대가 가당한 일인가?
이렇게 떨어지지 않고 악착같이 붙어 있겠다면 ..
나는 알게 된다, 최고의 욕이 ”야 이 빈대 같은 놈아” 라고..
어느 날 가려움증을 도저히 참지 못해 옷을 모두 벗고 근육통에 바르는 “맨소래담’을 온 몸에 바른다. 독한 냄새면 빈대가 붙지 않으리라. 모두들 자고 있기 때문에 소리 소음 없이 빡빡 문지른다.
그런데 내 위쪽에 자던 Brian이라는 영국 친구가 30여분 뒤에 킹킹 콧소리를 내면서 뒤척이는 것이 영락없이 잠이 깬 것이다. 난 그 친구가 잠을 깬 것을 안다 그리고 왜 깼는지도.
새벽에 출발할 때 그 친구 왈, 한참 자고 있는데 코끝이 매워오기 시작하더니 점점 심해서 도저히 잠을 잘 수 없는 상태라 내용은 잘 모르겠으나 아래 침대 쪽에서 자기가 처음 맡아보는 맵고 고약한 냄새가 끊임없이 올라왔지만 모두가 자고 있으니 말도 못하고 참았노라고. 며칠을 같이 걸은 후 내가 그 사실을 이야기 한다.
다소 욕심 내어 꾸린 배낭이 점점 무게 감을 느끼게 된다. 이제는 버릴 것만 생각하게 하는 시간들이 점점 늘어가고.
하여 긴 바지 하나, 미숫가루, 빨래집게, 비상 약 일부, 쌈장 일부, 비누, 휴지, 안내 책자의 지나온 마을들의 페이지, 생수도 반으로 줄이고 버릴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버리니 가벼움과 생각의 단순함이 좋다.
아하 버리니까 이렇게 좋네.
서울가면 구두, 옷, 소지품부터 정리해야지..
한결 가벼운 느낌 - 사실 어떤 걸 버리고 언제 버려야 하는 생각으로 시간을 보냈었기에..
걷고 또 걷고 그러면 눈에 보이는 물건만 버릴 것이 아니라 머리 속에 들어 있는 오래되고 쌓인 것들도- 나쁜 느낌, 섭섭한 감정, 분노, 시기심, 지나친 욕심 – 버리면 머리 속이 가벼워 지지 않을까?
그래 지금부터 머리 속에 있는 것도 버릴 수 있는 것은 모두 버리자 ..
짐과 머리가 가벼워 지니 걷기가 늘어나면서 마음껏 원 없이 하루를 걸으면 지금 상태의 몸은 어떤 반응을 나타낼까?
마침 명지대 다닌다는 최철연 학생이 우리보다 2일 뒤인 9월25일 생장 피드 포르 출발이었는데 지금 내 옆에서 나와 같이 걸으니 그는 여기까지 나보다 이틀을 단축한 것이다. 매일 38 - 45km를 걸어오고 있단다.
그래 기왕 걷는 것 후회 없이 걸어 보자. 이후 33, 35km씩을 며칠 걷고 또 41km도 걸어보고..
동행인 정익이와 10월30일 마드리드공항에서 만나기로 하고 각자 걷고 싶은 대로 걷기로 하며 따로 헤어져 걷는다. 각자 걷는 속도와 체력의 차이로 둘이 동행하여 이렇게 20여일 이상을 같이 다니는 것도 사실 쉽지가 않단다.
이제 혼자가 되니 허전하기도 하지만 홀가분하여 마음껏 걸어보기로 하고 걷고 걷고 또 걷고 하여 산티아고 입성 날은 43km를 20분 휴식- 15분 빵 점심 5분 물 마심-으로 하고 9시간 30분을 그냥 걸었다.
걷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어렵게만 느껴지지 않은 사실에 그 동안 꾸준하게 등산하고 양평별장에서 삽질하고 헬스에서 체력단련 등의 효과려니 하니 뿌듯한 마음이 가득하다.
산티아고 꼼포스텔라 성당에서 정오 미사에 참석, 이제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감격과 감사의 마음으로 먼저 나에게, 가족, 친구 그리고 나를 아는 모든 사람에게 기도 기도 기도를 드렸다. 감사하다고.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내가 어떻게 여기서 예수님의 몸 한 조각을 받아 먹으며, 6명이라야 움직일 수 있다는 거대한 향로가 그네처럼 좌우로 흔들리고 뿜어 나오는 향 연기에 어찌 취할 수 있으리라.
성당 안 정면에 안치된 산티아고(성 야고보)상 어깨를 뒤에서( 순례객이 잡을 수 있도록 뒷 통로가 있음)두 팔로 두르며 감사 드리고, 쉬고 있다는 은빛 무덤관을 바라보면서 감격과 감사의 마음을 나타낸다.
1차 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깜포스텔라 800km 를 걷기 29일째, 예정보다 이틀 일찍 도착한 나는 다음 날 미사를 보고 다행히도 이튿날 도착한 정익이와 반갑게 재회하고 우리는 다시 피스테라 90km 묵시아 30km를 향해 출발한다.
갈리시아지방 특유의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내렸다 개였다 반복하길 하더니 오후에는 폭우와 강한 바람과 거센 빗줄기로 앞으로 나아가기도 힘이 든다. “태양을 찬미하되 비 옷은 빠뜨리지 마라”는 갈리시아 격언을 되새기게 한다.
뮤니시펄(공공단체나 지자체가 운영하는 알베르게)에 비교적 일찍 도착한 나는 늦게 도착한 순례자들이 침대가 없어 소파, 탕비실, 계단밑 및 사무실 바닥에 종이를 깔고 침낭 속에 자는 모습을 보게 된다.
왜 이 고생을 하는 것인가?
까미노 데 산티아고가 무엇인가?
이 날 천둥 번개를 동반한 폭우로 인하여 알베르게를 나설 수 없어 저녁과 다음 날 아침은 영락없이 굶게 생겼다. 빗속에서 알베르게를 찾아 헤맬 때, 마침 이틀을 같이 걸은 이태리 친구를 반갑게 만나 알베르게 위치와 이 빗속에 가는 길을 물으니 이 알베르게엔 식당도 먹을 것도 없어 저녁 먹거리 사러 간다기에 혹시나 하며 그럼 나에게 빠겟트 하나, 치즈 그리고 초리소를 부탁했는데 이 친구 거기다 와인 한 병까지. 그리고 돈도 받지 않는다.
저녁 굶을 다른 두 까미노 친구와 나누어 먹고.
아 이것이 까미노이구나 새삼 느끼게 된다.
알베르게 정보가 부족한 나와 같은 순례자는 먼저 뮤니시펄을 찾게 되는데 안내 팜프렛이나 주민들이 알고 있기도 하지만 사실 뮤니시펄은 5유로이고 사설은 10유로인 것이 큰 이유다. 어차피 하루만 묵고 가는데 만일 35일 일정이라면 이 차이도 큰 돈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순례자들은 뮤니시펄 알베르게에 묵기로 하나 그나마 선착순이라 경쟁이 따른다.
20여일 동안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곤 하는 까미노 친구- Kate & Tomas 헝거리 부부는 우리를 위해 먼저 도착하면 알베르게를 잡고 우리가 오기를 기다리며 길 앞에서 서성이다 반갑게 만나고는 서두른다. 줄줄이 순례자들이 오고 있으니.
여기서도 친구를 위해 줄서기와 선점 예약이 예외 없이 있다.
그 부부는 같이 걸었던 미국 신부님으로부터 “까미노 순례란 무엇인가”라는 글을 받았는데 마침 한국어로 번역된 것도 있어서 우리를 위해 일부러 받아서 나중 나에게 전달 해준다. 이것이 까미노 친구다.
비교적 평소 꿈을 잘 꾸지 않은 나는 이번 까미노에서 지난 6월 세상을 떠나신 어머님이 세 번이나 나타나셨다. 한번은 뚜렷하게 집을 손수 고치시는 모습에 그 동안 꿈속에서나마 보고 싶었었는데 참으로 보게 되어 눈물이 날 정도로 너무나 기쁘다.
아침에 다소 개인 비는 곧 소나기성으로, 천둥 번개를 동반한 폭우로 그리고는 또 오후 잠시 햇살이 비치는 종 잡을 수 없는 날씨 속에 걷고 걷고, 또 걷고.
그런데 골똘한 생각 속에서, 더구나 까미노 동행 없이 빗속을 혼자서 걷는 순례자에게 일어나는 불상사가 나에게도 어김없이 찾아 온다. 길을 놓친 것이다.
잠깐의 방심- 나는 엉뚱한 길을 한 40분 이상 걷고 이어서 좌우로 갈라지는 갈림길 가리비 표시석(아주 오래된 흐릿한,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듯)은 있는데 노랑 화살표 표시가 없다.
망망한 심정, 아뿔싸 비 속에 혼자 오는 것이 아닌데, 회한스런 자책감, 한참이나 망설이다가 가리비 표석이 있는 쪽으로 다시 20여분 내려오는데..
아! 어머님이 나타나시다.
저 멀리서 한 순례자가 걸어오고 있다. 바르셀로나에서 온 Mar라는 중년 여인이다. 반갑게 동행이 되어 걷는데 그 길은 이미 조금 전 내가 지나온 길이다.
다시 30분 후 그 갈림길 조금 앞에서 나는 자신 있게 다시 잘못된 길로 가는데..
왜? 이미 가리비 표시 돌을 봤고 이젠 그 반대 방향으로 꽤 가파른 언덕으로만 가면 된다고 생각했기에..
그런데 그 갈림길 가기 얼마 전 조그만 갈림길에서 잡초에 가린 오리지날 가리비 표시석과 노란 화살표를 찾아낸 것이다. 만일 이 때 내가 Mar를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가파른 언덕 길을 넘어 엉뚱한 길로 해서 엉뚱한 마을에 가서 손짓과 발짓으로 더듬었을 것이다.
그 후 서너 차례 주요한 시점에 할머니가 나타나시고, 아주머니와 안개 짙은 이른 새벽 길 갈림길에서 한 중년으로부터도 길 안내를 받는다. 한참 지난 후 나는 그 분들은 틀림없이 어머님이 보내신 분들이라 확신하게 된다.
2차 목적지 피스테라(일명 피니스테레) - 순례자 대부분이 산티아고에서 돌아가고 약 20% 정도만 피스테라로 가나 그 중 많은 사람들은 버스로 가기도 한다.
빗속과 햇살 속을 헤치며 걷는 특유의 갈리시아 날씨를 즐기면서(?) 파올로/포르투갈, 질/영국, 울리커/독일 그리고 나/꼬레아 우리 일행 4명은 아름다운 항구 마을 쎄에를 거처 피스테라에 도착한다.
길의 끝이자 “까미노 데 산티아고”의 진정한 끝.
한 때 로마인들이 세상의 끝이라 믿었던 곳, 바로 그 해안가 등대 앞 십자가 밑에서 우리 각자가 태울 것을 모아 태운다(Burning이라는 까미노 마무리 행사).
나는 베스트를, 파울로와 질은 티-셧츠, 울리커는 반바지를..,
한 때는 신고 온 신발들을 태웠다고 하는데 아마도 까미노 전 과정에서 신발들이 거의 헤진 상태였으리라.
그 등대 옆 끝자락인 십자가 앞에서 나는 홀로 망망한 대서양을 바라 보면서 이제 등짐을 내리고 까미노를 끝내는 홀가분함과 마음의 짐들인 나에게 남아 있었던 모든 분노, 시기심, 서운함과 아울러 아쉬움 등을 나름대로 모두 떨쳐버리고 걸어왔다는 데 대한 감격스럽고 뿌듯한 마음.
‘강신길 너 대견하고 장하다’ 스스로 칭찬한다.
이제 또 다른 욕심 하나 – 정익이와 헤어질 때 그는 나머지 시간을 피스테라와 묵시아에서 보내기로 하고 29일 산티아고에서 마드리드로, 나는 마드리드와 세고비아 관광을 위해 27일 마드리드로 가기로 했는데 오늘 25일 피스테라에 왔다 그러면 하루 여유 있다.
오늘 올베이오라에서 피스테라로 오는 내내 내일 묵시아를 혼자 어떻게 갈까라는 문제에만 집중이 되어 생각하는데 결론은 나 혼자이면 이 빗속으로 갈수 없고 일행 중 한 명이라도 동행하면 간다.
내일 울리커, 파올로, 질에게 묵시아로 가자고 설득 하는 이야기 끝에 파올로가 동의하고 나중 질과 울리커도 동의하나 둘은 날씨에 따라 내일 아닌 모레도 갈수 있단다. 어쨌던 파올로와 나는 날씨에 관계없이 내일 묵시아로 간다로 결정하고 나니 걸음걸이가 한결 가벼워진다.
피스테라에서 30km 떨어진 외진 항구 마을 묵시아, 대부분 순례자들이 잘 모르는 곳 그러나 진정 “까미노 데 싼티아고”의 마침표를 찍는 곳, 또 가장 예쁜 순례자 증서를 주는 곳.
소위 까미노 증서들, 산티아고-피스테라-묵시아의 3개의 완결판.
비는 나의 바램과 관계없이 이른 새벽부터 억수로 쏟아지니 나와 파올로는 서로 말없이 쳐다본다. 아마 서로 가지 말자고 말하기만 기다린 듯.. 파올로는 신발도 바지도 방수가 아닌 것이고 배낭 카바와 상의 자켓만 방수 처리된 것이다. 그것을 알고 있는 나는 섣불리 가자고 먼저 말은 못한다. 옆방의 질과 울리커의 움직임을 기다렸으나 기척도 없다.
나의 단호한 결심과 말로 우린 빗속을 출발한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후 우린 길을 잃고 그때 그때 서로 협의와 느낌으로 가곤 하고 한참 후 우리는 산속으로 빨려가고 있다. 까미노는 노란 화살표인데 우리는 초록색 화살표를 따라 가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어머님이 나타나신 듯 정신 없이 넋 놓고 빗속을 걷는 우리에게-그 때도 초록색 화살표를 따라- 비바람 속에서 덧문을 열어 재치고 한 할머니가 무어라 무어라 하시면서 소리 지르는 것을 파올로가 듣고 다가가기에 나는 여기 초록 화살표가 있고 춥고 배고프고 기운도 없으니 빨리 가자고 특유의 한국인 조급증을 나타낸다.
아! 초록 화살표는 산악 오토바이 순례자 코스란다. 그나마 파올로가 포르투갈 사람이기에 그 할머니 말을 다소 나마 알아 들었지 나머지 사람들에겐..
지나온 길을 30여분 더 가서 마을을 찾아야 이제 묵시아 길의 반 정도라나. 우린 묵시아 가까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우린 상당 시간을 산속에서 헤맨 것이다. 오 하나님!
6시간 반 거리를 우리는 거의 10시간을 빗속과 산속에서 보내면서 마지막 해안가를 돌아 묵시아가 보일 때, 누가 먼저란 할 것 없이 부둥켜 안고 눈시울을 붉혔다. We done.
아름다운 항구 마을 묵시아!!!
까미노 순례자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한 곳.
걷기 33일 920km.
33일 걸은 중 31일은 크거나 작은 육체적 고통을 끊임없이 체험한 나는 육체적 고통이 정신적 의지력 보담 앞에 있고 건전한 정신을 가지려면 건강한 육체가 우선임을 깨닫는다.
이제 나는 모든 이들의 성원으로 무사히 까미노를 마친 것을 모두에게 감사 감사드린다.
특히 동행인 정익이에게-종가집 장손답게 많이 참아준 데 대하여 감사한다. 정익아 고맙다.
까미노 데 산티아고 -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 한 분이신 성 야고보(산티아고/스페인 이름)님이 2000여년전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걸어셨던 그 길을 나도 걸은 것이다.
이제 까미노 출발 3가지 화두에 답 할 때인 것 같다.
첫째, 나는 누구인가?
잘 모르겠다 아직은. 그러나 비교적 소박하고 건실한 보수주의자다.
둘째, 나는 무엇을 아는가?
아는 것만 알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 그러나 좀 더 알고 알 땐 확실히 알아야 한다.
셋째,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1. 작은 일에도 감사하며 살겠다.
나는 무엇이 감사고 무엇이 작은 일인지는 확실히 안다.
2. 버리면서 살겠다.
버리면 가볍다는 사실을 다시 안다. 배낭 속이나 머리 속이나.
3. ‘Echo’적으로 살겠다.
부르면 대답한다. 그 누구에게도.
이제 33일 걷는 동안 느낀 “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시 형식을 빌려 정리하고자 한다.
까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
생각하며 생각하며 생각하며 걷는 까미노 데 산티아고
생각하며 생각하며 걷는 까미노 데 산티아고
생각하며 걷는 까미노 데 산티아고
. .
말하며 말하며 걷는 까미노 데 산티아고
말하며 걷는 까미노 데 산티아고
마냥 그냥 걷는 까미노 데 산티아고
Buen Camino!
Oct. 13, 2011 엘 아세보 알베르게에서
Paul Kang
이 글 읽어 준 모든 분들께 감사 드린다
서울에서 강 신 길
고교 후배로부터 받은 메일 내용 옮겨 놓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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