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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 관향조 諱 인 할아버지/고려사

 

우리  진천 송인 시조님에 대한 고려사 기록을 찾아 보았습니다.

아쉽게도 내용이 상당히 짧네요.

 

고려사 반역 열전  이자겸의 기사에 나오는데요.

이자겸이 반란 시절,

이자겸의 사돈 척준경에 체포되어 전사했다는 내용 입니다. 

 

 

해설판

새벽녘에 왕은 장차 불길이 닥쳐오겠으므로 나가서 이자겸과 회견코자 승선(承宣) 김향(金珦)을 보내서 남궁(南宮)으로 나가겠다고 청했다. 그리고 왕은 경령전(景靈殿)까지 도보로 가서 내시 백사청(白思淸)을 시켜 역대 조상의 화상을 궁성 안 제석원(帝釋院)에 있는 마른 우물 안에 넣게 한 후 서화문(西華門)을 나가 말을 타고 연덕궁(延德宮)까지 갔다. 그때 오탁이 앞에서 길 인도를 하였는데 척준경이 낭장 장성(張成)을 시켜 칼을 뽑아 들고 행렬에 뛰어들어 오탁을 잡아 죽이게 하였다. 또 좌복야(左僕射) 홍관(洪灌)도 죽이고 병사를 파견하여 최탁, 권수, 고석, 이작, 안보린, 송행충, 대장군 윤성(尹成), 한경(韓景) 장군 박영(朴英), 송인(宋仁), 사유정(史惟挺), 오정신(吳挺臣), 한경(漢卿), 낭장 이유(李儒), 내시 최잠(崔箴), 원외랑 박원실(朴元實) 등을 체포해다가 모두 다 죽였다. 그 외 군사들의 죽은 수효는 계산하지 못할 만큼 많았다.

 

 

원문

▣ 有洪立功者將軍劉漢卿下中郞將也資謙以漢卿入內卽以立功爲借將軍帥兵聽俊京指揮俊京使立功領卒六十餘人擔柴至都省南路立功密語卒曰 我與若等皆王臣也而負薪燒宮非臣子之義 遂釋擔從宣義門竇入見羅拜王驚問 爾爲誰 立功前自陳王甚悅賜酒食自是宿衛不離 黎明王以火焰將逼欲出會資謙遣承宣金珦請出御南宮王步至景靈殿命內侍白思淸奉祖宗眞納諸內帝釋院眢井中乃出西華門乘馬至延德宮吳卓導前俊京使郞將張成拔劒突入執卓斬之又殺左僕射洪灌分遣人執崔卓秀碩作甫麟幸忠大將軍尹成韓景將軍朴英宋仁史惟挺吳挺臣漢卿郞將李儒內侍崔箴員外郞朴元實等皆殺之其餘軍士死者不可勝計 內侍奉御王觀大將軍尹先郞將丁寵珍別將張成好從王在南宮資謙請出之再三王不得已從之使人請勿殺之甫皆殺之 資謙又與俊京議亂作日直宿者無貴賤皆殺之壽執不可乃止 將軍李祿千金旦金彦逃免後彦自出流南裔 是日宮禁焚蕩惟山呼賞春賞花三亭及內帝釋院廊廡數十閒僅存百官狼狽奔散 資謙殺祿延及吳卓子子升碩弟甫俊流粲于遠地沒祿延粲妻子爲奴婢粲後改安.

 

<고려사 제127권  열전 제40권 반역 이자겸>

 

 

저는 이 당시 송인 시조님이  중랑장 인줄 알았으나,

고려사 기록을 보니 장군 이었습니다

 

그리고, 해설문을 보면

송씨 가문 중 이자겸 반란으로 전사하신 분이...

우리 송인 시조님 이외  송행충님 이라는 분도 있습니다.

 

그럼 앞에서 말한  송유인님은  송행충님의 아들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고려사 간신 열전에 나오는 송유인...

그는 인종 시절에 그의 부친이 사직을 지키다 몸을 잃었고, 그로인해 산원에 음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요.

 

고려사 해설문을 읽어보니,

이자겸의 난 시절에 송인 시조님 이외에 송행충 이라는 분도 전사자 명단에 있는 것을 확인 했습니다.

    

 

원문에는  崔卓 (최탁) 秀(수) 碩(석) 作(작) 甫麟(보린) 幸忠(행충)으로만 나오는데

위 이름은 성씨를 생략하고 기록한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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