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 제102권 - 열전 제15 > 송언기
해설문
송언기는 진주(鎭州) 사람이다. 그의 부친 송순(恂)은 예절을 잘 아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벼슬이 중서시랑(中書侍郞) 평장사에 이르렀다. 그가 퇴직한 후에도 나라의 어떤 예식이 있을 때는 모두 그에게 문의하였었다. 송언기는 젊어서부터 글을 잘하기로 동배간에 유명하였다. 고종 때에 과거에 급제하고 금주(金州)원으로 나가서 정사에 청렴하고 공평하며 옥사를 명찰하게 판결하여 협잡배와 토호(姦豪)들이 자취를 감추었다. 성적이 우수하다 하여 도병마 녹사(都兵馬錄事)로 등용하였다가 얼마 지난 후에 감찰어사(監察御史)로 되어 우창(右倉)을 감리하였다. 그때 마침 흉년이 들어서 창고의 쌀을 팔게 되었는데 사겠다고 찾아와서 간청하는 사람이 많았다. 송언기는 공적 입장에서 공평하게 고루 나누어 주니 그때 사람들이 “현명한 어사”라고 칭송하였다. 어느 때 몽고 기병 2백여 기(騎)가 수달피를 잡는다는 구실로 가주(嘉), 삭주(朔), 구주(龜), 태주(泰)에 침입하였는데 속마음은 약탈을 목적으로 하였다. 송언기가 기병 몇 사람을 데리고 가서 타일렀더니 몽고병이 이내 물러갔다. 이때로부터 네 차례나 몽고에 사신 가서 강화를 체결하여 7년 동안은 국경(邊境)이 비교적 평온하였다. 그 후 벼슬이 여러 번 올라 판 장작감(判將作監)에 이르렀다. 33년에 왕이 다시 그를 강화 사절로 보내려 할 무렵에 송언기가 병으로 인하여 가지 못하게 되니 재상들이 서로 근심하기를 “송(宋)이 살면 국가의 복이요 송이 죽으면 국가의 걱정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죽었는데 나이 43세였다.
원문
▣ 宋彦琦.
○ 宋彦琦鎭州人父恂以知禮聞官至中書侍郞平章事雖在懸車凡國典禮皆就咨焉 彦琦少能文有名儕輩閒高宗時登第出倅金州政廉平能斷事姦豪歛迹以最徵爲都兵馬錄事稍遷監察御史監右倉 時歲凶告糴請謁者多彦琦一以公分與甚均時稱賢御史 蒙古兵二百餘騎聲言捕獺直入嘉朔龜泰四州之境實欲剽掠彦琦率數騎往諭之蒙古兵乃退自是四使蒙古講和七年 之閒邊境稍安 累官至判將作監事三十三年 王欲復使講和適彦琦遘疾宰相相謂曰 宋之生國之福宋之亡國之憂也 卒年四十三.
송언기 조부는 벼슬이 감찰어사 이고,
부친은 고려 평장사를 지낸 시랑공 諱 순 이고,
시랑공은 시조 할아버지의 독남 원겸의 장남 이시다.
따라서 어사공 언기는 진천백 시조님의 장손이다.
그런데, 슬하에 자손이 없어 대가 끊겼고,
대장군을 지낸 아우 언상 조부도 슬하에 자손이 없다.
참 아쉬운 일이다...
고려사에 보면 위 세분에 대한 칭찬이 아주 많습니다.
[출처] 어사공 諱 언기 (고려사 충신열전) (진천송씨대동종친회) |작성자 홈메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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