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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삼선생님메일음악.문학향기

이웃이 없는 당신

이웃이 없는 당신

이웃이 없는 당신 지난 11월 7일, 입주민의 폭언을 견디지 못해 분신을 시도했다가 숨진 이만수씨 이야기는 최근에 일어난 어떤 사건보다 나를 더욱 분노케 했다. 아무리 세상이 요지경이라고 하지만 사람의 탈을 쓰고서 그런 일을 했다는 것이 생각할수록 피가 거꾸로 솟구치게 했다. 평소 끈질기게 이씨에게 모욕감을 안겨주었던 할머니는 유가족들에게 사과하러 왔다고 하지만 이미 죽은 아버지와 남편을 누가 대신하겠는가. 어느 입주민은 노제 때 조차 "150만원이나 줬으면 됐지, 시키는 일도 제대로 못하면서 무슨 모멸감이냐." 유족들에게 차갑게 말하고 들어갔다고 한다. 11월 11일, 빼빼로 데이라는 그 날에 입주민에게 들은 유일한 말이 “헛소리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애통한 이씨의 죽음을 위로하며 손잡아주는 입주민은 한 사람도 없었고, 다만 마지막까지 유족들의 마음을 무참히 짓밟는 비수 꽃은 말만이 무성한 날이었다. 남편이 일했던 곳, 아빠가 일했던 곳, 스스로 몸에 시너를 끼얹고 죽음을 선택했던 장소를 처음 눈으로 확인하고 있던 참에 그런 말을 들어야했던 가족들의 마음을 그들은 조금이라도 헤아리지 못했다는 것이 좁은 땅에 살면서도 이방인같은 그들을 보며 새삼스럽게 삶이 허무하게만 느껴졌다. 50평대 그 아파트는 보통 20억을 호가하는데 입주민 대부분 사장님 급이 되어서 그런지 경비원쯤은 평소 사람으로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죽은들 무슨 애도할 마음이 있었겠는가. 다만 분신 사고 이후 실추된 이미지로 인해 아파트 가격이 떨어질까 전전긍긍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인류역사상 가장 오래되었고 가장 악한 불평등한 일이 인도의 카스트 제도라고 하는데, 21세기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그 카스트 제도 보다 더 불공평한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 충격 자체였다. 소위 스스로 인간내신 1등급이라 여기는 그들은 경비원쯤이야 그림자만 스쳐도 부정하다고 여겼던 인도의 불가촉천민과 다를 바가 없기에 잘잘못을 떠나 사람이 죽었음에도 인간내신 9등급 같이 접대하는 갑중의 갑인 그들을 통해 우리는 이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동료들은 한결같이 이씨의 극단적인 선택은 진상 입주민으로 정평이 나 있는 한 사모님의 인격모독적인 모욕에 의한 것이라 주장했다. 그녀는 평소에도 폭언을 일삼았고, 떡이나 과자를 던져주며 먹으라는 등 모멸감을 주었다고 한다. 그 할머니는 왜 경비원에게 그런 모멸감을 줌으로 죽음까지 이르게 했을까. 모멸감은 결핍과 공허를 채우려는 낮은 자존감에서 출발하면서 오히려 타인에게 모멸감을 줌으로 헛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려는 자기사랑에 대한 부족과 타인과의 사회적 신뢰 결여에서 오는 잘못된 자아확립 방법이기에 더욱 어이가 없다. 불란서의 어느 정치학자는 20c가 이데올로기 시대라면 21c는 정체성의 시대라고 했는데, 안타깝게도 글로벌 미디어를 통해 사람들은 정체감이 더욱 불안정해지고 감정이 동요되면서 이런 초딩 같은 수준의 일들이 생각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우리 안에 ‘마귀할멈’은 얼마든지 존재하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갑과 을의 관계에서 을과 병의 관계에서 진상 인간은 우리 곁에서 끊임없이 자신과 이웃을 괴롭히고 있다. 아니 그것보다도 보여 지는 부와 사회적 지위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는 세상에서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못한 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멸시하듯 대하는 심성들이 이미 사회적 관성으로 고착화 되었다는 현실이 우리를 더욱 슬프게 만들고 있다. 모멸감을 주는 1등 공신은 역시나 언어폭력에 있다. 어느 아파트 경비원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불안전한 고용 조건 속에서 대부분 언어적 폭력을 경험했지만 항의는커녕 냉가슴 앓듯 가슴에 쌓아 두다가 엉뚱한 곳에서 터트리고 있었다. 인간은 언어적 존재이기에 처음 보는 이라도 언어를 통해 상대를 가름해 볼 수 있다. 건강한 사람일수록 진실하고 화평의 말을 하고 병적인 사람일수록 거짓과 분리의 말이 쏟아져 나온다. 언어의 진리는 타인에게 하는 말은 자기에게 하는 말이라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혐오하기에 남을 함부로 대하고 이미 자존감이 무너진 사람은 누구라도 필요 이상의 감정을 퍼 붓는다. 그러므로 사람의 능력은 외적인 기준이 아니라 언어의 사용에 있기에 말 한 마디가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생겨났는데 어리석은 그 할머니는 말 한 마디로 한 가정을 무너지게 만들었다. ‘할머니도 외로워서 그랬을 겁니다.’ 어느 지인은 할머니 대변인처럼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고인의 심적 고통을 생각하면 그런 이해보다는 왜 이런 사람이 많아질까 하는 의아심 속의 두려움이 앞섰다. 생전에 이씨는 할머니로 인해 얼마나 심적인 고통을 당했는지 분신 뒤 잠시 깨어났을 때 첫 마디가 ‘마귀할멈’이었다. 좋은 환경에 있든 열악한 처지에 있든지 상관없이 분명한 것은 갈수록 이와 유사한 인간들은 늘어만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외적인 부(富)도 축복이지만 타고한 심성은 더 큰 축복이라는 것을 이번 일을 통해 또 한 번 깨닫게 되었다. 나이 들수록 옳은 것도 중요하지만 까칠한 것은 더 나쁜 짓이다. 젊었을 때 까달스러운 것은 매력일 수도 있지만 나이 들어서 그런 짓은 노망과 다를 바가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은 죽음을 준비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인이 되면 그렇지 않아도 젊은이들이 함께하길 꺼리는데 심성까지 까칠하면 노후는 더더욱 외로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람은 연금만 갖고 사는 것이 아니다. 좋은 이웃은 넉넉한 노후 자금과 비할 수 없는 하늘의 보고와도 같은 것이다. 지옥은 이웃이 없는 사람의 몫이다. 그들은 늘 바이블에 나오는 잔인한 부자처럼 뒤 늦은 회개를 한다. 지금 행복하자. 지금 이웃과 더불어 살자. 지금 사과하자. 지금 하늘을 준비하자. 그래야만 잠에서 깨어나 눈을 뜰 때마다 개운함이 찾아오고 하루가 행복하고 내일이 행복하고 영원히 행복한 인생으로 살아갈 수 있다. 설령 갑작스럽게 죽음이 찾아와도 두려워하지 않고 기쁨으로 긴 여정을 출발할 수 있다. 주여, 있든 없는 지속적으로 누군가에게 모멸감을 받을 때 우린 견디지 못하고 일을 냅니다. 이제 생각해 보니 주님은 지금도 잘난 우리들 때문에 여전히 무시와 능욕을 당함에도 한 마디 안하시고 그저 바라만 보시며 기다리십니다. 이제 모욕감과 수치심 대신에 당신이 웃을 수 있도록 제발 헤아리는 자로 살아가게 하소서... 2014년 11월 13일 강릉에서 피러한(한억만) 드립니다.
◆봉사후원(10월9일메일안내)◆기업127-025342-03-018(한억만)안내(010-2718-0192)
사진허락작가ꁾ우기자님, 포남님, 이요셉님
^경포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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