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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글

아다지오 소스테누토

 

11122015

 

아다지오 소스테누토

 

아다지오소스테누토3.박무형 형글06062016.hwp

 

박무형

FM 라디오에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이 흘러나온다. 2악장 아다지오 소스테누토’. 고요한 강물처럼, 어쩌면 달빛에 너울거리듯 의연히 흐르는 저 곡조는 무엇인가? 1악장과 사뭇 다르다.

뒤이어 제3악장. 내 귀는 물 만난 고기처럼 반색을 한다. 귀에 익은 피아노 음률이 화사한 현악과 어우러져 힘차고 웅장하게 펼쳐진다. 이 피아노협주곡 전 악장을 제대로 감상한 적이 있었던가. 대충 귀에 들리는 대로 1, 3악장 부분만 즐겨 들었던 모양이다.

문득 오늘 문인회 회원 댁 혼사에 가야 한다는 생각이 난다. 방안 가득 울려 퍼지는 3악장을 다 듣지 못하고 외출을 서둔다. 결혼식은 오후 한 시.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역 앞이라 적혀 있다. 낯설고 먼 곳이다. 분당은 성남 쪽이라 2호선 잠실역에서 성남 가는 노선으로 바꿔 타고 가면 될 터. 두 시간은 잡아야 될 것 같다.

아파트 단지에서 신도림역까지 가서 2호선으로 갈아탄다. 객실 안은 그렇게 붐비지 않아 빈에 가 앉았다. 얼마 있자 지하철 안은 붐비기 시작한다. 강남역에서 승객이 많이도 내린다. 승강장에 인파가 급류에 떠밀리듯 몰려가고, 또 숨 가쁘게 몰려든다. 계단을 급히 내려온 승객들이 문이 닫힐세라 황급히 뛰어들기도 한다. 왜 이리도 바쁘게들 설쳐대는지. 외국인이 보는 눈이 아니라도 우리 사회가 어느새 빨리빨리문화에 젖어 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은근과 끈기라는 우리의 그 이미지는 어디로 간 걸일까.

아침에 들었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제2악장>이 들린다. ‘아다지오 소스테누토()을 느리게 한음 한음 깊이 눌러서연주하라는 작곡자의 지시기호이다. 그것은 내게, 세상사를 서둘지 말고 확실하게 차근차근히 하라는 뜻으로 비친다. 이따금 늦장을 부리다가 나중에 덤벙대기를 잘하는 나. 어떤 일에 뜬금없이 조급증을 낼 때도 잦다. 어떤 행사나 모임 날짜를 잘못 알고 갔다가 허탕을 쳤던 일도 더러 있었고, 하나만 알고 둘을 다 아는 것처럼 속단하고 떠벌렸다가 무안을 당했던 일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바로 이런, 대충하거나 서두르는 폐단이 오늘 나에게서 또 터진 것이다. 잠실역에서 8호선으로 갈아타고 가는 도중 노선을 잘못 타고 엄청 우회(迂廻)하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2호선 강남역에서 바로 신분당선으로 갈아탔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벌써 식장에 도착했을 것을. 예식장의 위치 약도와 노선도를 차근히 살폈더라면 이런 착오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늦은 것 같다. 택시를 타고 가기에도 무리다. 그런 황망 중에서도 그 주변 노선도를 자세히 살펴본다. 가까운 복정역에서 분당선으로 환승을 하고, 여덟 정거장만 더 가면 도착지 정자동역이 있지 않은가?

드디어 정자동역 앞 <오페라 하우스>라는 예식장에 다다른다. 다행히 결혼식은 파하지 않았다. 막바지 축가 연주가 한창 진행 중이다. 오페라 하우스라는 그 이름답게 새파란 무명테너가 유명 오페라 아리아를 기량을 힘껏 뽐내며 부르고 있다. 늦게나마 혼주와 인사도 나누고, 친지들과 뒤늦은 오찬도 함께 나눈다.

집으로 돌아오는데, 나에겐 친숙하지 않았던 신분당선 지하철은 그렇게 빠르고 편할 수가 없다. 집에 와서 작정하고 낡은 턴테이블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2>을 튼다. 1악장, 그 웅장하고 감미롭기도 한 격정을 뒤로하고 제2악장 아다지오 소스테누토를 유심히 들어 본다. 꿈꾸는 듯한 느린 음조가 마치 소리 없이 내리는 비처럼 촉촉이 젖어드는 분위기다. 그 음률 속에 서정성과 절제미가 일관되게 농축되어 흐르는 듯하여 내가 지향하는 글쓰기의 요체가 거기서 한 줄기 빛처럼 비치는 듯싶다. 좀 더 깊이 음미하고, 자주 감상해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이 곡은 라흐마니노프가 젊은 시절, 교향곡 1번이 혹평을 받자, 큰 충격을 받고 심한 우울증을 앓아, 평생 작곡을 하지 않겠다며 절망해 있을 때 어느 정신과 의사의 적극적인 상담치료를 받아 극적으로 재기에 성공한 작품이다. 그때의 슬픔과 응어리가 그대로 응축되어 듣는 사람에게 감정의 정화를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이 곡은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은 피아노 협주곡 5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오랜 절망 끝에 얻은 명곡. 나의 글쓰기에도 언젠가 그런 회심의 작품이 나타났으면 하고 희망해 본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제 2악장이 내 머릿속에서 가슴속으로 잔잔한 냇물이 되어 흐른다.

오늘 일과를 떠올려 본다. 낯선 예식장 가던 길, 그 과정을 음악회로 치면 아다지오 소스테누토로 해야 할 연주를 알레그로, 모데라토’(빨리, 빠르게)로 해서 망칠 법 했던 사단이 빚어진 것이다. 그래도 마지막 체념의 틈서리에서도 내 일과에 차선의 길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한순간의 차분한 여유였다는 사실이 번개처럼 머릿속을 스친다.

아다지오 소스테누토! 느리게 한음 한음 꾹꾹 눌러서 연주하기! 그 말은 어릴적 우리 할아버지께서 우리 아버지에게 노상 하시던 단디 해라는 그 말씀으로 각인되어, 새삼 나에게 매사에 신중하라는 강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단디 해라: 일을 찬찬히 야무지게 처리하라는 경상도 사투리.

주로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말할 때 쓴다.

 

 엣세이21에 게재하신 박무형 선배님의 글(06062016메일로 받음)을 옮겨 놓아본다.

 

음원:http://cafe.daum.net/alldongbek에서 가져옴.

 

황혼의 노래

 

김노현 작사 작곡 / Ten. 박인수

 

아지랑이 하늘거리고 진달래가 반기는 언덕
깨어진 꿈 추억을 안고 오늘 나는 찾았네

내 사랑아 그리운 너 종달새에 노래 싣고서
그대여 황혼의 노래 나는 너를 잊지 못 하리
마음 깊이 새겨진 사랑이 아롱지네
맑은 시내 봄 꿈을 안고 어린 싹은 눈을 비빌 때
그 옛날에 아른한 모습 내 맘에 새겨진다

 

내 사랑아 그리운 너 종달새에 노래 싣고서
그대여 황혼의 노래 나는 너를 잊지 못 하리
마음 깊이 새겨진 사랑이 아롱지네
맑은 시내 봄 꿈을 안고 어린 싹은 눈을 비빌 때
그 옛날에 아른한 모습 내 맘에 새겨진다

내 사랑아 그리운 너 종달새에 노래 싣고서

아다지오소스테누토3.박무형 형글06062016.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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