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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활의음악정원

괴테의 총애를 얻었던 부유한 소년의 이탈리아 여행, 멘델스존 교향곡 제4번 '이탈리안'

challea님의.. 괴테의 총애를 얻었던 부유한 소년의 이탈리아 여행, 멘델스존 교향곡 제4번 '이탈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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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델스존(Felix Mendelssohn) (1809~1847).

슈만의 모차르트이자 괴테의 총애를 얻었던 소년의 이름은 펠릭스 멘델스존

로베르트 슈만은 그를 ‘19세기의 모차르트’라고 말했습니다.


요한 볼프강 괴테는 이 소년을 정말로 좋아했고요. 문학의 거장인 괴테를 말할 것 같으면, 실은 이 작가는 작곡가 두려움증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비슷한 명성의 베토벤을 만났을 때 적잖이 놀랐었기 때문이죠. 베토벤이라는 사람에 걸맞지 않은 괴팍함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베토벤은 그 누구와도 쉽게 소통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만) 아무튼 그런 괴테는 후에 이 소년을 만난 뒤로는 음악에 대해 마음을 열 수 있었습니다. 



21살 멘델스존의 이탈리아 여행


“드디어 이탈리아에 도착했다! 내 삶의 가장 행복한 순간이 이제 시작됐고, 나는 이미 그 속에 푹 빠져들었다.” 


1830년 10월 10일, 멘델스존은 마침내 베네치아에 도착했다. 멘델스존은 티치아노의 그림을 맘껏 보았다. 특히 프라리 성당의 제단화인 <성모승천>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옛 거장의 그림은 젊은 멘델스존의 마음속에 음악으로 메아리쳤다. 산마르코 광장, 통곡의 다리, 가면 축제…. <이탈리아> 교향곡의 첫 악장 알레그로 비바체(빠르고 생기있게)는 이탈리아에 도착한 행복감과 설렘으로 가득하다.

   
▲ 베네치아 프라리 성당에 있는 티치아노의 <성모 승천>
  
 

그는 피렌체로 발길을 돌렸다. 르네상스의 영광이 살아 숨쉬는 피렌체는 멘델스존의 눈에 푸른빛으로 보였다. 그림 실력이 뛰어났던 멘델스존은 이 도시의 풍경을 수채화에 담았다. “계곡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바라보았는데, 도시는 온통 푸른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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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델스존은 로마에서 겨울을 났다. 로마의 첫인상은 밝게 빛나는 달빛 같았다. 그는 그랜드 피아노가 있는 햇빛 잘 드는 아파트를 전세 낸 뒤 일과표대로 규칙적으로 지냈다. 정오까지는 작곡에 몰두했고, 오후에는 로마의 명소를 관람했고, 저녁때는 카페 그레코를 찾아 독일 출신 화가들과 어울렸다. 손님들을 위해 피아노를 연주해 주었고, 이탈리아의 예술가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 멘델스존이 그린 피렌체 풍경, 베키오 궁전과 두오모 성당이 보인다
 
 

유복했던 멘델스존의 여행은 모차르트의 그것과 달랐다. 직업을 구하거나 돈을 벌기 위한 여행이 아니라 인생의 견문을 넓히기 위한 관광 여행이었다. 이 21살 청년은 위대한 철학자 모세 멘델스존의 손자였고, 부유한 은행가 아브라함 멘델스존의 아들이었다. 그는 가난하고 비참한 사람들을 가까운 곳에서 본 게 난생 처음이었다. 카필라 성 밖에서 인간의 생로병사를 처음 목격한 고타마 싯다르타처럼 젊은 그는 마음이 아팠다.  

“수많은 거지들이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고, 마차가 도착하자마자 구름떼처럼 몰려드는 모습에 나는 가슴이 미어지는 듯한 고통을 맛보았다.”

이탈리아는 지저분하고, 벼룩이 들끓고, 바가지 상혼이 극성이었다. 그는 소매치기 당하지 않으려고 늘 조심해야 했고, 이탈리아 말로 얘기해서 외국인이 아닌 체 했다. “역겨운 사기꾼들을 어디서나 만날 수 있었으며, 그들의 속임수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장사꾼들이 접근하면 그 물건을 안 산다고 대답해야 했다.” 나폴리에서는 종교 행렬을 목격했다. 슬픔에 잠겨서 행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멘델스존은 다른 사람들의 삶이 자신의 어린 시절처럼 달콤하고 행복하지만은 않다는 걸 깨달아야 했다.

멘델스존은 여느 젊은이와 마찬가지로 낯선 곳에 대한 환상과 동경을 안고 여행을 떠났다. 1830년 5월 베를린 출발, 바이마르에서 괴테를 만났다. 일찌기 어린 멘델스존의 재능을 찬탄했던 괴테는 40여년 전 자기가 보고 느낀 이탈리아 얘기를 해 주었을 것이다.  

멘델스존은 이탈리아로 가는 길에 음악의 수도 빈과 모차르트의 고향 잘츠부르크에 들렀는데, 뼈아픈 실망을 느껴야 했다. 그 곳 사람들은 요한 슈트라우스와 요젭 라너의 왈츠에 열광하고 있었을 뿐,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의 위대한 음악혼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이 없었다. 음악의 성지에 사는 사람들이 이토록 통속적일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그러나 멘델스존은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때까지 순진하게 품고 있었던 인간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했다.  

찬란한 르네상스의 중심, 바로크 음악의 위대한 거장들을 낳은 이탈리아는 좀 다를까? 마찬가지였다! 멘델스존이 고전음악을 찬미하면 사람들은 경멸하거나 웃어버렸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고전음악에 대해 무지했고, 음악가들을 존중할 줄 몰랐다. 오케스트라는 선율을 제대로 연주하지 않았고, 합창단의 화음은 엉망이었다. 사람들은 르네상스의 유산인 베키오 궁전의 바닥에 침을 뱉었고, 값을 매길 수 없는 예술품에 자기 이름을 새겨 넣으려고 연필과 칼을 들이댔다.  

“사람들은 종교가 있지만 그것을 믿지 않고, 교황과 정부를 가졌지만 그것들을 조롱하고, 찬란한 역사를 가졌지만 거기에 아무 관심도 없습니다.”

   
 
  
 

그가 로마에 머물 때 교황 비오 8세가 죽었는데, 교황의 죽음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행동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충격이었다. “장례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사람들이 은근히 즐거워하는 모습은 나를 몹시 불쾌하게 했다. 교황의 시신 주변에 사제들이 둘러서서 끊임없이 귓속말을 주고받으며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의 영혼을 위로하는 미사가 진행되는 동안 밖에서는 관에 못질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탈리아 여행은 21살 멘델스존을 조금 더 성숙시켰다. 그는 평범한 이탈리아 사람들의 맨얼굴을 보고 실망했지만, 그만큼 실제의 인간을 이해하게 되었다. 카프리섬의 아름다운 바다에서 위안을 맛보았고, 무엇보다 로마, 피렌체, 베네치아의 위대한 문화유산에서 예술적 자극을 받았다.  

“로마의 과거는 내게 역사 그 자체로 다가왔다. 로마 시대의 유적은 내게 많은 예술적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수천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도 후세에게 용기와 힘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그 무엇을 이룩해 낼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매우 흡족했다.” 

그의 <이탈리아> 교향곡은 이 여행에서 얻은 인간적 성숙의 기록이다. 경건한 D단조로 된 2악장 ‘순례자의 행진’은 나폴리에서 본 종교 행렬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우아한 3악장 콘 모토 모데라토(평온하게, 보통 빠르기)에 이어지는 4악장 프레스토 (아주 빠르게)는 이탈리아의 전통 무용인 살타렐로다. 격렬한 크레센도로 끝나는 이 피날레는 이탈리아의 태양과 열정에 바치는 오마쥬라고 할 수 있다. 로마에 머물 때 착수한 이 교향곡은 만 2년이 걸려 완성했고, 1833년 5월 13일 런던에서 초연했다.

[All the Above quoted by Anonymous-20170707challea5913]


Mendelssohn: Symphony No. 4, "Italian" - Orkest van het Oosten - Live concert HD


Het Orkest van het Oosten o.l.v. Jan Willem de Vriend speelt 'Symfonie nr. 4, 'Italiaanse'' van Mendelssohn

tijdens de opening van seizoen 2016 - 2017 van Het Zondagochtend Concert.

Opname: Het Zondagochtend Concert van 4 september 2016, in het Concertgebouw te Amsterd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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