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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활의음악정원

바그너가 아내에게 바쳤던 사랑의 세레나데, 지그프리트 목가

challea님의.. 바그너가 아내에게 바쳤던 사랑의 세레나데, 지그프리트 목가


바그너가 아내에게 바쳤던 사랑의 세레나데, 지그프리트 목가


사실은 지그프리트 목가라는 제목은 후일에 붙여진 곡 이름이고 원래 제목은 트리브첸의 목가였다.

트리브첸 (Tribschen)은 스위스 루체른 근교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참고로 루체른은 스위스 취리히에서 서쪽으로 기차를 타고 한 시간정도 가면 나오는 인구 37만 정도의 평범한 도시이고, 매년 여름에 열리는 루체른 페스티벌로도 음악 팬들 사이에는 매우 유명하다. 이 페스티벌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쓰도록 하겠다. 스위스에는 산과 호수가 많고 스위스 대부분의 도시들은 호수와 산 사이에 있는 작은 평지에 위치해 있다. 루체른도, 트리브첸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런 이유로 땅이 무지 좁고 농사짓기에는 정말 안 좋지만 경관 하나는 최고이다.



위의 사진은 루체른 근처에 있는 필라투스 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찍은 사진이다. 실제로 가서 봐도 진짜 한 폭의 그림같다. 특히 저기 있는 호수에서 산을 바라보면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독일 출신의 바그너가 어쩌다가 스위스 산골짜기에 살게 되었는지에 대한 사연을 쓰자면 꽤 길다. 1864년에 극성 바그너 빠였던 루트비히 2세가 바이에른 왕으로 즉위하자 그는 바그너를 뮌헨으로 불러들여서 바그너의 빚도 다 청산해주고 연주회 후원도 잘 해 주어서 뮌헨에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뮌헨에서 대형 스캔들이 터지고 말았다. 바그너가 당시 가장 잘 나가던 지휘자인 한스 폰 뷜로(Hans von Bülow)의 아내 코지마 리스트(아버지가 작곡가 프란츠 리스트이고 그녀 역시 사생아이다)가 바그너의 사생아를 출산해 버린 것이다. 덕분에 바그너에 대한 바이에른의 여론이 적대적으로 돼 버리고 게다가 루트비히 왕의 신하들 역시 바그너가 그저 세금이나 축내서 자신의 배를 채우려고 한다 해서 적대적으로 돼 버리자 할 수 없이 루트비히 왕은 바그너를 스위스의 트리브첸으로 유배를 보내버렸다. 원래 루트비히 왕은 바그너를 따라 같이 스위스로 가서 살려 했다고도 전해지지만 바그너가 만류해서 그냥 뮌헨에 남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20200128challea5913]


  그 후에도 코지마는 계속 바그너와 바람을 펴서 아이 둘을 더 낳았고 그제서야 남편 뷜로도 코지마를 놓아주었다. 그 사이에 바그너의 본부인도 사망하여 (뮌헨에서 코지마와 바람필 때 바그너 역시 유부남이었다) 결혼할 수 있는 처지가 되자 둘이 1870년에 결혼했다. 이렇게 파란만장하게 결혼한 것 치고는 이 둘의 결혼생활은 순탄했다. 그 뒤로 이 둘은 바람피지 않고 죽을 때까지 같이 살았으니 말이다. 더 웃긴 것은 아내를 뺐긴 한스 폰 뷜로가 별 불평이 없었다는 점인데 이후에도 뷜로와 바그너는 서로 친구로 지냈고 (라기보단 뷜로가 그 뒤에도 계속 바그너 팬 노릇을 계속 했다고 보는게 맞을지도...?) 뷜로가 계속 바그너 작품 초연을 해줬다는 점이다.

둘이 결혼한 첫 해 크리스마스 때 바그너는 아내를 위해서 깜짝 이벤트를 준비했다. 크리스마스날 아침에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와서 집 안 계단에서 이 곡을 연주한 것이다. 당시 이 곡의 제목은 
Tribschener Idyll mit Fidi-Vogelsang und Orange-Sonnenaufgang  (피디의 새소리와 오렌지 빛깔의 일출에 곁들인 트리브첸의 목가)로 전해진다. 루체른에서 진짜 일출을 보면서 듣는 이 곡이 어떤 느낌일지가 궁금해진다. 그것도 CD로 듣는 것이 아니라 당시 최고로 잘나가던 음악가들이 모여 라이브로 연주하는 것을 듣는 것이라면 말이다. 




원래 바그너는 이 곡 악보를 출판하지 않고 그냥 코지마와 자신 둘만의 곡으로 놔두려고 했었다. 그런데 빚쟁이들이 그를 가만 놔두지 않았다. 루트비히가 한번 빚을 갚아주긴 했지만 여전히 오페라 프로덕션 등으로 항상 돈을 날려먹으며 살다 보니 바그너의 빚은 항상 쌓여만 갔고 하는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이 악보의 출판권 역시 팔아야 했다. 이 곡이 출판되면서 곡의 상업성을 높이기 위해 곡 제목도 "지그프리트 목가"로 바뀌고 원래는 13명의 연주자를 위한 소편성 실내악이었지만 이 역시도 대형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으로 바뀌었다. 덕분에 바그너의 동화같던 이야기는 깨지고 말았지만 덕분에 우리도 그 세레나데를 즐기며 살 수 있게 되었고 바그너의 곡 중에 가장 사랑받는 곡이 되었다..[20200128challea5913]


바그너, 지그프리트 목가 / Wilhelm Furtwängler "Siegfried-Idyll" Wagner




Wilhelm Furtwängler "Siegfried-Idyll" Wagner


"Siegfried Idyll"
by Richard Wagner (1813-1883)
Orchestra Sinfonica di Torino della RAI
Wilhelm Furtwängler, conductor
Torino, 06.VI.1952llea5913 -


Wilhelm Richsard Wagner(1813~1883)

Siegfried IdyII, WWV103

 

 Siegfried IdyII, WWV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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