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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글

The Most Genuine Feeling/ 至情

The Most Genuine Feeling/ 至情
인간의 가장 깊고 순수한 감정은 무엇일까? 재미난 조크에는 웃음이 터져 나오고, 슬픈 일을 당하면 눈물이 솟아나온다. 우리는 인간에게 오욕칠정(五慾七情)이 있다고 배워왔으며 그렇게 의식하고 살아오고 있다. 온갖 섬세한 인간의 감성을 다 표현하기 어렵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깊고 순수한 사람의 감정을 무엇이라고 말하겠는가?

조선 시대로부터 우리 문사(文士)들에게 널리 알려진 송(宋)나라 때의 동파 소식(東坡 蘇軾)의 삼부자(三父子)를 삼소(三蘇)라면서 그들의 글을 즐겨 읽었다. 소철(蘇轍)이 그의 형 소동파(蘇東坡)가 감옥에 갇혔을 때 보낸 편지 글의 대목이다. “매우 급한 곤경에 처하면 하느님을 부르고, 몹시 아프고 고통스러우면 아버지 어머니를 부르는 것이 인간의 지극한 감정이다(困急而呼天, 疾痛而呼父母者 人之至情也).” 지극한 정(至情]이란 가장 순수한 감정(the most genuine feeling)이라고 영어로 번역한다. 위급할 때 ‘아들아!’ 하거나 자식의 이름을 부르는 경우도 있던가? 이슬람 신봉자는 ‘알라(Allah)!’ 불교도는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칠성신(七星神)을 믿으면 ‘아이고 칠성님!’ 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다른 생각의 여지가 없을 때, 죽음에 이를 것 같은 아주 다급한 상황이 갑자기 닥쳤을 때에 어떤 생각을 돌려볼 여유가 있겠는가? 심층에서 저절로 솟구쳐 오르는 밑바닥의 순전한 감정이 될 것이라는 전제(前提)가 거기 있으므로 순수하다는 것이다. 철학을 논하고 물리적 이치를 따지면서 종교의 호불호(好不好)를 역설하는 학자라도 당장 죽는 데에는 무슨 이론과 논변이 있을 수 있겠는가. “아이고, 맙소사(하느님)!” 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화닥닥 호랑이가 눈앞에 나타나면 “어매야!” “엄마야!” “아이고 아버지!” 그렇게 우리가 얼떨결에 부모를 소리쳐 부르지 않겠는가. 소철(蘇轍/ 1039-1112)의 지정(至情)이 그런 맥락일 것 같다. 그렇다면 인간의 본성이 하나님과 가깝고, 부모와 가장 가깝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세상에 가장 가까운 것이 부모인데, 죽음에는 하느님과 가깝다는 뜻이 된다. 인간의 순수한 감정은 하늘과 부모에게 밀착되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