愛育黎首/ 천자문 15째 구
“애육여수(愛育黎首)하고 신복융강(臣伏戎羌)이라.” 남북조시대 양무제(梁武帝)에게 바친 주흥사(周興嗣/ 470?-521)의 천자문 15째 구절이다. “백성[黎首]을 사랑하고 양육하면, 오랑캐[戎羌]들도 신하 되어 복종한다.” 다분히 화이(華夷) 사상의 동기가 깔려 있으니 옛날 그들의 세계관과 정치 철학이었을 테니까. 이를 감안하고 이를 이해해야 할 것 같다.
아시아인의 머리칼은 대개가 검은 까닭에 관(冠)을 쓰지 않은 일반 백성은 검수(黔首)나 여수(黎首)라 하였으니 검은 머리의 평민, 곧 백성을 그렇게 불렀다. 농경 사회의 농부는 들에서 일만 하느라 피부도 검고 머리도 검으며 생산의 수단이요 전쟁에 방패로 쓰이는 권력자의 백성은 검은 머리의 자원이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런 백성이라도 어루만져 사랑하고 잘 길러야 하는 것은 바로 그 백성이 곧 나라의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서경(書經 五子之歌)에 일찍이 그렇게 말했다. 애육의 이 사랑 애(愛)자를 풀어보면, 손톱 조(爫) 밑에 덮을 멱(冖)을 씌운 마음 심(心)에다가 천천히 걸을 쇠/치(夊)를 합쳐서 만든 글자이다. 마음을 덮어 싼 사람을 살살 긁어서 열도록 천천히 어루만진다는 뜻이 아닌가. 소나 말을 다룰 때도 천천히 조금씩 접근하고 살살 긁어주면 사람과 친해지게 되듯 백성의 사랑과 교육을 그렇게 하는 뜻이 될 것이다. 실로 백성을 아끼고 진정 사랑할 때에만 부국강병(富國强兵)의 나라가 되기에 일찍이 강조된 애육여수((愛育黎首))일 것이다.
신복융강(臣伏戎羌)에서, 융강은 서쪽의 오랑캐였으니 서쪽의 유목민족이었던 융족(戎族)과 강족(羌族)들은 신하가 되어 복종하게 된다는 표현이다. 곧 중국의 화이사상(華夷思想)이 여기도 나타난다. 소위 중화주의(中華主義)인데 고대에는 황하(黃河) 강변의 일부 지역인 중원(中原)의 사람이 지금의 중국의 중심이었으니, 그 아래 초(楚) 땅도, 서쪽의 진(秦)나라 땅도 실상은 오랑캐로 여겼다. 최초의 중국 대륙의 통일 국가인 진시황(秦始皇) 때 진(秦)나라도 오랑캐였으니 최초의 통일 국가도 오랑캐가 지배한 것이 아닌가. 산동성(山東省)과 동북 쪽을 동이(東夷), 서쪽을 서융(西戎), 북쪽을 북적(北狄), 남쪽은 남만(南蠻)이라 하여 사방이 다 오랑캐들로 둘러싸였던 옛날인데, 지금은 한족(漢族)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과거에는 서로 오랑캐였던 셈이다. 여기 융강(戎羌)도 그러하니, 자기 백성을 사랑하고 다독여 잘 기르면 그 덕(德)에 감복하여 주변의 오랑캐들도 스스로 신하가 되어서 복종하여 올 것이라는 말이다. 아마도 지금의 중국 공산당도 오래전 이 정치적 범주를 넘지 못하는 것 같으니 주변의 다른 나라를 오랑캐로 보고 복종 시켜 신하로 삼으려는 패권주의적 습성을 버리기 어려운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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