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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인문학CEO 토요편지 . 제843호


성장 인문학
CEO 토요편지 . 제8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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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節氣)는 봄인데
몸과 마음은 여전히 겨울, 
3월 초(初)와 중순(中旬)은 
마음과 실제 풍경 사이의 
간극이 가장 큰 시기이며
봄맞이 조바심은 커지고  
‘계절의 지체’가 나타나는
정체(停滯)구간이다. 

바깥 나들이가
그리 어렵지 않았던 시절에
흥겨운 탐매(探梅)를 위하여
섬진강 줄기의 
매화(梅花)마을을 찾아가면
언제 오나 했던 봄(春)이
화사하게 피어 있었다.

남도(南道)에서 시작되는 
꽃 소식은 서서히 북상해 
어느 순간 전국 방방곡곡을 
화려하게 물들일 것이다. 
꽃 소식의 주인공은 
단연코 梅花다.

퇴계(退溪) 이황(李滉)은
‘내 평생 즐겨함이 많지만 
매화(梅花)를 혹독하리만큼 
사랑한다.’고 했으며
너무나 좋아한 탓에
梅花를 '형(兄)'이라 불렀다.
그런 ‘梅兄’을 주제로 
100편의 시(詩)를 지었는데
그 중 ‘백미(白眉)’는 
梅花 분재(盆栽)와 나눈 
문답(問答)이라고 한다.
이에 동의(同意)하지 못하는
필자(筆者)의 생각은
'매화음(梅花吟)'이라는 
그림(畵) 같은 詩다.

소식(蘇軾)이 말했다.
“시중유화, 화중유시
(詩中有畵 畵中有詩)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

"밤기운 차가워라 
창을 기대 앉았더니

두둥실 밝은 달이 
매화가지에 오르누나.

수다스레 가는 바람 
불어오지 않더라도 

맑은 향기 저절로 
동산에 가득한 걸."

退溪의 梅兄께서  
이 詩를 읽을(讀) 수 있거나
노래(읊음)를 들을 수 있다면  
도대체 어떻게 반응을 할까? 
대춘(待春)의 기쁨이며 
探梅의 오묘함이다.

동천년로항장곡
(桐千年老恒藏曲),
오동은 천 년을 늙어도 
가락을 지니고,

매일생한불매향
(梅一生寒不賣香).
매화는 일생을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조선 중기의 학자 
신흠(申欽)의 ‘야언(野言)’에 
나온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梅花를 자신의 철학이자 
절대적인 존재로 대입시켰다. 
사대부의 梅花 사랑(愛)은
과(過)할 정도로 대단했다.

지조(志操)와 절개를 지키며 
산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조선 오백 년을 지킨 것은 
꼿꼿한 선비정신이었다.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오로지 정도(正道)로만 
반듯하게 가고자 했으며 
자신이 설령 불리할지라도 
현실의 잘잘못을 보고 
비판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가난해도 예의와 자존심만은 
버리지 않았던 선비들이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오동은 
천 년의 세월이 흘러도 
가락을 잃지 않고, 
매화는 
따뜻하기 위해 
향기를 팔지 않는다.“

詩를 읊으면서도
꽃대처럼 올라오는 
수 많은 부끄러움 때문에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지만,
詩를 되새김하면서
안위(安慰)를 위하여 
자존을 버리고 
자그마한 이해관계에 따라 
갈대처럼 흐느적거리며 
비굴한 아첨(阿諂)으로
타협하려 하지는 않았는지
스스로 자신을 생각해 볼 일이다.

퇴계 선생께서  
늘 곁에 두었던 신기독(愼其獨),
누가 보거나 안 보거나 
스스로 좌정하여 
허물된 행동을 하지 않는 
筆者였으면 좋겠다. 

독행불괴영
(獨行不愧影)
홀로 가면서 
자기 그림자에 대해서도
스스로 돌이켜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
독침불괴금
(獨寢不愧衾)
홀로 자면서
자기 이불에 대해서도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

향기를 팔지 않는 
꼿꼿한 梅花 앞에서
지나 온 삶이 심히 부끄러워 
희망고문이겠지만 
지금이라도 
도(道)를 깨우치는 데 
소홀함이 없고,
언제나 당당하게 
세상과 마주할 수 있는 
筆者였으면 참 좋겠다. 

의(義)가 아니면 
나서지 않으며, 
귀천(貴賤)을 가리지 않고 
예(禮)로서 대하고, 
말에는 신의가 있으며, 
오늘 비록 가난할지라도 
학문을 닦고 익히는 데 
주저하지 않는 
筆者의 모습이면 참 좋겠다.

梧桐은 가락을 담고 있고, 
梅花는 향기를 품고 있건만,
筆者는 과연 무엇으로
나를 꽃피울까?
아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