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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글

보는 눈의 차이

이 세상만물은 각기 그 고유한 특색을 가지고 있는 관계로 바라보는 눈의 차리에 따라서 좋게도, 또 나쁘게도, 이쁘게도,

추하게도 보이게 되어 있다.

 

이것을 나는 보는눈의 차이라고 항상 말하면서 이성계와 무학의 대화를 인용하곤 한다.

어느날 성계가 살이 디룩디룩찐 무학을 보고 있다가 문득 농으로 한마디 한다.

" 대사, 내 눈에는 대사가 꼭 살찐 돼지처럼 보이는구료"

 

이 말을 들은 무학이 화를 내기는 커녕 오히려 빙그레 웃으면서 답하기를

" 전하,  소승의 눈에는 전화가 부처님처럼 보입니다."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란 성계가 자세를 바로하면서 답하기를

" 아니, 나는 대사를 돼지라고 했는데, 어째서 대사는 나를 부처님이라고 하오"

 

무학이 답하기를

" 부처의 눈에는 부처만 보이고 돼지의 눈에는 돼지만 보이는 법이지요"

이쯤되면 누가 돼지고, 누가 부처인지가 확연해 진다.

졸지에 돼지가 된 성계가 할말을 잃고 웃었다는 일화가 전해온다.

 

모든 사물을 바라볼 때도 이와같다.

 

같은 사안과 사물을 두고

좋게, 이쁜눈으로 바라보면 그 흉과 허물까지도 좋게 이쁘게 보이는 법이고

(이게 바로 효빈이라는 고사성어로 나타났고 우리나라에서는 '마누라가 이쁘면 처갓집 솥단지까지 이쁘게 보인다'라는

속담으로 나타나고 있다),

나쁘게 싫고 미운 눈으로 바라보면 좋은 점과 이쁜점까지도 밉고 나쁘게 보이는 법이다.

 

때문에 우리는 사물을 아름다운 눈으로 좋게 보는 습관을 길려야만 한다.

 

강가의 물고기 조차도 너무나 아름다운 서시의 미모에 부끄러운 나머지 강바닥으로 가라앉아 숨어 버렸기에 浸魚라는 별명으로

불리웠던 중국의 사대미인 중 가장 傾國之色으로 결국 월나라를 망하게 했던 浸魚 西施는 평소에 배알이를 하는 지병이

있었기에 항상 배를 움켜잡으면서 얼굴을 찌푸리고 다녔다고 한다.

 

하지만 원체 미인이라 그 모습조차도 너무나 아름다웠기에

이웃에 있는 추한 궁녀가 그 모습을 흉내내니 너무나 못생겨서 주위 사람들이 죄다 피해다녔다고 한다.

그래서 생긴 고사성어가 바료 효빈이란 말이다.

 

사람들은 무턱대고 타인의 흉내를 내어서도 아니되겠고,

또한 사물을 아름답고도 이쁘게 보도록 하는 보배스러운 눈을 가져야만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