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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새끼 먹이 물고가다 만난 노숙새(수필) / 박유정

<수필>

                                                   새끼 먹이 물고가다 만난 노숙새

                                                                                                               박유정(수원대 겸임교수)

 

 외출했다가 집에 가려는데 휴대폰이 울린다. 화면을 들여다보니 귀여운 우리 딸의 번호다.

 "엄마? 어디야아~?

 "응, 나 지금 들어가는 길이야."

 "그럼 말이야, 엄마. 올 때 나 치킨 다리 하나만."

 흠. 혼자 공부하다 보니 출출했나 보다.

 "웅, 다른 건 없구?"

 "응, 얼른 오세요오~"

 닭다리를 기다린다는 것인지, 나를 기다린다는 것이지. 애교 섞인 "얼른 오라"는 말에 나는 발걸음을 더욱 빨리했다. 다행히 그 닭다리 파는 서양할배네 가게는 금방 찾았고, 나는 닭고기로 만든 햄버거랑 콜라랑 닭다리 두 개를 포장해서 들고 다시 열심히 집으로 걸었다. 머릿속에는 온통 우리 아이 생각밖에 없었다.

 마치 먹이를 찾아 물고 아기새에게 먹이러 부지런히 둥지로 돌아가는 어미새처럼 나는 열심히 날았다. 먹이를 보고 입을 쪽쪽 벌리며 서로 다투어 어미에게 먹이를 재촉하는 새끼 새들처럼 우리 아이도 맛있게 이 닭다리를 먹겠거니 싶어, 생각만해도 흐뭇하고 즐거웠다.

 저녁 무렵이 이미 지난 다음이라 동네 지하철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이리 구불 저리 구불 통로들을 지나, 이제 저 계단만 올라가면 우리 집이 나올 것이었다. 그런데 저기 저 앞에 아무도 없는 통로에 노숙자 한 사람 엎드려 있는 것이 보이지 않는가. 이런!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가는데 마음속으로 마구 생각이 뒤엉켰다.

 '저 사람, 저녁은 먹었었을까?' '먹을 걸 사먹는다면 뭘 먹을까?' '그보다는 그런 몰골로 식당에나 들어갈 수 있을까?''닭고기도 먹을 수 있을까?'

 그 순간 나는 그만 그 닭 봉지를 노숙자 앞에 놓고 말았다. 부스럭하는 비닐봉지 소리에 그 사람은 얼굴을 들고 "고맙습니다."라고 하였는데, 그 소리와 겹쳐서 내 눈앞에는 "엄마! 내 닭인데!" 하는 아이의 서운한 얼굴이 떠올랐다.

 '이 일을 어쩌나. 그냥 모른 척 통과할걸. 이 일을 어쩌나!'

 우리 집까지 가는 길에는 이제 그런 닭고기를 파는 집이 없었다. 나는 천생 빈손으로 집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조금 전의 흐뭇하고 신나던 마음과는 달리 나는 어떻게 이 '닭없는 엄마 손'을 설명해야 할지 난감하였다. 무슨 어미새가 새끼새 먹일 먹이를 물고 가다가 '노숙새'에게 주나. 그런 어미새가 어디 있나. 노숙새에겐 그냥 돈으로 줄 걸. 왜 그 닭을 놓았을까.

 그런 한편으로 돈으로 주었어도 그 노숙자는 닭튀김을 사러 가게에 들어설 수가 없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냥 지나쳤으면 내 마음이 편했을까? 아마 아이의 서운한 투정을 받는 것보다 더 오래 마음이 불편했을 것 같았다.

 고등학교 다닐 때에 체력장이라는 것이 있었다. 운동이라면 잘하는 것이 하나도 없는 나지만 그 체력장 종목 중 '오래 달리기'는 정말 지옥 같았다. 나는 늘 꼴찌였다. 드디어 진짜 체력장 시험날이 닥쳤다. 열 명이 출발점에 섰다. 두 번째 바퀴부터 아이들이 나를 지나쳐 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아이들이 하나하나 내 곁을 스쳐 지나가면서 나에게 외치는 것이었다. "유정아! 달려!" "달려!" 그 순간 감동으로 고등쳤던 내 심장 박동소리를 잊을 수 없다.

 쿵, 쿵. 발자극 소리인지, 내 심장 소리인지. 친구들의 고함 소리인지 분간이 안 가는 순간이 잠시 있었나 싶더니 갑자기 친구들의 환성이 들렸다. "야아아!" 세상에! 내가 800m를 제시간에 들어온 것이었다. 나는 죽을 것같이 힘이 들어 땅바닥에 털썩 한참을 누워 있었다. 퍼지는 몸 한가득 고마움이 밀려왔다. 그래... 평소 달리기 땐 매정해 보이던 급우들 마음속에 내가 있었댔구나. 모르는 척하였지만 마음은 눌 함께 하였댔구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 후에도 많은 어려운 순간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나는 잘 넘어올 수 있었다. 나는 그것이 그 순간 내 마음에 깊이 자리잡은 자신감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자신감. 누구인지는 몰라도 내가 힘들 때 마음만이라도 같이 하는 사람이 반드시 있다는 자신감. 그 자신감으로 나는 버텨낼 수 있었다.

 "딩동!"

 그 사이 나는 집에 도착하였고 아니나 다를까, 나의 빈손을 본 아이는 금세 서운한 얼굴을 보였다. 나는 얼굴을 보며 그 사이에 일어난 일들을, 그리고 내 마음에 일어난 일들을 그대로 설명하였다.

 "엄마도 순간 고민 많이 했어."

 그리고 한참이 지난 후, 아이와 함께 닭튀김을 사 들고 다시 그 지하철역을 지나게 되었다.

 아이가 눈득 말했다. "엄마, 노숙새가 있으면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또 주는 거지."

 나는 미리 걱정하는 아이가 기특해 웃음이 났다. 걱정이 된다면 이미 손은 비운 것일 테니 말이다. 조금씩 나누는 것을 배우기 시작하는 아이가 좋아서 나는 그 손을 꼭 잡았다. 그래... 비워도 된단다. 비운다는 건 그전에 찼다는 것이니 말이다.

출처 : 한국생활문학
글쓴이 : 최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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