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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글

좁은 나라, 좁은 땅, 좁은 마음 - 황매산, 감암산, 모산재를 다녀오면서

어제 황매산 철쭉제에 다녀왔다.

 

07 : 07 사당동 출발(7시 정각 출발예정이였지만 한 명이 늦게 도착해서 출발 지연)

11 : 00 합천군 가회면 대기리 도착

11 : 07 대기리 초입을 들머리로 삼아 등산 시작

12 : 07 감암산(828m) 도착

14 : 30 철쭉군락지를 지나 베틀봉(946.3m) 도착

16 : 00 모산재(767m)도착

16 : 30 국사당을 지나 영암사 도착

16 : 50 주차장 도착

17 : 00 식사

17 : 30 모산재 주차장 출발

17 : 45 모산재 주차장 회귀( 귀환하지 않은 일행 한 명 찾으려)

18 : 00 모산재 주차장 출발

23 : 15 사당역 도착

 

황홀경을 연출하고 있는 황매산 철쭉의 향연

 


* 대한민국 최고의 철쭉 군락지로 경남 합천과 산청군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황매평전은 철쭉군락이 장관을 이루고 있고
영화 단적비연수, 태극기 휘날리며 등을 촬영했던 영화 세트장은 영화주제공원으로 꾸며져 있으며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주몽'의 촬영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  황매산 영화주제공원 부근의 철쭉 군락이 장관이다. * 

 

 

한국사람들 약속시간 지키지 않는 것은 알아주어야만 합니다. 이제는 코리안 타임이라는 것이 없어진줄 알았는데,

여전히 유효한가 보다.

 

한 명이 예정시간 보다 7분 가량 늦게 도착한다고 전화가 오는 바람에 출발했던 버스가 다시 회귀하여 주차장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미국의 한 주만큼도 넓지 않은 손바닥 만한 좁은 땅에 5,000만명이 바글거리고 살고 있으니 인구밀도가 세계 3번째다. 그래서 그런지 주말만 되면 어디를 가나

만원사례다. 특히 무슨 꽃잔치를 한다고 하면 어김없이 버스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기다린다.

 

경남 산청군 차황면과 합천군 대병면 및 가회면의 경계를 이루는 황매산(1,108m)은 합천을 대표하는 합천의 진산이며, 명소로 새집골, 옛 절터, 와포수에 희덤이

우뚝솟은 산이다. 합천호 푸른물에 하봉, 중봉, 상봉의 산 그림자가 잠기면 세송이 매화꽃이 물에 잠긴 것같다고 수중매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 황매산은 화강암

기암괴석과 소나무, 철쭉, 활엽수림이 어우러져 탈속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마치 설악산 용아장성릉의 축소판 같은 은백색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기암괴석들과 황매평전으로 알려진 드넓은 초원을 형성하고 있는 고산분지, 그리고 국내최고로 손꼽히는 철쭉군락으로 "한국의 알프스"라고 알려져 있다. 황매산은 봄철 철쭉군락, 여름 갈참나무숲, 가을 은빛 억새군락, 겨울 눈꽃축제, 여기에다 계절에 관계없이 당당하게

솟아 조망이 좋은 정상과, 은백색 화강암 기암괴석들을 이고 있는 모산재와, 최근에 조성된 영화촬영 세트장인 태극기 휘날리며 , 영화주제공원 등

볼거리가 많아 산행의 재미가 여간 쏠쏠하다. 또한 산상에 위치한 드넓은 초원 목장과 어우러진 산 분위기는 마치 유럽 알프스에 오른 기분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이같은 황매산의 첫번째 매력은 그래도 봄철 철쭉 군락이다. 이 철쭉 군락은 북릉인 떡갈재부터 정상 사이, 정상에서 남릉 상의 946.3m봉(베틀봉) 사이, 그리고 946.3m봉에서 모산재 사이에 대단위로 형성돼 있어 전국에서 손꼽는 철쭉군락지로 평가되고 있다. 매년 5월5일을 전후해 산청군과 합천군은 철쭉제 행사를 성대히 치르고 있다. 
 황매산(1,108m) 산행의 들머리는 통상 세 군데로, 먼저 산청군 장박리에서 올라 너백이 쉼터(960m)와 철쭉군락지(975m)를 지나 황매산 정상을 밟은 후 황매평전과 모산재 및 순결바위로 내려와서 영암사로 내려오는 종주산행길과 합천군 가회면 중촌리에서 올라 누룩덤, 칠성바위, 감암산, 천황재, 885봉, 철쭉군락지, 산불감시초소, 베틀봉(946.3m), 황매산 제단, 황매산 정상을 찍고 다시 역순으로 내려와서 황매평전을 지나 산불감시초소, 철쭉군락지, 모산재(767m), 순결바위, 국사당, 영암사, 감바위를 거쳐 모산재주차장으로 내려오는길 및 상법리에서 올라 영화주제공원을 거쳐 황매산 정상을 밟고 모산재로 내로는 길이다. 우리는 처음에 중촌리에서 올라 가기로 했는데, 5월 5일 부터 철쭉제를 하여 이를 즐기러 가는 등산차량들로 인해서 대기리부터 꼼짝도 하지 못하고 마치 주차장인양 버스들이 서 있다. 그래서 내가 인산인해가 아니라 車山車海라고 했더니 사람들이 모두 웃는다. 잠시를 기다리지 못하는 성질급한 사람들이 내려서 걸어 가자고 아우성이다. 원래 예정코스보다는

우회하는 고로 좀 돌아 가지만, 어쩔 수없이 들머리를 대기로 바꾸어서 오르기로 했다. 대기리에서 내려 마을 앞을 지나가는데, 느티나무 그늘 아래 평상에 앉아서

나물을 다듬고 있던 할머니들이 묻는다.

"어디서 오셨수? "

" 서을서 왔습니다"

이 말을 받아서 한심하다는 투로

" 에이그, 그 먼길을 뭣하려 왔소, 그냥 집에서 편이 쉬고 있을 것이지"

처음에는 할머니들이 하는 이 말뜻을 알아듣지 못했는데, 그 말뜻을 알아채는데 그리 큰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마을을 벗어나 조금 오르니 문수사 표시판이 나타난다. 문수사를 뒤로 하고 잘 닦인 길을 오르니 새롭게 조성한 목재 다리가 나타나는데, 붙여진 이름이 참 재미있다. 나무로 만든 다리라서 이름이 木橋다. 안내판을 보니 감암산까지 1.8km로 표시되어 있다.하지만 이 표시는 잘못된 표시로 실제로는 3.0kmduTek.  그래서 속으로

금새 가겠군하고 쾌제를 부르면서 철쭉과 진달래가 혼재하여 활짝 핀 아름다운 숲 속 길을 걸어 가는데, 계속 오르막이다. 하지만, 1.8키로야 아이들 말대로 껌이다. 목교에서 400여 미터를 오르니 길은 그곳에서 끝이 나고 은백색 거대한 암릉이 앞을 막는다. 이제 부터 릿지의 시작이라는 뜻이다. 곧 암벽타기가 시작되었다. 길없는 길을 두 손으로 바위를 잡고 오른다. 안부에 도착하니 전망이 그지없이 좋은데, 오른쪽으로 저 멀리 대기저수지가 그림같이 아름답게 보이고,  전후 좌우로는 은빛 화강암으로 마치 신이 만물을 빗어 놓은듯한 만물상 바위들이 우람하게 버티고 있는데 참으로 장관으로 마치 설악의 용아장성릉의 축소판처럼 보인다. 구경하는데 넋을 잃을 정도로 열심이 카메라의 샤터를 눌려됐다.

 

한 숨을 돌리고 앞을 보니 엄청나게 큰 화강암 바위 사이로 쇠말뚝을 박아놓고 잡을 수 있는 줄이 매달려 있는데, 가마득하게 높다. 릿지화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무리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하지만 어쩌라. 뒤로 돌아서 내려갈 수는 없지 않는가.

거의 직벽에 가까운 70 ~ 80도 경사의 거대한 화강암을 줄 하나에 의지한체 한 사람, 한 사람씩 조심 조심하면서 오른다. 정상 바로 앞까지 올라가니 집채만하게 거대한 바위들이 쌓여져 있는 화강암군이 나타나는데, 길도 없고 의지할 줄도 없다. 밑으로는 천길 낭떠러지요, 앞으로는 직벽에 잡을 줄도 없으니 이를 어쩌라. 참으로

난감한데, 유일한 길은 암벽사이로 나 있는 10cm 정도의 암반길이지만 오르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자칫 발이라도 미끄러지는 날에는 직벽 아래 천길 낭떠러지 바닥으로 추락하여 이 세상을 하직하는 길뿐이다. 조심 조심 정상까지 오르니 마치 지상선경인양 경치가 좋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한 참 경치를 구경하는데, 어디서 부르는 소리가 있어 고개를 돌려보니, 저 멀리 거대한 黃龍이 구름 사이로 승천하는 것같은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너무나 사실적이라서 사진을 찍고 또 찍었다.

 

" 아, 저 황룡이 나를 불렀구나"

몇 일쨰 부르고 있더니만, 그대였구나. 그래 무슨 일로 불렀는고?

한 동안 서 있다가 다시 길을 떠난다.

 

이 번에는 내려가는 길이다. 하지만, 어디에도 잡을 것도, 그렇다고 길도 없다.

마침 다른 산악회 소속의 한 분이 자일을 가지고 왔는데, 그것을 바위 사이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고 있는 나무에 매달은 후 이 줄을 잡고 한 명씩 한 명씩 조심 조심해서 내려 갔다. 줄이 충분치 못한 관계로 처음에는 양발과 양손으로 양쪽 바위를 버티면서 잡고 내려 갔고, 마지막에는 자일을 잡고 내려 갔다. 설악 용아장성릉을 타듯이 타고 내려간 후 안부에서 이 바위를 보니 꼭 누룩을 쌓아둔 것처럼 보인다. 아하, 그래서 누룩덤(더미라는 뜻)이라고 불렸구나. 은백색 화강암릉을 타고 조금 더 가니 가마득한 천길 낭떠러지 위에 거대한 바위가 보인다. 바로 칠성 바위다. 다행이 쇠막대기로 줄 재신 잡을 수 있게 만들어져 있었지만, 원체 좁은 탓에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다. 그래서 먼저 하산하는 3명이 내려오면,  반대로 올라가는 3명이 올라 가기를 교대로 하니 시간이 물흐르듯이 지나 간다. " 밑을 보지 마시고 천천히 한 명씩 지나 가세요"라고 다른 산악회의 등반대장이 소리 소리 치고 있다. 칠성 바위 위에 오르니 저 멀리 지리산 천왕봉이 구름 속에 아스라히 보이고 칠성바위 가마득한 아래로는 황표돗대 바위가 마치  켜켜히 쌓아올린 시루떡처럼 보인다. 도처에 붙여 있는 '추락주의'와 '등산로 없슴' 표시를 뒤로 하고 우여곡절 끝에 칠성바위를 오른 후 암릉길을 조금 더 가니 828고지인 감암산이다. 감암산을 조금 내려가면 철쭉군락지가 나타나는데, 그 아래가 천황재다. 천황재를 뒤로 하고 소나무와 철쭉이 군락지를 이룬 참으로 고요한 산 길이 나타나는데, 처음으로 흙산이다. 이 흙산을 올라가면 또 다시 그 정상이 바로 거대한 화강암릉으로 형성되어 있는 885봉이다. 여기서 부터 거대한 고산 평원의 철쭉군락지가 나타난다. 전체의 산이 일망무제로 보이는 산 위에 형성된 거대한 철쭉평원이 장관이다. 저 멀리 조망대와 산불 감시초소가 보이고, 사람 키만한 엄청난 철쭉밭이 나타난다.

 

하지만, 아쉽게도 몽우리만 맺었을뿐 아직까지 피지 못하고 있었고, 또 어떤 것은 날씨 탓에 몽우리체 말라버렸다. 만약 이게 다 피었다면 아마도 참으로 장관 중의

장관이였으리라. 소백산, 지리 바래봉,장수 봉화산과 함께 우리나라 4대 철쭉평원을 이루고 있을만큼 거대한 평원으로 이곳이 바로 대한민국 최고의 철쭉 군락지다. 이어서 베틀봉(946.3m)과 황매평전이 나타나고 황매산제단이 보이는데, 그 아래가 바로 '단적비연수'라는 영화를 찰영했던 곳이다. 이어서 나타나는 황매평전에서는 '태극기 휘날리고'란 영화를 찰영했었던 곳이고.... 경남 합천군과 산청군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이곳 황매평전은 광활하고 거대한 철쭉군락이

장관을 이루고 있기에 위에서 언급한 영화 단적비연수, 태극기 휘날리며 등을 찍었으며, 영화를 촬영했던 영화 세트장은 영화주제공원으로 꾸며져 있고, 또 얼마전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주몽'의 촬영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옛 날에는 목장을 했다는 이곳은 푸른 초원과 철쭉이 환상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데, 아직 피지 않아서 그 조화스러움이 반감되어 아쉬움을 남긴다. 아마도 금주말이나 아님 다음주말쯤이면 절정을 이룰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다시 또 갈까 생각 중이다. 이 번에는 종주코스로..... 이 곳 황매평전은 초가을부터 드넓은 고원에 들국화가 어지럽게 피어난다

 

황매산 제단을 지나면 정상이 바로 보이는데, 황매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187계단으로 형성된 철계단이 놓여 있지만 Traffic이 장난이 아니다. 

거대한 황룡의 머리에 해당하는 황매산 정상은 마치 황룡이 구름을 뚫고 솟아올라서 천상을 유영하는것 같은 모습이다. 목장지인 황매평전 아래에는 임도가 잘 닦여 있고 또 임도 끝에는 임시주차장과 철쭉제 천막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만약 승용차를 가지고 온다면 이곳에 주차가 가능한데, 여기서 부터 정상까지는 2.0km 밖에 되지 않아 쉽게 정상을 올랐다가 내려올 수가 있다.

 

이어서 모산재(767m)까지는 내리막길로 편안하게 내려올 수가 있다. 마치 봉수대처럼 돌을 쌓아서 만들어 놓은 조형물을 뒤로 하고 2시 방향을 바라보면 황포돗대가 펼럭이는듯한 거대한 직벽 암반이 보이고 그 중앙에 철제 계단이 설치되어 있어 사람들이 빼곡하니 차서 내려간다. 저려다가 아차 잘못하는 날에는 대형사고가 날듯하다는 생각이 스쳐지나 간다. 모산재에서 좌측으로 조금가면 구한말 산청과 합천의 의병들이 근거지로 삼았던 황매산성이 나타나는데 관리가 안되어서인지 이제는 흔적만 남아 있고 등산객들도 이곳으로 가지를 않는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쩌라. 이것이 오느날 한국의 현주소인 것을.... 나라를 구한 일에는 관심이 없고 모두들 떠들고 놀기 바쁜 민족인지라 이 민족의 장래가 걱정스러운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이곳에서 부터 영암사 까지는 천길 낭떠러지를 형성하면서 대기저수지로 들어가고 있는 살아서 움직이고 있는 거대한 은빛 岩龍으로 渴龍飮水形局을 이루고 있는 길없는 암릉으로 조심에 조심을 해서 가야하는 릿지코스다. 사방으로 거대한 은회색 화강암 바위들이 만들어 놓은 만물상들을 구경하면서 내려 가면 마치 여자의 음부처럼 생긴 바위가 나타나는데 바로 純潔바위다. 순결하지 못한 사람들이 이 바위를 지나가면 바위사이가 오므러들어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이 바위 위에서 보는 대기저수지의 풍경이 참 아름답다. 이곳을 지나가면 한 사람이 겨우 줄을 잡고 내려갈 수 있는 직벽바위 길인데 모두들 차타는 시간 맞추어서 내려갈려고 엄청나게 줄을 서 있다. 성질급한 것이 한국사람들이라. 새치기를 하는데,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새치기 하지 말라고 소리를 친다. 하나 '어느집 개가 짓느냐'는듯 오불관언으로 모두들 새치기를 하고 있다. 참으로 한심한 추태들을 보인다. 늦은 시간이라 바쁘기는 매한가지일터인데 나만 빨리 가자고 질서를 지키지 않으니 참으로 한심한 군상들이다. 이러고도 나라가 잘되기를 바란다면 그건 緣木求魚일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 무슨 고등학교 동창회에서 온 한 친구가 그 옆 오른쪽으로 나 있는 직벽 바위길을 발견한 모양이다, 소리 소리 지른다. " 야, 친구ㅡ들아 모두 이리로

오너라." 그러자 한 참 뒤에 줄서서 기다리던 그 동기들이 모두 우르르 앞으로 몰려가니 한 사람이 "새치기 하지 말고 질서를 지키라"고 호통을 쳤지만 막무가내다.

속으로 "저러다 떨어지면 다치지" 하면서 한마디 했다. " 그곳을 내려가도 그 밑에서 다시 합류하기 때문에 밀리는 것은 마찬가지니 괜히 다치지 말고 줄서서 순서대로 내려가라"고 했지만, 마이동풍일터....

참으로 못볼 추태를 보았고, ㅇㅇ 고등학교라는 얼굴에 스스로 똥칠을 하고 있었다.

우여곡적 끝에 내려오니 그 아레 우측에 국사당이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고, 마치 돌집처럼 잘 다듬고 간수된 에스키모들의 이글루 처럼 생긴 돌집이 나타난다. 안내판에는 이성계가 전국산천을 돌아다니면서 왕이되게 해달라는 기도를 할 때 이곳에서 기도를 했는데, 그 후 관찰사와 고을원들을 시켜서 매년 제를 올리게 했으며,

현재도 음력 3월 3일에 산신제를 올린다고 쓰여 있었다.

 

망해가는 나라를 구할려고 스스로 산으로 들어와서 항재하였던 근거지는 폐허가 되어 사라지다시피 방칮되어 있는데 반해서 군사구테타로 왕이되게 해달라고 빌었던 제단은 돌집에 돌담에 마당까지 갖추고 깨끗하게 잘 간수되고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칼 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게 이 국민성이리라. 이렇게 하면 후일 누가 자기몸을 던져서 나라를 구할려고 할 것인가?

 

이성계는 그럻게도 왕이 되고 싶었을까?

그렇게 하여 왕이 된 후에 그가 보았던 것은 무엇인가?

왕조실록이 모두 정확한 사실을 기록해 놓은 것은 아니겠지만, 그나마 진실에 가깝다고 보면, 그 왕조실록에 의하면 그는 생전에

아들들의 骨肉相殘으로 그가 왕으로 임명했던 가장 아끼던 아들이 배다른 아들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고 자신은 유폐되다시피 은거하는 꼴을 보아야 했으며, 개국

일등공신(이성계는 계비 신천강씨 가문의 재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개국할 수 있었슴)이라고 할 수 있는 繼妃의 무덤이 파혜쳐지고 그 일족이 멸문을 당하는 참으로

인간으로서는 보아서는 안되는 못볼꼴을 봐야만 했다.

 

뿐만이 아니다. 그가 개국한 조선의 28왕 중에서 왕다운 왕질을 한者는 태종 이방원과 연산군 밖에 없는 고작 단 두명뿐이였고, 나머지는 모두 신하들의 손(臣權政治)에 놀아나는 허수아비였을 뿐만 아니라 과도한 음주와 기름진 음식 등의 過飮과 과도한 방사로 인한 過淫으로 그의 왕조와 똑같이 28세 이전에 모두 요절하였고,

그나마도 30세를 넘긴 者는 다섯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였으며, 30세를 넘겨서 天壽를 다했다는 유일한 왕 英祖는 말년에 老妄이 들어서 노론과 소론의 틈바구니에서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여 자기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굶겨죽게 만들었으니 이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 말이다. 여기에 노망들린 영조의 손자 이산은 화병으로 죽고, 대원군 이하응은 외척 안동김씨 세도정치에 얼마나 수모를 당했으면 二代 絶孫之地에 자신의 부친 남연군을 이장하면서까지 하늘과 도박을 하여 왕이 되려 했겠는가?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이것이 이 민족이 걸어온 길이란 생각이 다시든다.

 

조림이 잘된 송림길을 따라서 한 참을 내려오니 통일신라시대의 고찰로 염암사지(사적131호)가 바로 아래에 있는 영암사다. 경내에 거대한 바위가 있는 마치 홍시감을 닮았다. 그래서 감바위라고 한다. 그 바로 옆에 옛 영암사지가 있는데 지금 발굴과 조성작업 중이다.

영암사에서 올려다 보는 뒷산이 참으로 靈驗스러워 보인다. 특히 산 6부 능선상에 가로질러 있는 베틀모야의 바위는 엄청나게 크고 은회색 빛을 발하고 있다. 굉장한 기운이 서려 잇는 절이지만,좌향이 조금 잘못되어 폐사가 된 점이 조금은 아쉽다. 靈巖寺 바로 아래 거대한 대기저수지가 조성되어 있어서 누기를 막아주고 있으니

조만간 다시 일어서리라.

 

대기리 - 감암산(3.0km) - 천황재(1.2km) - 전망대(1.6km) - 황매산 정상( 1.8km) - 전망대 - 모산재(1.8km) - 순결바위(0.7km)

- 영암사(0.9 km) - 주차장(0.5km)

 

* 찾아가는 길 : 경남 산청군 차황면과 합천군 대병면, 가회면 경계를 이루는 황매산(1,108m)은 산청, 거창, 합천에서 30분이면 닿을 수 있고, 수도권에서도 대전-

진주 고속도로를 이용해 당일로 봄산의 멋과 맛을 즐기기에 적격인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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