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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글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슬로시티 증도

1. 비오는 날의 여행은 감성적이 된다.

 

오늘처럼 비오는 날의 여행은 고즈넉하고 사색적이며 다소 낭만적이다. 해서 나그네로 하여금 감성적이 되게 만드는 묘한 무엇이 있다. 비오는 일요일, 남해안에서 비구름이 북상하기 때문에 전국에 비가 내린다는 비소식을 접하면서도 계획하였던 증도로 출발했다. 서울에서 부터 서해안 고속도로로 집입할때까지 가랑비는 계속 내렸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진입한 후 비봉, 발안, 안중을 지나고 송악에 이르자 그렇게 줄기차게 내리던 비가 다소 주춤해지면서 서서히 그치기 시작한다.

 

2시간을 달려서 부여휴게소.

이제 비는 완전히 그쳤다.

휴게소에서 블루마운틴으로 갓내린 원두커피랑 오댕 및 호두과자을 사먹고 출발했다.

 

서산, 보령을 지나자 다시 빗방울이 후두둑 차창을 때리면서 소나기가 한 차례 내린다. 웅어로 유명한 고장 웅천,서천을 지나 장항.군산으로 접어드니 비는 그쳤지만, 그친 비 사이로 시꺼면 먹장구름이 하늘을 덮어 아득한 지평선 너머로 하늘과 맞닿아 있고, 비가 잠시 그친 사이 사이로 하늘이 열리면서 하늘과 맞닿아 있는 먹장 구름을 뚫고 서기어린 햇빛이 내려쬐이는데, 그 모습이 마치 오색찬란한 장막을 드리운것처럼 신비로워서 흡사 그 속에서 신비한 전설이 잉태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면서 그  오색찬란하게 빛나는 장막 속으로 들어가고픈 생각이 절로 나게 만든다.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 경주 김씨의 시조 김알지, 현재는 강릉의 수호신이 된 사굴산파의 개창조 범일국사, 한국 풍수의 비조라는 도선국사의 설화가 그 옛날 저 속에서 창조되고 잉태되었으리라.

 

이어서 나타나는 갈지(之)자(字)로 유장하게 흘러들어오는 금강의 모습이 꼭 한 마리 거대한 흑룡(黑龍)같다. 이 거대한 한 마리 용이 얼싸안고 있는 고장이 바로 국내 최대 평야라는 만경, 김제평야다. 진초록의 향연이 끝간데없이 펼쳐져 있는 지평선 저 너머로 하늘과 맞닿아 있고, 그 사이 사이로 금강, 만경강, 동진강이 마치 구름과 비를 부르는 세 마리의 용처럼 우람하면서도 유장하게 꿈틀거리면서 그 우측에서 넘실대는 짙푸른 서해바다로 흘러들어 간다.  참으로 장관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오늘같이 낮게 깔린 짙은 먹장구름이 하늘과 맞닿아 있는 날에는 정말로 장관이 아닐 수 없다.

 

만경평야!

국내최대의 곡창지대이자 거대한 만경강이 휘감고 돌아 나가는 이곳은 언제 보아도 멋진 곳이다.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 저 너머로 아무리 눈 닦고 찾아 보아도 조그만 야산 하나 조차도 찾아볼 수 없는 국내 최대의 평야지대인 이곳은 조선 중기의 대도인 진묵선사(辰默禪師)를 잉태하고 길러낸 곳이다. 홀어머니의 유복자로 부처가 태어난다는 전설이 서려 있는 불탄리(佛誕里)에서 부처의 화신으로 태어난 그는 어려서 부터 진기한 이적(異迹)을 많이 보인 스님으로 유명하다.

 

집안이 가난했기에 어릴 때 일찌감치 집에서 멀지 않은 사찰인 봉서사(鳳棲寺)로 출가를 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주지가 아침마다 법당 내에 있는 팔부신장들에게 정화수를 뜨서 공양하게 하였는데, 이를 보다 못한 팔부신장들이 하루는 주지스님의 꿈에 나타나서 현몽하기를 " 부처님이 손수 정화수를 뜨서 공양하므로 부처님을 모시면서 불법을 보호해야하는 우리들이 몸둘바를 모르겠으니 하루 빨리 그만두게 하라"고 호통을 쳤다고 하는 일화는 아주 유명하다.

 

지금으로 부터 10여 년전 이 진묵선사의 자취를 찾아서 봉서사를 갔었는데, 신기하게도 그의 부도는 매년 자라고 있었으며, 현재까지도 새하얀 화강함 그대로 잡티나 잡떄 하나 묻지 않고 조금씩 자라고 있는 바, 국내외의 내노라 하는 수 많은 과학자들이 수차 이 부도의 비밀을 풀고자 연구해 봤지만, 현대 과학으로는 풀 수없는 과제이자 수수께끼라고 한다.

 

조사당에 모셔진 진묵선사가 말했다.

" 자네가 왔는가. 올줄 알았다네. 내가 자넨줄은 아는가? "

 

그 때 주지스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봉서사 대웅전 주련으로 걸린 진묵스님의 글(사실은 장자의 '소요우(逍遙宇)'를 인용한 글을 논했는데, 이 스님이 무슨 생각이 드셨는지 잠시 기다리라면서 자기 방에서 만다라와 '관세음보살육자대명왕진언'으로 만든 탑(스투파) 그림을 들고 와서 우리 일행들에게 선물로 주었고 나에게는 이 둘을 모두 주었다.

 

효성이 지극했었던 진묵스님은 모친이 모기 때문에 고생한다고 하자, 그 일대를 관할하는 산신(山神)을 불러서 모기들을 불탄리 일대 20리 밖으로 내쫓으라고 지시하였다고 하며, 그 이후 이 일대에는 신기하게도 모기가 없다고 한다.

 

진묵스님은 자신이 출가하여 자손이 절손(絶孫)되었기에 홀어머니를 더 이상 봉사(奉祀)하면서 모실 방벙이 없자 이를 안타깝게 여긴 나머지 홀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직접 명당을 잡아서 정성스럽게 모시면서 이르기를 " 만약 여기에 향화(香花)를 올리는 이들에게 이 땅이 복을 주지 않는다면 나 진묵이 직접 복을 주겠다"고 했던 바, 그의 예언대로 천하대명당 만경평야의 끝자락 연화도수형(蓮花到水形)의 '무자손만대향화지지(無子孫萬代香花之地) 천하대명당에 묻힌 진묵선사의 모친은 ' 새 해 첫 날에 이곳에 향화를 올리면 무슨 소원이던지 한 가지 소원은 꼭 이루어진다'라는 전설적인 이야기때문에 현재까지도 참배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현재는 이 성모묘(聖母墓) 바로 옆에 성모암(聖母庵)까지 세워져 있어서 진묵스님의 말은 빈말(虛言)이 아닌 실화(實話)가 되었고 이 대로라면 만대가 아니라 영원히 향화가 끝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성모묘와 성모암을 두 번이나 찾았는데, 성모암에서 두번째로 진묵스님을 만났고 또 똑같은 말을 들었다.

 

이어서 짙록색으로 펼쳐진 평야 한 가운데 저 멀리 우뚝솟은 산이 나타나는바, 바로 김제의 진산인 모악산(793m)다. 이산은 해발 793m로 별로 높지 않지만, 평지돌출산이라서 상당히 높게 보인다. 이같이 해안가 평지에 돌출된 산을 우리말로는 가지산, 가야산 등으로 불리웠는데도 불구하고 유독 이산은 가지산이나 가야산으로 불리워지지 않고 모악산이라고 불리운데는 산 정상에 어미가 어린아이를 안고 있는 형태의 바위가 있어 ‘모악’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라기 보다는 아마도 김제평야를 적셔주는 물 때문이 아닌가 한다(註1). 즉 이 산에 모인 물이 김제평야를 적셔준다고 해서 어머니 같은 산이란 뜻으로 어미 모(母)자(字) 모악산(母岳山)이라 불리운 것으로 추정된다. 때문에 이 산자락에는 미륵신앙의 진원지이자 후백제의 견훤이 그 아들에 의해서 유폐되었던 금산사(金山寺)와 구 한말의 증산교주 강증산이 깃들어 피폐해져가는 민줌들을 구제하고  어루만지면서 그들에게 희망을 심어 주었으리라.

 

*註1 母岳山 : 높이 793m으로 전주시 남서쪽 12㎞ 지점에 위치하며, 아래로 김제평야와 만경평야가 펼쳐진다. 산 정상에 어미가 어린아이를 안고 있는 형태의 바위가 있어 ‘모악’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호남평야의 젖줄 구실을 하는 구이저수지·금평저수지·안덕저수지와 불선제·중인제·갈마제 등의 물이 모두 이 곳 모악산으로부터 흘러든다. 정상에 올라서면 전주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고, 남으로는 내장산, 서쪽으로는 변산반도가 바라다 보인다. 동학농민운동과 6·25전쟁 등을 거치면서 큰 나무는 거의 베이거나 불에 타 사라졌지만, 4월에 피는 벚꽃과 배롱나무 꽃은 장관이다. 예로부터 논산시 두마면의 신도안(新都安), 영주시 풍기읍의 금계동(金鷄洞)과 함께 명당(名堂)이라 하여 난리를 피할 수 있는 피난처이자 각종 무속 신앙의 본거지로 널리 알려져 왔다. 신라 불교 오교구산(五敎九山)의 하나로 599년(백제 법왕 1)에 창건된 금산사(金山寺)를 비롯해 귀신사(歸信寺)·대원사(大院寺) 등의 사찰이 있다.

 

모악산과 김제 평야를 뒤로 하고 채석강과 내소사로 유명한 부안과 줄포를 지나자 썰물로 물이 빠진 갯벌이 참 아름답다. 봄철 동백꽃과 가을철 꽃무릇으로 유명한 선운사와 풍천장어와 복분자주로 이름을 날린 고창을 지나 굴비로 유명한 영광과 나비축제와 한우로 이름난 함평JC로 나와서 무안을 들어서니 온 들판의 흙색이 마치 해남의 토색(土色)마냥 모두 붉고, 그 붉은 밭에는 온통 고구마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국내의 고구마 산지는 크게 해남, 무안, 여주인데, 남한강변의 사질토(沙質土)로 이루어진 여주는 약간 희뿌연 황색을 띤 호박고구마가, 붉은 황토흙으로 이루어진 해남과 무안은 흙색마냥 붉은 밤고구마가 유명하다. 무안의 산과 평야는 모두 붉은색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참으로 아름답다. 그래서 무안(務安)이라기 보다는 오행 중 중앙 토(土)를 주관하여 황토색(黃土色)를 뜻하는 무안(戊安)이 더 어울릴것처럼 보인다.

 

무안국제공항도로 북무안 IC로 나와서 해제반도의 신정과 천장을 지나니 물빠진 갯벌 사이로 미치 베트남의 하롱베이를 보는듯한 산들이 신비하게 다가오는데, 어디서 많이 본듯한 모습인지라 자세히 살펴보니 꼭 중국 산동성의 해안가 마을을 보는듯 하다.

그만큼 발전은 못했지만 오염되지 않았다는 증거다. 이어서 나타나는 민어공판장으로 유명한 지도(智島)시내는 꼭 어디선가 본듯한 모습으로 전혀 낮설지가 않다. 어디서 보았던가? 잠시 시간여행을 갔다가 돌아오니 어느새 붉은색으로 칠해진 아치형의 증도대교가 반기는데, 증도대교 못밑쳐서 부터 이색적인 천일염 염전과 물 속에 산소를 공급하기 위한 풍차가 돌아가고 있는 물고기 양어장이 수도 없이 나타난다. 이제는 증도대교 개통으로 자동차로 5분도 채 걸리지 않았지만, 이 다리가 개통되기 전까지는 지도의 송도 지신개(地信開)선착장에서 증도(曾島) 버지(所地)선착장까지 갈려면 배로 30분을 가야 할 정도로 교통이 불편했던 곳이였지만, 이제는 상전이 벽해가 되듯이 현대화되어 가고 있는 현장이기도 하다.

 

2. 시간의 수레바퀴가 멈춰선 슬로시티(Slow City) 증도(曾島)

 

<우전 해수욕장 그늘막과 우전해수욕장 풍경>

 

(1) 시간이 멈추어 선 섬

 

시간의 수레바퀴가 잠시 멈추어 선 섬 증도는 훼손되지 않은 청정자연의 아름다움과 평화로움이 고스란히 그대로 남아 있어 마치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온듯한 착각이 들게 만든다. 신안군 임자면 재원도, 임자도, 지도 등과 더불어 우리에게 민어산지로 유명한 이곳은 20년 전까지만 해도 파시가 들어서 흥청거렸다고 한다. '타리파시'라고 불리웠던 이곳은 일제시대엔 섬 주위 모래등에 초막이 즐비하게 들어서고 팔도 기생뿐만이 아니라 일본의 기생들까지 몰려들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고 한다. 최대 성어기인 8월에는 알 낳으러 가는 민어들의 울음소리로 온 바다가 시끌벅적했다고 한다. 요즘도 6월 하순부터 제일의 민어 산지인 재원도 일대엔 민어잡이 배들이 몰려들고 지도 송도위판장엔 민어를 구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선다.

전라남도 신안군 증도면에 딸린 섬인 증도는 면적 28.16㎢, 인구 1,906명(1999년 기준), 해안선길이 46.5km, 최고점 200m(上程峰)이다. 목포시에서 북서쪽으로 51km 해상에 위치하며 북쪽에 사옥도(沙玉島)와 임자도(荏子島), 남쪽에 자은도(慈恩島)와 암태도(岩泰島)가 있다. 1896년 지도군에 속하였다가 1914년 무안군에 편입되었으며 1969년 신안군에 소속되었다.

옛날부터 물이 귀한 곳이라 하여 시리(시루)섬이라 불리었고, 전증도와 후증도가 하나의 섬으로 합해지면서 증도라 부르게 되었다. 즉 원래 대조리·우전리(羽田里)를 구성하는 대조도(大棗島)와 별개의 섬이었으나 두 섬을 잇는 제방이 축조되고 그 사이에 대규모 염전이 개발되면서 하나의 섬으로 통합되었던 것이다. 섬에는 100m 안팎의 낮은 산지가 늘어서 있으며, 산지와 산지 사이에 평지가 발달하여 논으로 개발되었다. 농경지가 비교적 넓기 때문에 주민들은 대부분 농업에 종사한다. 주요농산물은 쌀·보리·유채·참깨 등이며, 주변 해역에서 농어·민어·갈치 등도 많이 잡히고, 김·미역·꼬막 등의 양식도 성하다. 증도에 들어서면 먼저 선착장 바로 앞의 있는 국내 최대소금생산지로 연간 1만 5천여 톤의 소금을 생산해 내는 태평염전과 마주하게 되고, 염전을 지나면 매년 갯벌천일염축제가 열리는 짱뚱어 다리와 우전해수욕장이 반긴다. 백사장 길이 4km, 폭 100m의 우전해수욕장은 90여개의 무인도들이 점점이 떠있는 수평선이 매우 아름다우며, 맑은 물과 주변의 울창한 흑송림 숲 때문에 시원스러운 여름날의 피서를 마음껏 맛볼 수 있다. 증도의 청정갯벌은 양질의 게르마늄 성분이 포함되어 있어 노화방지에 탁월한 효과가 있으며, 다양한 갯벌 생물이 서식하고 있어 체험관강코스로 각광받고 있으며, 이 갯벌을 이용한 머드해수욕이 유명하다. 또 저녁노을이 아름다워서 증도의 명물인 짱뚱어(長頭魚)다리에서 바라보는 일몰은 잊지못할 추억거리를 만들기도 한다. 또한 1976년 방축리(防築里) 앞 도덕도(道德島) 인근 해역에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송,원대해저유물(宋元代海底遺物)이 한 어부의 거물에 걸려 올라오기도 한 보물선의 고장으로 이 해역(海域)은 사적 제274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특히 증도면은 때묻지 않은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춘 섬으로서 지난 2007년 12월 1일자로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슬로시티(Citta Slow)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 때문에 섬 전체에서는 흡연이 금지되어 있다. 현재 국내에는 유일하게 초분의 풍습이 남아 있다. 바닥면에 돌을 가지런히 놓은 뒤 시신을 올려놓고 그 위에 초가집 형태로 봉분을 만드는 초분은 유족 가운데 임신한 여자가 있거나 땅을 건드려서는 안된다는 풍습이 있는 음력 정월에 상을 당했을 때 행해진다. 특히 이곳은 5 ~6월에는 병어, 7 ~8월에는 복달임(註2)의 으뜸이라는 민어로 파시를 이루는 곳이다. 이들 병어, 민어는 지도읍 송도수협공판장에서 경매로 거래된다. 

 

(2) 갯벌과 염전, 그리고 느린 삶
이번 여름 증도는 어지간히 몸살을 앓았다. 증도가 청산도와 함께 슬로시티 섬으로 지정되면서 서서히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더니, 신안군 지도와 사옥도를 잇는 연륙교가 들어서면서 몰려드는 피서객들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것이다. 이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로 섬 곳곳이 몸살을 알고 있고, 해송 숲과 청정 바닷가에는 일회용 스라스틱 커피잔과 담배곽 등이 볼상사납게 널부러져 있기에 이제 증도는 슬로시티가 아니라 퀵시티라는둥, 청정섬이 아니라 쓰레기섬이라는둥 하는 소리까지 터져 나왔다. 필자가 찾아갔엇던 해송 숲과 우전 해수욕장에는 관광객들이 버린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었고, 섬 전체가 금연의 섬으로 지정된 증도의 태평염전에서는 금연이라고 쓰여 있는데도 불구하고 인부들이 담배를 피운 후 빈 담배곽을 아무 생각없이 수로에 버리는 현장을 수 차례나 보았으며(이러고도 청정 천일염이 생산될련지 궁금하기까지 하다), 또 관광객들이 담배를 피운 후 꽁초를 아무데나 마구 버리고 있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증도와 염전의 관람객들을 하루에 몇명씩으로 제한하는 것이 어떨까 한다.


다리가 놓이기 전부터 어느

 

<증도 게르마늄 갯벌. 멀리 짱뚱어다리가 보인다>

정도 예견되었던 일이기는 하지만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었는지 안타깝기만 할 따름이다. 어쩌면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들고 섬이 다시 슬로시티 본연으로 돌아가기 시작하는 지금이 증도 방문의 적기인지도 모르겠다.

1976년 증도 앞바다에서는 참으로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한 어부의 그물에 고기 대신 고려청자, 백자 등 도자기가 무더기로 걸려 올라온 것이다. 바로 그 바다 밑에는 중국 송·원대 때의 유물을 가득 실은 선박이 가라앉아 있었다. 이때부터 증도는 ‘보물섬’으로 유명세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하지만 증도의 진짜 보물은 따로 있었다. 바로 청정 갯벌과 염전이다. 증도의 갯벌은 게르마늄 성분을 다량 함유하고 있어 피부노화 방지와 보습효과가 뛰어나 화장품의 원료로 사용될 정도다. 또한 여의도 면적의 두 배에 이르는 광활한 염전은 우리나라 최대의 천일염 산지로서 명성을 얻고 있다.

증도에서 사람들의 발길이 가장 몰리는 곳은 아무래도 우전해수욕장 일대다. 해수욕장과 레저시설이 갖춰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해수욕장 북쪽 갯벌에 이 섬의 명물인 ‘짱뚱어다리’가 놓여 있는 까닭이다. 길이 470m의 짱뚱어다리는 너른 갯벌과 그에 기대 사는 바다생물들을 관찰하기에 적격일 뿐만 아니라 만조시 다리를 건너는 기분은 마치 영화 속의 한장면 같고 또 환상적인 일몰과 밤하늘의 수 많은 별들을 관찰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다리 아래의 갯벌에는 짱뚱어뿐만 아니라 농게와 칠게 등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아예 갯벌로 내려가 그들과 놀다보면 어느덧 해가 저물고 다리에는 간접조명이 비치면서 더없이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짱뚱어 다리 끝단에서 부터 시작되는 우전해수욕장과 50년 전 우전해수욕장 옆으로 방조림으로 조성된 4.8km의 흑송림 숲길은 고즈넉하여 맨발로 산책하기에 좋다. 이 길을 쭉 따라가면 증도 최고봉인 상정봉(200m)에 이르고 여기서 보는 우전 해수욕장은 꼭 한반도를 닮았다.

 

<증도 염전. 여름 내내 염부들은 밀대로 ‘작은 금’을 밀고 다닌다>


우전해수욕장 끝단에 들어선 ‘엘도라도’ 리조트는 그 이름부터가 역설적이기도 하고, 소박한 섬 풍경과는 어딘지 모르게 어색해 보이기도 하지만, 증도는 난개발을 막기 위해 숙박업 허가를 쉬 내주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민박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이 섬에서 유일한 리조트다. 혹여 민박을 불편하게 여길 까다로운 이들을 위해 지어진 글자 그대로 엘도라도라고나 할까? 증도의 민박집들 중에는 백합어장을 겸하는 집들이 있어 직접 백합 캐기 체험을 해볼 수도 있고, 또 이 섬의 식당들에서는 별미인 병어를 맛볼 수도 있다.

증도에 다리가 놓이면서 이제 먼 길을 달려서도 또 배를 타고 건너야 하는 불편은 없어졌는지 모르겠지만, 그와 함께 사람들 마음속에 남아 있던 다른 어떤 것 또한 따라서 사라져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지척인 섬과 뭍조차도 몇 시간씩 기다려 배를 타고 건너야 하는 불편함은 있었지만, 그래도 뭍과 단절되어 있어 오히려 지킬 수 있었던 소박한 인심과 느린 삶, 그것이 어느 순간 덧없이 사라져버리지나 않을는지 은근히 불안한 마음이 이는 것은 비단 외부인의 속 모르는 한갓진 소리만은 아니리라. 다소 느리더라도 사람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세상, 그곳이 진정 우리가 그리워하는 엘도라도는 아닐까.

* 註2 민어복달임: '복달임'이란 여름철 복날에 보신 음식을 먹는 일로 통상 장마가 끝나고 복더위가 시작되는 복날의 복더위에는 먹는 음식이다. 예로부터 남도지방에서 복더위는 '민어 철'로 불리어 왔다. 민어는 예로부터 '복달임'의 으뜸 음식이었다. 삼복더위에 민어찜은 일품, 도미찜은 이품, 보신탕은 삼품이었다고 하니 민어가 복달임 음식에서 차지한 바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생선의 싱싱한 맛을 으뜸으로 치는 남도지방에서 민어는 찜보다는 주로 회나 탕으로 먹었다. 민어(民魚)라는 이름 자체도 '민초들의 물고기'라는 뜻이어서 예전에 민어가 얼마나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었던 생선인지를 잘 알 수 있다. 그런데 민어가 잘 잡히는 서남부 지방과 서울 등지에서는 민어가 인기있는 바닷고기이었지만 민어가 나지 않는 동해와 경상도 지방에서는 생소한 생선이었던지 민어에 대한 이야기나 민어 음식이 드물고 요즘도 민어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자산어보>에서 "고기 맛이 달다…"고 했는데 민어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는 민어를 두고 한 말이라고 한다. 실제로 민어회를 먹어보면 민어 살 맛이 다른 고기의 그것에 비해 상당히 달크작작한 맛을 내는 것을 알 수 있다. 민어 살은 그만큼 달고 부드럽고 고소해서 회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맛을 즐길 수 있다.

넓은 바다와 기름진 갯벌을 두르고 있는 서남 해안 지방에서는 봄부터 철 따라 먼바다로부터 생선들이 알을 낳기 위해 가까이 오기에 그때마다 풍족한 미각을 즐길 수 있는 행복을 한 가지 더 갖고 있다. 벌써 초봄부터 주꾸미에서 송어, 병어, 준치, 갑오징어 등 봄 생선이 우리 입을 즐겁게 해 주고 지나갔다. 그리고 이제 민어가 몰려오고 있는 것이다. 민어는 병어와 준치 철이 막 지난 6월 하순부터 8월까지 신안군 임자면 재원도 일대에서 많이 잡힌다. <세종실록지리지> 등 옛 풍물지리서에 민어가 골고루 등장하는 것으로 봐서 민어 복달임이 서해안 전체에 고루 분포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민어가 가장 많이 잡히는 재원도 일대엔 20년 전까지만 해도 파시가 섰다고 한다. 이곳 '타리파시'는 일제시대엔 섬 주위 모래등에 초막이 즐비하게 들어서고 일본의 기생들까지 몰려들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고 한다. 최대 성어기인 8월에는 알 낳으러 가는 민어들의 울음소리로 온 바다가 시끌벅적했다고 한다. 요즘도 6월 하순부터 제일의 민어 산지인 재원도 일대엔 민어잡이 배들이 몰려들고 지도 송도위판장엔 민어를 구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선다.

민어는 중부지방에서는 찜으로 유명하지만 신안 목포 등 남서해안 지방에서는 싱싱한 상태를 이용해 주로 회로 먹고 머리와 뼈, 내장은 민어탕으로 먹었다. 또 회를 뜨고 남은 살은 전을 부쳐 먹는다. 민어찜은 민어가 성질이 급해서 잡히자마자 죽어버리므로 신선도를 유지할 수 없는 서울이나 먼 지역에서 주로 먹었던 음식으로 보인다. 민어는 회로 먹을 때 살, 부레, 껍질, 다진 뼈 등 20여 가지 부위로 나뉘어 상에 오르니 가히 생선 가운데 으뜸이요 회 가운데 일품이라고 할 수 있다. 껍질은 살짝 데쳐서 기름장을 찍어 먹고, 고소한 부레도 소금을 찍어 먹는다. 회를 먹고 난 뒤엔 뼈와 남은 내장을 넣어 끓인 걸쭉한 매운탕과 밥이 나오니 뱃속을 후련하게 하는 게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민어회는 수컷인 수치로, 민어탕은 내장이 풍부한 암치를 쓰는 게 좋다.

민어는 서·남해와 동중국해에서 사는데, 가을에 남하해서 제주도 남쪽해역에서 월동하다가 봄이 되면 북서방향으로 올라온다. 산란기는 7월~9월인데, 재원도를 지나 인천 덕적도 앞바다까지 가서 알을 낳는다. 알을 낳는 어미는 3년 이상 자란 50cm 이상 되는 것이며, 아주 큰 것은 몸길이 1m에 무게가 20kg이나 나가는 것도 있다. 물고기 중에 귀골이고 팔척장신이어서 "민어 한 마리로 수십 명이 흡족하게 복달임을 했다"는 말도 있다.

민어는 제사상이나 혼례상 등에 빠짐없이 올랐는데, 이는 비늘이 두껍고 덩치가 커서 의례상 차리는 데에 눈에 잘 띄는 맞춤이었기 때문이다. 말린 민어포는 담백하고 고소하기가 굴비 못지않아서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건어물의 하나이다. 또 민어찜은 담백한 맛이 뛰어나 서울에서는 도미찜보다 한 수 위로 대접을 받았다. 민어 머리 또한 매운탕 맛 우리는 데 일품이어서 '어두봉미(語頭鳳尾)'의 식도락 취향에 딱 맞는 대목이다.

특히 민어의 부레는 생으로 소금을 찍어 먹으면 쫄깃하고 고소하며 민어탕을 끓여 먹으면 걸쭉한 맛을 낼 뿐만 아니라, 나무를 붙이는 풀을 만들어 쓰기도 했다. 옛 노래에 "이 풀 저 풀 다 둘러도 민애 풀이 따로 없네…"라는 대목이 있다. 민어 풀은 '천년을 간다'는 접착제이다. 현재 박물관에 보관 중인 옛 고가구의 대부분은 이 민어 풀을 쓴 것들이다.

이처럼 서남 해안 생선 중의 귀족이었던 민어는 80년대 이후 남획으로 수가 격감해서 요즘은 초여름 한철 주산지인 신안과 목포 일대에서만 싱싱한 횟감을 만날 수 있다. 서울 등지에 나도는 건어물은 중국에서 들어온 것이 적지 않다. 따라서 민어를 제대로 먹기 위해서는 신안 지도나 임자도, 또는 목포 등지 식당을 찾아야 한다. 임자도 진리선착장 앞 신안횟집, 임자면사무소 앞 서울식당이 민어음식을 잘한다. 목포에는 옛 초원호텔 건너편 식당가에 영란횟집을 비롯한 민어회 전문식당가가 있다.

 

 

<증도의 명물 짱뚱어 다리와 신안해저 유물선을 모형화 시킨 전시관 트레져 아일랜드>

 

<갯풍민어횟집 앞에서 바라 본 시간이 멈춰 선 증도 앞바다와 이 집에서 끓어 내는 짱뚱어 탕>

 

 

<단일염전으로는 국내 최대의 천일염 생산지인 태평염전과 태평염전에서 운영하고 있는 140만평의 염생식물 생태공원 내의 염생식물>

 

3, 찾아 가는 길과 숙식

 

(1) 찾아 가는 길

 

가. 자가용으로 갈 경우: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함평분기점에서 무안~광주간 고속도로로 바꿔 탄 후 북무안IC로 빠져나간다. 현경면에서 해제반도를 달려 지도에 이른 후 연륙교로 사옥도를 거쳐 증도로 들어간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서해안고속도로 고창IC에서 빠져 영광 백수해안도로를 거쳐 가는 것이 좋겠다. ‘우리나라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정말 아름다운 길이기 때문이다.

호남 고속도로를 이용할 경우에는 대전-호남고속도로-정읍I.C-22번국도(고창방면 20분)-서해안고속도로 선운산I.C-무안I.C-무안방면(1번국도)-지도, 현경방면(60번지방도)-임자, 지도방면으로 좌회전-사옥교- 증도

 

나, 대중교통으로 갈 경우: 용산역에서 KTX고속철로 3시간 25분이면 목포역에 도착한다. 목포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50분이면 지도읍 버스터미널이다. 군내버스로 갈아타고 가면 된다. 증도에는 4륜구동 택시가 2대 있으며, 지도읍에서 면사무소까지의 요금은 약 4000원이다.


(2) 숙박

엘도라도 리조트가 오픈했지만 여전히 증도는 숙박시설이 많지 않다. 여관이 2개 있으며 민박은 10여 곳에서 운영하고 있다. 성수기에도 1박당 3만원선이며 1인 추가시 5000원이다. 샤워시설은 갖추고 있고 민박집에서는 음식조리가 가능하다.  숙박시설이 그래도 나은 임자도에 머물면서 증도를 방문하는 방법도 있다. 문의 신안군청 문화관광과(061-240-8355)·홈페이지(www.sinan.go.kr), 증도면사무소(061-271-7619)

(3) 맛집

증도는 먹을만한 식당 찾기가 어려운데다, 일요일이면 문 닫는 집이 많다. 그나마 괜찮은 집으로는 갯풍 참민어장어회집(061 - 271 - 0248)과 갯마을횟집(061 - 271 - 7528)이다. 별미를 맛보려면 증도를 나와 신안군 지도읍 송도어판장으로 간다. 요즘 민어가 한창이다. 민어는 옛부터 여름철 최고 보양식으로 꼽혀온 생선. 송도어판장은 국내에서 가장 큰 민어집산지로 꼽힌다. 어판장 부근 '지도횟집'(061-275-8100)은 민어 선도가 좋다. 민어회 2~3인분 기준 8만원 정도. 목포시 '영란횟집'(061-243-7311)은 민어로는 최고라고 꼽히는 집. 민어회 2인분 1접시 4만원. 목포 '삼화횟집'(061-244-1079)도 유명하다. 민어회 한 접시 4만원. 목포 금화동 수협공판장 뒷골목 '만선식당'(061-244-3621)은 밴댕이 전문점이다. 꾸덕꾸덕 말린 우럭으로 끓인 우럭탕도 별미. 밴댕이회 2~3인분 1접시 1만원.

 

(4) 즐길거리

밤에 랜턴이나 횃불을 들고 바위에서 돌게를 잡을 수 있다. 밴댕이 젓갈을 낚싯줄에 묶어 바위틈 사이에 넣으면 돌게가 딸려 나온다. 갯벌에서는 물이 빠졌을 때 바지락, 맛조개를 잡을 수 있다



(4) 여행상품

솔항공은 증도와 임자도를 묶은 여행상품을 내놨다. 임자도
대광해수욕장과 갯벌, 염전, 낚시 등을 체험한 뒤 모텔급 숙소에서 잔다. 다음날 아침을 먹고 증도로 이동, 갯바위낚시, 독살 체험, 머드(진흙) 체험, 자전거 하이킹 등을 즐긴다. 오후 4시쯤 전남 나주로 이동, 나주역에서 기차를 타고 10시 30분쯤 서울 용산역에 도착하는 일정이다. 3식과 체험료, 숙박, 여행자보험, 전용 차량 포함 18만9000원. 문의 (02)2279-5959  

 

(5) 기타 관광정보: 증도 관광시 알아두면 편리하다.


        증도버스 271-7570 / 011-607-7570  


        증도택시 이영환 011-9617-7607, 275-7998


        증도 개인택시 011-614-8419, 271-2060


        응급환자 발생시 = 한길호 011-627-4135  


        증도보건지소 271-7832 / 화재.구급. 조난신고 119


        해제소방파출소 454-5119 / 지도소방파출소 275-0119


        응급의료정보센터 1339 / 사상자응급구조신고 277-4000


        증도호 철부도선 버지취급소 275-7685


        증도호 철부도선 선장 019-330-9075  


        증도호 철부도선 사무장 011-9616-1766    


        지도에서의 개인 및 지명택시 275-8888 / 275-1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