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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글

간섭과 신뢰

간섭과 신뢰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간섭하지 말아 달라는 것과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을 믿어주길 부탁하는 것..

 

어찌 전혀 다른 의미이나 때로는 같이 들릴 때가 있다. 하루는 우리 딸애가 엄마의 간섭에 불평을 한다. 여러번 이야기를 하였으니 잔소리의 수준이라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잔소리 그만!”이 아니고, “이제 간섭 그만!”의 항의의 뜻이 아니라 이제 제발 자신의 능력을 믿어주길 바란다는 이제 저의 일은 저가 잘 알아서 하고 있다는 것을 믿어주세요!” 라는 부탁 같은 항의이었다. 이민 생활을 하는 가정에서 자주 보는 광경일 듯 하다.  아마 이제 갓 이민 온 가정에서는 단순한 세대 차이에, 영어란 언어 장벽에학습 방식의 차이까지 겹치어 더 심각할 지도 모르는 일이다. 가정의 분위기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이민 온 지 얼마 안되는 가정에서는 아직도 한국식의 방식이 그대로 적응이 되는 것 같다. 자녀들의 성적에 지나칠 정도로 민감한 한국 부모님들은 자녀들의 나태함를 지켜 볼 수가 없기 때문인 듯 하다. 그래서 한국에서의 학습 방법을 내 칠 수가 없어서 그대로 유지하게 되는데, 수학을 제외하고는 곧, 부모님이 옆에서 도와 줄 수가 없게 되어 버리면서 부모님의 안스러운 염려가 번복되면서 간섭이 되어 버리기 쉽상이다. 이제 자신들이 부모님보다 더 학교 생활에 익숙하고 이민 생활에 익숙하니 그만 자기가 잘 알아서 할테니 믿어주길 부탁한다는 불만의 표시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 그들이 어느 정도 제발로 설 수 있게되면 방향 제시만 할 뿐, 그들이 택한 방법을 존중 하여 주어야 한다. 학교 생활에 대해서 뿐 아니라 여기 사회 생활도 그러하다. 경제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도움을 필요한 상태가 아니면 그들에게 아무런 간섭을 하지 않는다. 간섭을 하여도 충고의 수준이고 제안의 수준이지 강요, 지시, 또는 명령의 수준은 절대 아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다가 그들의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이 되면 그들을 간섭하지 않는다. 사회 복지란 명목으로 그들을 보호하기는 하겠지만 그런 도움이 필요하지 않는 곳에 지속적으로 하게 되면 과잉보호 또는 지나친 간섭이 되어버린다. 국가간에도 마찬 가지 일 것 같다. 예를 들면, 해방 이후, 6.25동란을 거치면서 UN군 주둔이란 명목아래 미국의 내정 간섭은 끊임 없었던 것은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국제 경쟁에 대항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지만, 지금은 그들로 부터, 아니 어느 나라로 부터 내정 간섭을 받을 수가 없는 것 처럼 말이다. 어린 자녀들의 가슴에는 그들만의 새로운 국가를 형성되고 있다.그들만의 독립국가를 형성하고 있다이상적인 자유국가가 형성되기위한 헌장 마련에 대한 도움은 필요하나 이후에 내정간섭이 있어서는 아니된다.  공산주의로 변하지 않을 것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그들에 본보기가 되어 이상적인 자유국가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을 하여야 한다.   

 

그들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 이르면 이를 수록 좋다. 간섭을 하지 말아달라고 .. 자신을 믿어달라는 소리로 들어야 것이다. 물론 옆에서 보기에는 어슬프다.. 그러나 믿고 참아야 한다. 그들에 믿음을 주어야 한다. 인구가 많아서 경쟁이 치열하고 Standard 폭은 여기보다도 훨씬 좁고 실수의 허용치 또한 매우 작은 한국의 생활 구조에서 익혀진 습관은 쉽게 버릴지 못하는 것을 이해를 한다. 그러나 이곳으로 이민을 오게 되었으면 조금 여유를 가지고 조금 넓게 많는 것의 결정권을 그들에 넘겨야 같다. 그래야 그들이 빛을 제대로 수가 있다고 본다.

 

그들을 통해서 자신이 이루지 못한 염원들을 이루려하고, 자녀들이 성취를 일구어내게 되면 자신이 마치 그것을 이룬 대리만족을하거나 자신의 노고를 자찬할려는 사고 방식은 버려야 것이다. 그들 자신의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성취를 일구어내도록 도와주어야 것이다.  그러함이  더욱 의미있는 성취가 아닌가 한다. 그러고 나서 영롱한 빛을 발하는 자녀들을 보면서 대리 만족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본다. 그때는 그들만 자랑스러워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부모님들도 자랑스러워 보인다. 아니 더욱 자랑스러워 보인다.